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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236번째 책] 불평등의 대가 (★★★☆☆)
    1000권 독서 2018. 8. 5. 07:41


    책 속의 한 구절



    상위 1퍼센트는 생산에 기여한 것이 많아 그 엄청난 부를 누리는 것이 아니다. 그들은 자신의 특권과 지위를 이용하여 사회적 생산으로부터 터무니없는 양을 빼앗아 가는 지대 추구로 일관하고 있다. 시장 경제를 구성하는 각종 제도는 경쟁과 효율성과 투명성 등 교과서에 나오는 시장 경제의 각종 요건을 담보하기 위한 장치가 아니라 그 1퍼센트의 지대 추구가 더욱 큰 규모로 확대 재생산되고 또 안정적으로 영구화되도록 보장하는 장치로 애초부터 디자인되어 있다.

      

         일자리 불안에는 부동산 거품, 수출 편향 경제, 저출산, 고령화 등 여러 요인들이 고루 작용했지만 무엇보다 재벌 독식 구조가 가장 크게 작용했다고 봐야 한다. 재벌 독식 구조가 강해지다 보니 중견, 중소기업 등을 중심으로 일자리를 만들어 내는 산업 생태계가 사라지고 골목 상권까지 무너지는 상황이 되었다

      

         한국 경제가 외환 위기 이후 십여 년 동안 진행되어 온 방식은 늘 이런 식이었다. 국민 대다수가 잘 먹고 잘 살 수 있는 충분한 부가 생산되는데도 불구하고 이것을 재벌 대기업과 극소수 상류층에 몰아주는 방식으로 성장해 온 것이다.

      

         세계 각지의 정부들이 지속적인 실업 등의 중요한 경제 문제를 해결하지 못하고, 공정성이라는 보편적 가치가 소수의 탐욕을 위해 짓밟히는 것을 목격하면서, 시스템이 불공정하다는 대중적 인식은 이윽고 배신감으로 바뀌었다.

      

         세계 도처의 사람들은 다음 세 가지 주제에 공명하고 있었다. 첫째, 시장은 제대로 작동하지 않고 있었다. 누가 보기에도 시장은 효율적이지 않았고, 안정적이지도 않았다.[3] 둘째, 정치 시스템은 시장 실패를 바로잡지 못했다. 셋째, 현재 경제 시스템과 정치 시스템은 근본적으로 공정하지 않다.

      

         시장은 도덕성을 가지고 있지 않다. 따라서 우리는 시장을 어떻게 관리할지 결정해야 한다

      

         시장은 부를 집중시키고, 환경 비용을 사회에 전가하고, 노동자들과 소비자들을 착취하는 부정적인 위력을 발휘할 수 있다. 우리는 시장을 길들이고 단련하여 대다수 국민들을 이롭게 하는 방향으로 작동하도록 이끌어야만 한다.

      

         금융 위기가 발생하자, 경제 시스템이 비효율적이고 위태로울 뿐 아니라 근본적으로 공정치 못하다는 대중적 인식이 나타났다. 금융 위기가 발생한 뒤(그리고 부시 행정부와 오바마 행정부가 금융 위기 타개책을 실시한 뒤) 실시된 여론 조사를 보면, 거의 절반에 가까운 미국인이 경제 시스템이 공정치 못하다고 생각하는 것으로 나타났다.

      

         사람들은 경제 위기의 와중에 일어난 일들을 보면서, 개인이 받는 상대적인 보수의 크기와 사회적 기여도 간에는 상관관계가 〈없다〉는 것을 확인했다. 금융업자들은 사회와 소속 기업에 큰 피해를 입혔는데도 불구하고 거액의 보수를 챙겼다. 상위 계층과 금융업자들이 누리는 부는 다른 사람들을 우려먹으려는 의도와 기술에서 비롯한 것이라 할 수 있다.

      

         미국인이 중시해 온 공정성의 한 가지 양상이 바로 기회다. 미국인은 전통적으로 미국은 〈균등한 기회〉가 보장되는 나라라고 자부해 왔다.

      

         정치의 실패와 경제의 실패는 연관되어 있고, 상호 보강 효과를 발휘한다. 정치 시스템이 부유층의 관점에 포획되어 있는 경우, 법률 및 규정(그리고 법률 및 규정의 집행)은 부유층의 횡포로부터 서민들을 보호하는 기능을 약화시킬 뿐만 아니라 오히려 사회의 나머지 구성원들을 희생시켜 부유층의 부를 불려 주는 방향으로 설계될 여지가 많다.

      

         함구하고 있지만 우리가 치르고 있는 대가는 또 있다. 민주주의의 약화, 공정성과 정의 등의 가치 훼손, 국가적 정체성의 위기 등이 바로 그것이다.

      

         미국에서는 불평등을 야기하는 핵심 요인이 정부 정책이라는 점이다. 불평등의 추세를 역전시킬 마음이 있다면, 우리는 이제껏 미국을 경제적으로 가장 분열이 심한 선진국으로 만드는 데 기여해 온 정부 정책들을 폐기하고, 더 나아가서 시장의 힘에 근거하여 자생적으로 자라나는 불평등을 완화하기 위해 추가적인 정책을 도입해야 한다.

     

      

         물론 열심히 일하는 사람들은 보상을 받아야 마땅하다. 단, 그것은 이들이 쏟은 노력과 투자가 사회 전체를 이롭게 할 때의 이야기다. 약간의 불평등은 실제로 불가피하다. 어떤 사람들은 남들보다 더 열심히, 더 오랜 시간을 일한다. 제대로 돌아가는 효율적인 경제 시스템은 이런 노력을 기울인 이들에게 보상을 해주어야 마땅하다

      

         하지만 이 책은 오늘날 미국의 심각한 불평등과 이런 불평등을 초래한 방식이 성장을 저해하고 효율성을 떨어뜨리고 있다는 것을 보여 준다. 그렇게 된 이유 중 하나는 미국의 불평등은 대부분 시장 왜곡의 결과이기 때문이다. 즉 미국의 시장은 새로운 부를 창출하는 행위 대신에 다른 사람들에게서 부를 빼앗는 행위를 장려하는 방향으로 왜곡되어 있다.

      

         낙수 경제 이론을 옹호하는 사람들은 이런 관점을 질투의 정치학politics of envy이라고 부른다. 이들은 파이 조각의 상대적인 크기를 따지지 말고, 절대적인 크기를 따져야 한다고 주장한다. 부유층에게 파이를 더 많이 내주면 파이가 더 커지고, 하위 계층과 중위 계층이 가져가는 몫은 상대적으로 작아지지만 그들 몫으로 돌아가는 파이 조각의 절대적인 크기는 커진다는 이야기다. 그것이 사실이라면 좋겠지만, 사실은 정반대다. 앞서 살펴보았듯이, 불평등이 심화되는 시기에는 경제 성장이 둔화되었고, 대부분의 미국인들에게 돌아가는 파이 조각의 크기는 갈수록 줄어들었다.[22]

      

         [22]

      

         상위 계층이 자본 소득 가운데 가장 큰 몫을 차지하는 것은 결코 뜻밖의 일이 아니다. 금융 위기 이전인 2007년에 자본 소득의 57퍼센트 정도가 상위 1퍼센트에게 돌아갔다.[29] 또한 상위 1퍼센트에 속하는 사람들은 1979년 이후 발생한 자본 소득 〈증가분〉 가운데서 상대적으로 훨씬 큰 몫을 가져간 데 비해서, 하위 95퍼센트에 속하는 사람들은 자본 소득 증가분의 3퍼센트 미만을 가져갔다.[30]

      

         가구당 소득이 감소하는 것을 막기 위해서 노동 시장에 진입해서 남편과 함께 일하는 여성들이 늘어나면서, 가구당 노동 시간은 증가했다. 미국의 소득 통계에는 여가 시간의 축소와 그것이 가족생활의 질에 미치는 영향이 반영되어 있지 않다.

      

         불평등은 지속성을 가진다.[75] 더 큰 문제는 이런 상관관계가 미국의 미래에 악영향을 미친다는 점이다. 불평등이 심화되고 있는 현실에 대해 아무런 조치를 취하지 않을 경우, 장래에 펼쳐질 기회의 수준은 더욱 위축되고 불평등의 수준은 더욱 심화될 것이다

      

         균등한 기회가 보장되는 경우, 하위 계층의 20퍼센트가 상위 20퍼센트 계층으로 상승한다. 아직까지 그 어떤 나라도 이 목표에 근접하지 못하고 있지만, 덴마크(14퍼센트)와 영국(12퍼센트)은 미국(8퍼센트)과 비교하면 훨씬 높은 성적을 내고 있다. 다시 말해 미국은 일단 상위 계층에 진입한 사람들이 그 계층에 머무를 확률이 훨씬 높다.

      

         미국 사회가 불균등한 교육 기회를 제공하고 있다는 사실은 미국 명문 대학교 재학생의 계층 구성에서 뚜렷이 드러난다. 이들 중 하위 50퍼센트 계층 출신은 9퍼센트 정도에 불과하고, 상위 25퍼센트 계층 출신은 무려 74퍼센트에 이른다

      

         하위 10퍼센트가 총소득의 10퍼센트를 가져가고, 하위 20퍼센트가 총소득의 20퍼센트를 가져간다면 지니 계수는 0이 된다. 이 경우 소득의 불평등은 존재하지 않는다. 하지만 모든 소득이 단 한 사람에게만 돌아간다면, 지니 계수는 1이 되고, 이것은 〈완벽한〉 불평등을 의미한다. 지니 계수가 0.3 이하인 사회는 소득 불평등이 심하지 않은 사회다.

      

         미국 사회의 불평등(특히 상위 1퍼센트가 가진 막대한 부)은 의심할 나위 없이 미국 사회가 만들어 낸 〈결과〉다. 이처럼 심각한 불평등이 숙명이 아니라는 점에서 희망의 여지는 남아 있다. 하지만 현실적으로는 불평등이 더욱 악화될 가능성이 크다. 이런 결과를 창출하는 데 이바지해 온 힘들은 자기 강화 성향을 가지고 있기 때문이다.

      

         오늘날 존재하는 불평등은 대부분 정부 정책, 즉 정부가 한 일과 정부가 하지 않은 일이 낳은 결과다. 정부는 상위 계층에게서 중하위 계층에게로, 혹은 그 반대 방향으로 돈을 이전시킬 수 있는 힘을 가지고 있다.

      

         19세기 후반부터 〈한계 생산성 이론marginal productivity theory〉이 새로이 등장했다. 이 이론은 생산성이 높은 사람일수록 소득이 높은데, 이것은 사회에 기여하는 몫이 더 크다는 것을 반영한다고 주장했다. 수요와 공급의 법칙을 통해서 작동하는 경쟁 시장은 각 개인이 한 기여의 가치를 결정한다. 어떤 사람이 희귀하고 귀중한 기술을 가지고 있다면, 시장은 산출에 기여한 대가로 그 사람에게 풍족한 보상을 한다. 반대로 아무 기술이 없는 사람은 적은 소득을 올린다. 물론 기술의 생산성을 결정하는 것은 과학 기술이다. 즉 원시 농업 경제에서는 물리적 힘과 지구력이 중시되고, 현대적인 하이테크 경제에서는 지력(知力)이 더 중시된다.

      

         현대 경제에서는 정부가 게임의 규칙을 결정하고 집행한다. 즉 정부는 무엇이 공정한 경쟁인가, 무엇이 경쟁을 저해하며 불법적인 것으로 여겨지는 행위인가, 채무자가 채무를 전액 변제할 수 없는 파산이 발생할 때는 누가 무엇을 가져가는가, 무엇이 금지된 사기 행위인가 등에 관한 규칙을 결정하고 집행한다

      

         경제학자들이 공식적으로 표명하는 바를 옮기면, 불평등은 〈유산〉의 분배, 즉 경제적 자본 및 인적 자본의 분배에 의존한다.

      

         부를 창출한 대가로 수익을 내는 것이 아니라, 창출된 부 가운데 상대적으로 많은 몫을 아무런 대가도 치르지 않고 차지하는 행위를 〈지대 추구rent seeking〉라고 부른다. (지대 추구라는 개념에 대해서는 뒤에서 더 상세하게 논의할 것이다.) 상위 계층은 사회의 나머지 성원들이 눈치 채기 어려운 방법을 이용해서 그들로부터 돈을 뽑아내는 법을 터득했다. 바로 이것이 이들이 이룩한 진짜 혁신이다.

      

         프랑스의 루이 14세 치하에서 경제 자문역을 맡았던 장-밥티스트 콜베르는 〈조세 징수의 기술은 거위가 가장 적게 비명을 내게 하면서 가장 많은 깃털을 뽑는 것이다〉라는 유명한 말을 남겼다. 이는 지대 추구의 기술에도 적용되는 이야기다.

      

         애덤 스미스가 가정했던 대로 시장이 원활하게 작동한다면, 그것은 개인의 이익과 사회의 이익이 일치하기 때문이다. 다시 말해 개인이 받는 보상과 개인이 사회에 미치는 기여가 일치하기 때문이다. 이것이 바로 한계 생산성 이론의 내용이다. 이 이론에서는 개별 노동자의 사회적 기여는 개인이 받는 보상과 정확히 일치한다. 생산성이 높은(사회적 기여가 큰) 사람들은 더 높은 임금을 받는다.

      

          아무런 제약 없이 움직이는 시장은 이처럼 효율적이고 바람직한 결과를 창출하지 못하는 경우가 많기 때문에, 정부는 이런 시장 실패를 바로잡는 역할을 담당해야 한다.

      

         기업들은 시장 경쟁을 둔화시키는 행위를 하려는 유인을 가지고 있다. 기업들은 또한 반경쟁적 행위를 금지하는 강력한 법률의 출현을 막기 위해, 그런 법률이 존재하는 경우에는 법률의 성공적인 집행을 막기 위해 큰 노력을 기울인다

      

         사업가들의 주된 관심은 사회의 행복을 증진시키거나 시장 경쟁을 강화하는 데 있지 않다. 그들의 목적은 오로지 시장이 〈자신에게〉 유리한 방식으로 움직이게 만들어 자신의 수익을 끌어올리는 데 있을 뿐이다

      

         첫 번째 형태는 원유 부국에서 행해지는 것과 흡사하게 (석유나 광물 같은) 국가 자산을 공정한 시장 가격 이하로 장악하는 방식이다.

      두 번째 형태의 지대 추구는 정반대로 정부에 물건을 팔면서 시장 가격 〈이상〉을 받아 챙기는 방식(예컨대 정부 물자 조달권을 독점하는 것)이다. 제약 산업과 방위 산업은 이런 형태의 지대 추구에 능숙하다

      

         최상층 갑부들의 성공담을 자세히 살펴보면, 그들이 지닌 천재성의 상당 부분은 시장의 힘이나 여러 가지 시장의 불완전성을 효율적으로 이용하는 방법을 고안하고 대개의 경우 정치 과정을 사회 전체가 아니라 자기 자신에게 유리한 방향으로 이끌어 가는 효율적인 방법을 찾아낸 데 있었다.

      

         성공의 참된 열쇠는 경쟁이 아예 일어나지 않도록 하거나 큰 수익을 올리기에 충분한 시간 동안 경쟁이 일어나지 않도록 독점을 유지하는 데 있다. 독점을 유지하는 가장 간단한 경로는 정부로부터 독점권을 인정받는 것이다.

      

         처음에는 수요 공급의 법칙 덕분에 중위 계층의 임금이 꾸준히 상승했고 하위 계층의 임금은 정체되거나 하락했다. 시간이 지남에 따라 탈숙련화deskilling 및 아웃소싱 효과가 강화되면서 최근 15년 동안 중위 계층의 임금은 순탄치 않은 길을 걸어 왔다.[11]

      그 결과로 나타난 것이 1장에서 거론한 미국 노동 시장의 〈양극화〉 현상이다.

      

         시장이 순조롭게 움직일 때는 대체로 노동자들은 쉽게 다른 부문으로 이동한다. 자리를 옮긴 노동자들은 혜택을 보지 못하지만, 전반적인 경제는 생산성 향상의 혜택을 누린다. 그러나 다른 부문으로 이동하기기 쉽지 않은 경우도 있다. 이를테면, 새로운 일자리가 다른 지역에 만들어지거나, 다른 기술을 요구하는 경우다. 다른 일자리를 찾지 못한 채 실업률이 상승하는 부문에 꼼짝없이 〈갇혀〉 있어야 하는 노동자들도 있을 수 있다.

      

         정부의 가장 중요한 역할은 게임의 기본적인 규칙을 정하는 것이다. 정부는 노동조합 결성을 장려 혹은 저해하는 법률이나, 경영진의 재량권 범위를 결정하는 기업 지배 구조 법률, 독점 지대의 규모를 제한해야 〈마땅한〉 경쟁 관련 법률 등을 통하여 게임의 기본적인 규칙을 정한다. 앞에서 지적한 대로, 거의 모든 법률들은 〈분배〉 방식에 영향을 미친다. 다시 말해서 법률은 특정 집단에게 혜택을 제공하는데, 대개 이런 혜택은 다른 집단을 희생시킨 데서 비롯한다.[15] 어떤 정책 혹은 프로그램이 지니는 가장 중요한 효력은 대개 분배 방식에 미치는 영향력이다.[16]

      

         금융 시장은 세계화를 적극 추진해 오고 있다. 금융 시장에서 일하는 사람들은 끊임없이 효율성 개선에 대해서 이야기하는데, 그들이 실제로 노리는 것은 전혀 다른 것, 이를테면 자신들이 노동자들보다 우위에 설 수 있게 하는 일련의 규칙이다. 이들은 노동자들이 권리 및 임금과 관련해서 강력한 요구를 할 경우에는 자본이 철수할 수 있다는 불안감을 가지게 함으로써 노동자들의 임금을 낮게 유지한다.[21] 국가 간 투자 유치 경쟁은 임금 삭감뿐 아니라 노동 보호의 후퇴 등 다양한 형태로 나타난다

      

         국가들은 금융 기업들이 다른 시장으로 옮겨갈지도 모른다는 불안감 때문에 최소 규제 방침에 입각한 금융 시스템을 구축하려는 경쟁을 벌여 왔다

      

         지금 돌이켜 보면 그것은 착각이었다. 부실한 규제 때문에 발생한 위기로 미국이 입은 손실은 부실한 규제 덕분에 금융 부문의 일자리가 사라지지 않고 보전되어 얻은 편익과는 비교할 수 없을 만큼 컸다.

      

         마침내 2011년 봄, 국제통화기금은 금융 시장에 이와 유사한 대처법이 적용되는 것이 바람직하다는 것을 인정했다. 국제통화기금은 자본의 변덕스러운 국경 이동을 제한하는 자본 통제 방식을 채택했다.[23]

      아이러니한 것은 위기를 초래한 것은 금융인데 그 위기의 희생양이 된 것은 노동자들과 중소 사업자들이라는 점이다. 경제 위기는 실업률을 상승시키고, 실업률이 높아지면 임금이 삭감 압력을 받는다는 점에서 노동자들은 이중의 타격을 받는다

      

         교역 세계화의 기본적인 논리는 단순하다. 상품의 이동은 사람의 이동을 대체한다. 미국이 외국에서 미숙련 노동력을 기반으로 생산된 상품을 수입하면, 미국에서 그 상품을 생산하는 미숙련 노동자에 대한 수요가 감소하고 이들의 임금은 인하 압력을 받는다. 미국 노동자들이 경쟁력을 확보하기 위해서는 갈수록 낮아지는 임금을 감수하거나 갈수록 고도화되는 기술을 습득해야 한다.[25] 우리가 어떤 식으로 세계화를 운용하느냐와 관계없이, 교역 증대를 야기하는 세계화의 상황에서는 이런 인과 관계가 불가피하게 발생한다.

      

         이 주장에는 두 가지 중요한 가설이 들어 있다. 하나는 세계화가 달성되면 각국의 국가 총생산(대개 국내 총생산으로 측정된다)이 늘어난다는 가설이고, 다른 하나는 국내 총생산이 증가하면 낙수 효과 때문에 모두가 이익을 본다는 가설이다. 둘 다 틀린 가설이다

      

         실제로 미국의 미숙련 노동자들은 이미 참담한 곤경에 처해 있다. 세계화가 진전함에 따라 이들은 갈수록 강해지는 임금 하락 압력에 시달릴 것이다.

      

         미국과 일부 유럽 국가에서 세계화로 이득을 보는 승자는 상위 계층이다. 세계화로 손해를 보는 패자는 대부분 하위 계층이고, 패자 가운데 중위 계층이 차지하는 비율도 점점 늘어나는 추세다.

     

      

         불평등은 최근 40년 동안 진행되어 온 사회적 결속력 붕괴의 원인이자 결과다. 전통적인 경제적 요소들만 따지는 경제 이론으로는 국민 소득의 일부분을 구성하는 노동 보수의 변화 패턴과 변화 규모를 제대로 설명할 수 없다

      

         미국 사회에는 주요한 집단들에 대한 경제적 차별이 존재한다. 이를테면 여성 차별, 흑인 차별, 히스패닉 차별 등이다. 이 집단들의 소득 및 부에는 현격한 차이가 존재한다는 것은 분명한 사실이다. 여성과 흑인, 히스패닉의 임금은 백인 남성의 임금에 비해 현저히 낮다

      

         이해하기 어려운 일이지만, 시장이 불평등의 심화를 야기하기 시작했음에도 불구하고 정부는 상위 계층에 대한 세금을 인하하는 조세 정책을 구사했다.

      

         소득 결정의 〈성취도〉 모델은 각 개인의 노력에 초점을 둔다. 여기에는 다음과 같은 논리가 깔려 있다. 불평등이 노력의 차이에서 비롯한 결과라면, 그 노력이 문제라고 보기는 어려울 뿐 아니라 그 노력에 대한 보상을 지급하지 않는 것은 부당하고 비효율적인 것이다. 맨주먹으로 시작해서 갑부가 된 수백 가지 이야기들에서 주인공들이 가난의 덫에서 벗어난 것은 그들이 열심히 노력한 덕분이다. 이런 이야기들에는 티끌만큼의 진실이 있을 수 있다. 하지만 그 진실은 티끌에 불과하다. 1장에서 살펴보았듯이, 개인의 성공을 결정짓는 주요 요인은 그 개인에게 허용된 초기 조건, 즉 부모의 소득과 교육 수준이다

      

         불평등은 대부분 과학 기술과 시장의 힘, 그리고 광범한 사회적 힘에 영향을 미치고 이를 견인하는 정부 정책에서 비롯한 결과다. 바로 여기서 희망과 절망이 교차한다. 이런 불평등이 불가피한 것이 아니며, 정책을 바꾸면 보다 효율적이고 보다 평등한 사회를 만들 수 있다는 점에서 우리에게는 희망이 있다. 반면에 이런 정책들을 만들어 내는 정치 과정을 바꾸기란 대단히 어려운 일이라는 점에서 우리는 절망에 빠진다.

      

         오늘날 미국의 특징이 된 심각한 불평등은 불안정을 야기하고 이 불안정은 다시 여러 가지 희생을 낳을 뿐 아니라, 여러 가지 다른 경로를 통해 경제의 효율성 및 생산성 저하를 초래한다. 여기서는 (1) 광범위한 계층에게 혜택을 주는 공공 투자의 축소 및 공교육에 대한 지원 축소, (2) 경제의 심각한 왜곡(특히 지대 추구 행위와 관련해서) 및 법률, 규칙의 심각한 왜곡, (3) 노동자들의 사기와 〈남들에게 뒤처지지 않으려고 분수에 넘치는 생활을 하는 태도〉와 관련한 내용을 살펴보겠

      

         부유층은 강한 정부에 대해 불안감을 느낀다. 강한 정부는 권력을 이용해서 부유층으로부터 부의 일부를 빼앗아다가 공익을 도모하거나 하위 계층에게 도움이 되는 공공 투자에 투입하여 사회의 불균형을 바로잡을 수 있기 때문이다. 미국의 갑부들은 현재의 정부 상태에 대해 불만을 토로하기도 하지만, 사실은 대체로 현재의 정부 상태에 만족한다. 현재의 정부는 재분배를 집행하기에는 장해물이 지나치게 많고, 세금 인하 말고는 손을 댈 수 있는 일이 없을 정도로 심하게 분할되어 있기 때문이다.

      

         경제적 이동성을 둔화시키고, 장기적으로는 국가적 생산력을 위축시키는 또 다른 요인도 있다. 교육 성과에 대한 연구 결과들은 가족 내부 관계를 중요하게 본다. 중위 계층과 하위 계층 가구들은 생활을 유지하기 위해서 힘겹게 일하기 때문에(상대적으로 일을 많이 해야 하기 때문에) 가족이 함께 지내는 시간이 상대적으로 적을 뿐 아니라, 자녀의 숙제를 감독할 능력이 부족하다. 이 가구들은 지출 문제로 타협을 해야 하는 상황이 되면 자녀에 대한 투자를 줄인다(

      

         모든 분야를 통틀어 보면, 2011년 한 해에 로비 활동에 투입된 금액은 무려 32억 달러에 이른다.[25] 이때 가장 큰 왜곡이 일어나는 것은 정치 시스템이고, 가장 큰 타격을 입는 것은 민주주의다.

      지대 추구는 대개 국가의 생산력과 국민의 복지를 후퇴시키는 실질적인 자원 낭비를 초래한다. 그것은 자원 배분을 왜곡하고 경제를 허약하게 만든다.

      

         금융 위기가 일어나기 여러 해 전부터 미국 최고의 인재들은 금융업을 선택하는 비율이 높았고, 갈수록 이 비율이 높아졌다. 수많은 인재들이 금융업에 몰려 있으니 그 부문에서 혁신이 일어나는 것은 뜻밖의 일이 아니다. 그러나 이들이 이룬 〈금융계의 혁신〉 중 대다수는 규제를 피해 갈 목적으로 고안된 것이었고, 실제로 장기적인 경제 성과를 위축시켰다

      

         지대 추구자들의 목적은 자신들에게 이로운 내용의 법률과 규칙을 이끌어 내는 데 있다. 이를 위해서는 법률가가 필요하다. 만일 미국 정부가 1퍼센트의, 1퍼센트에 의한, 1퍼센트를 위한 정부라고 말할 수 있다면, 미국 정부는 법률가들의, 법률가들에 의한, 법률가들을 위한 정부라는 말은 더욱 확실한 근거를 가진다. 미국 역대 대통령 44명 가운데 26명이 법률가였고, 미국 하원의원의 36퍼센트가 법률과 관련된 배경이 있다. 이들이 법률가들에게 경제적으로 유익한 일만 하는 것은 아니지만, 이들은 〈인지적으로 포획된〉 상태에 있을 가능성이 높다.

      

         사람은 기계가 아니다. 사람은 의욕이 있어야만 열심히 일을 한다. 부당한 대우를 받고 있다고 생각하는 사람에게 의욕을 불어넣기는 어렵다. 이것은 현대 노동 경제학의 핵심 원리 중 하나다. 이 원리를 압축하고 있는 효율 임금 이론은 기업이 노동자를 어떻게 대우하느냐(임금을 얼마나 주는지를 포함해)가 생산성에 영향을 미친다고 주장한다.

      

         노동자들에게 의욕을 불어넣는 또 한 가지 중요한 요인은 바로 공정한 대우를 받고 있다는 믿음이다. 공정성의 기준은 모호할 뿐 아니라, 사리사욕 때문에 공정성에 대한 판단이 흐려지기도 하지만, 노동자들 사이에서는 현재와 같은 임금 격차는 공정치 못하다는 인식이 점점 확산되고 있다.

      

          오늘날 많은 사람들이 자신의 소비 수준을 다른 사람들의 소비 수준만큼 끌어올리려는 갈망 때문에 분수에 넘치는 소비 생활을 하고, 장시간 동안 과도한 노동을 하고 있다.

      

         사람들은 생산성 향상이 가져다준 혜택을 어떤 식으로 누릴까?[50]

      뚜렷한 해답은 나오지 않았다. 여가 시간을 늘리는 쪽을 선택하는 사람이 있는가 하면 재화를 더 많이 소비하는 쪽을 선택하는 사람도 있다. 경제 이론만으로는 이를 정확히 예측할 수 없지만, 일반적으로 측정하자면 합리적인 사람이라면 재화의 소비도 늘리고 여가 시간도 늘리는 결정을 내릴 것이다. 유럽 사람들은 일반적인 추정과 부합하는 행동을 했다. 하지만 미국 사람들은 달랐다. 미국 사람들은 여가 시간(여성들이 노동 인구로 추가된 경우에는 가구당 여가 시간)을 줄이고 재화의 소비를 늘렸다.

     

      

         미국 사회는 충격적인 해답을 내놓고 있다.[52] 사람들은 〈가족을 위해서〉 열심히 일하고 있다고 말하지만, 일을 열심히 하면 할수록 가족을 위한 여가 시간은 점점 줄어들고 가족의 삶의 질은 떨어진다. 즉, 수단과 공언된 목적이 모순을 이루는 결과가 나타난다.

      

         우파는 만연하고 있는 시장 실패를 바로잡기 위한 대중적(집단적) 행동의 필요성을 과소평가하고 경제적 유인의 중요성을 과대평가한다. 또한 이런 착오를 근거로 해서 누진적 조세 제도의 비용을 과대평가하고 그 혜택을 과소평가한다.

      

         금전적인 유인 시스템을 완벽하게 설계하는 것은 불가능하다. 이 시스템하에서는 업무의 질을 중시하지 않고, 업무의 양만을 중시하는 식의 왜곡된 행동이 나타나는 경우가 많다

      

         유인은 사람들에게 열심히 일을 하려는 〈동기를 부여하는〉 것이다. 심리학자와 노동경제학자, 기타 사회과학 연구자들은 무엇이 사람들에게 동기를 부여하는가를 놓고 심층적인 연구를 진행해 오고 있다. 그런데 경제학자들은 착오를 범하는 경우가 많은 것 같다.

      개인들은 흔히 외재적 보상(금전)보다 내재적 보상(이를테면 업무를 제대로 해냈다는 만족감)에 더 큰 자극을 받는다.

      

         경제 이론이 팀별 성과에 따른 유인 보수 체계의 효과를 정확히 평가하지 못한 것은 인간관계의 중요성을 과소평가했기 때문이다.[65] 개인은 자기 팀에 속한 다른 사람들에게 기쁨을 주기 위해서 (그리고 그렇게 하는 것이 도의적이라고 생각하기 때문에) 열심히 일을 한다. 또한 경제학자들은 개인의 이기심을 과대평가한다(경제학자들이 다른 사람들보다 더 이기적이며 경제학 훈련을 오래 받은 사람일수록 이기적인 태도가 강해진다는 것을 입증하는 증거가 적지 않다).[66] 따라서 노동자들이 주주로 참여하는 (그리고 기업 수익 분배에 참여하는) 기업들이 경제 위기에 직면해서도 좋은 성과를 올렸고 직원 해고율도 낮았던 것은 뜻밖의 일이 아니다.

      

         이 분야의 경제 이론들이 가진 결함은 경제학의 근본적인 결함에서 비롯한다. 표준적인 경제 이론 중 하나인 행동주의 접근법은 합리적인 〈개인주의〉에 초점을 두고 있다.

      

         우파는 성과 유인 보수가 높은 생산성을 유지하기 위해서 없어서는 안 될 것이라고 주장하지만, 실제로 많은 기업들이 채택하고 있는 성과 유인 보수 체계는 불평등을 심화시킬 뿐 아니라 뚜렷한 역효과를 낳고 있다.

      

         우파는 불평등의 비용을 과소평가할 뿐 아니라 불평등을 낳은 시장 왜곡을 바로잡기 위한 활동의 편익을 무시한다. 또한 불평등을 바로잡기 위한 누진적인 조세 제도의 비용을 과대평가하고 공공 지출의 편익을 과소평가한다.

      

         다수의 미국 기업들이 국내로 송금되기 전까지는 과세 대상이 되지 않는다는 세법 조항을 이용해서 해외 지사에서 올린 수익에 대한 세금 납부를 모면하고 있다. 결국 기업들은 이 세법 조항 때문에 국내 투자보다 해외 투자를 선호하게 된다.

      

         상위 1퍼센트가 미국 사회에 부과하는 손실 가운데 가장 큰 것은 국가적 정체성의 훼손이다. 공정한 승부 의식과 기회균등주의, 공동체 의식은 미국이라는 나라가 가진 정체성의 핵심이다. 미국은 오래전부터 누구나 성공할 확률이 똑같은 공정한 사회라고 자부해 왔다. 하지만 앞서 보았듯이, 최근의 통계 자료들은 정반대의 사실을 드러낸다.

      

         오늘날 미국의 불평등과 다른 여러 국가들의 불평등은 추상적인 시장 원리로부터 자연스럽게 나타난 것이 아니라, 정치에 의해서 형성되고 확대되어 온 것이다. 정치는 국가 경제의 파이를 어떻게 배분할 것인가를 둘러싸고 싸움이 벌어지는 곳이다. 오늘날 정치라는 싸움터에서 승승장구하는 것은 상위 1퍼센트다. 이것은 제대로 된 민주주의가 아니다.

      

         투표는 국민의 의무다. 사람들은 투표를 할 마음이 없어도 다른 사람들도 자기처럼 행동하면 어떻게 하나 걱정한다. 〈내가 투표를 하지 않고 나와 생각이 비슷한 사람들도 투표를 하지 않는다면, 결국 나와는 생각이 다른 사람들이 선거 결과를 좌우하게 될 것이다.〉

      

         정치적 환멸감에 빠진 투표자들을 투표소로 〈유인〉해야 하는 상황이 되면 투표 행위의 비용이 상승한다. 사람들의 정치적 환멸감이 심하면 심할수록 투표 비용은 상승한다. 그런데 투표 비용이 커지면 커질수록 금전적인 이해관계의 위력은 강해진다. 부유한 사람들이 비용을 감수하면서까지 정치 과정에 영향을 행사하는 것은 투표를 단순히 시민적 덕목이 아니라 수익을 요구하고 그것을 얻어 낼 수 있는 일종의 투자라고 여기기 때문이다. 결국 이들은 〈자신에게 유리한 방향으로〉 정치 과정을 만들어 내고, 이런 결과는 나머지 유권자들의 정치적 환멸감을 더욱 강화하는 한편으로 돈의 위력을 더욱 강화한다.

      

         미국이 불평등 문제에 손을 대지 않고 방치하고 있는 것은 곧 사회적 갈등의 길, 혹은 사회적 자본을 파괴하는 길을 선택했다는 것을 뜻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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