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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237번째 책] 마음을 비우면 얻어지는 것들 (★★★★☆)
    1000권 독서 2018. 8. 5. 15:52



    책 속의 한 구절



    비극은 왜 일어났는가? ‘내가 무시당했다’는 생각을 비워버리지 못한 탓이었다. 왜 비워버리지 못했을까? 생각이 바로 ‘나’라고 착각했기 때문이다. 생각을 ‘나’라고 착각하면 그 생각을 버리지 못한다. ‘나’를 어떻게 버리나?

      

         “이 모든 것들은 내 것이 아니다”라는 사실을 진심으로 깨닫는 것이었다. 이 깨달음만으로 마음은 저절로 텅 비어버렸다. 내 안에 가득했던 화도, 스트레스도, 고통도 모조리 텅 비어버렸다. 나는 다음 의문을 던져보았다.

      

         “현대인의 약 3분의 1이 의학적으로 설명할 수 없는 정신질환에 시달린다. 삶의 허무함과 공허함으로 인한 질환이다. 이들은 ‘나는 갇혀 있다’는 질환을 앓고 있다.”

    나는 어디에 갇혀 있는가? 바로 비좁은 육신이다. 비좁은 육신을 벗어나면 ‘나’는 우주만큼 넓어진다.

      

         셸드레이크 박사도 “두뇌는 정보나 아이디어를 기억하거나 저장하는 장치가 아니라 우주에 저장된 정보를 꺼내 쓰는 장치다. 즉, 두뇌는 정보가 저장된 도서관이 아니라 우주에 저장된 정보들을 송수신하는 기능을 할 뿐이다”라고 말했다.

      

         이렇게 ‘나는 목표와 하나다’라고 생각하면 실제로 ‘나’의 범위가 넓어져 목표 달성이 앞당겨진다.

      

         모든 생각을 텅 비운 채 일과 하나가 되면 그 일에 관한 모든 정보가 훤히 보인다. 그래서 남들이 보지 못하는 것을 보게 되고, 남들이 생각하지 못하는 걸 생각해내게 된다.

      

         에디슨은 우리가 일과 진심으로 하나가 되지 못하는 이유가 한꺼번에 여러 가지 일을 하기 때문이라고 지적한 바 있다.

    “누구나 매일같이 뭔가를 한다. 아침 7시에 일어나 밤 11시에 잠자리에 든다면 16시간 일하는 것이다. 문제는 대부분 사람이 이것저것 여러 가지 일을 한다는 것이다. 나는 단 한 가지 일에만 집중한다. 만일 한 가지 일에 열중만 수만 있다면 누구나 성공할 것이다. 다만 열중할 수 있는 그 한 가지 일을 발견하지 못하고, 그 일과 하나가 되지 못한다는 사실이 문제다.”

      

         몹시 골치 아픈 문제가 생겼다고 해보자. 며칠 동안 끙끙거리지만 영 풀리지 않는다. 왜 안 풀릴까? 그건 당신이 두뇌를 꽉 닫아놓고 있기 때문이다. 우주에 모든 천재의 재능이 저장되어 있다는 사실을 깜빡 잊어버린 것이다.

      

         우리는 자나 깨나 자기밖에 모른다. 항시 ‘나, 나, 나!’를 외치며 ‘나’의 벽을 세운다. 알고 보면 고통은 자기 스스로 가져오는 것이다. 캘리포니아대학의 래리 셔비츠Larry Scherwitz 교수는 600명의 대화를 녹음해 들어봤다. 그랬더니 ‘나’ ‘나의’ ‘나를’ ‘내 것’ 등 밤낮 ‘나’를 중얼거리는 사람들이 심장병 발병 위험이 가장 큰 것으로 나타났다. ‘나’에 대한 생각은 눈에 보이지 않는 ‘나’의 벽을 세워 우주의 에너지를 단절시킨다.

      

         그녀의 몸을 깨끗하게 청소해주었을까?

    스탠포드 의과대학 연구진은 모든 병의 최소한 95퍼센트는 스트레스, 즉 나쁜 생각 때문이라고 밝힌 바 있다. 나머지 5퍼센트의 원인은 유전이다. 그럼 유전병의 원인은? 짐작대로다. 유전병의 뿌리도 역시 스트레스다. 어떤 선조가 스트레스로 병이 생기면 그 병이 대대로 이어져 내려오며 유전병이 되는 것이다. 스트레스는 왜 나쁜가? 스트레스가 쌓이고 쌓이면 몸은 위기를 느껴 비상 신호를 켠다.

      

         모든 목표의 성취 직전에는 이처럼 어김없이 텅 빈 순간이 있다.

      

         알파파란 긴장과 불안과 온갖 잡념이 완전히 사라진 텅 빈 무아지경의 상태에서 발산되는 주파수다. 즉, 선수들이 표적을 명중시키기 직전 어김없이 마음이 텅 비어버렸다는 이야기다.

      

         진공에 들어가기 위해 마음을 텅 비우려면?

    방법은 2가지다. 첫째, 장기간의 명상과 부단한 수행을 통해 마음을 텅 비우는 비법을 체험적으로 터득하는 것이다. 하지만 수십 년이 걸릴 수도 있는 방법이다

      

         둘째, 이 세상에 존재하는 모든 것들이 죄다 텅 비어 있다는 사실을 책을 읽고 이해하는 방법이다. 많은 시간과 노력이 들지 않는다. 그냥 책을 읽고 이해하면 그만이다. 아주 쉬운 방법이다.

      

         만물의 영체는 모두 사랑 덩어리다. 음식이 아닌 사랑을 양식으로 하는 존재이다. 사랑을 받은 잎사귀가 오래 생존할 수 있는 것도 그 때문이다.

      

         우리는 눈에 보이는 육신만이 우리의 모든 것인 줄 알고 산다. 하지만 육신은 껍데기다. 수명을 다하면 사라진다. 우리 몸을 구성하는 단백질이 사흘 이내에 아주 고약한 냄새를 풍기는 물질로 분해되기 때문이다.

      

         “텅 빈 가슴은 물질로는 절대로 채워지지 않아요. 가슴이 좋아하는 일을 하면 저절로 채워지죠.”

      

         성공하는 아이로 키우는 지름길은 특별한 게 아니다. 조건 없이 사랑을 베푸는 것이다. 영혼이 눈을 뜨면 나머지는 저절로 해결된다. 아인슈타인, 에디슨, 빌 게이츠 등 세계적인 천재들의 재능도 기계적 반복 학습의 산물이 아니라 따뜻한 사랑과 격려의 산물이었다.

      

         아이를 천재로 키우고 싶다면 기계적으로 지식을 주입해야겠다는 생각부터 버려야 한다. 대신 학문을 좋아하는 마음이 저절로 싹트도록 사랑부터 심어주어야 한다.

      

         영혼을 모르는 엄마들은 마치 고속도로로 차를 몰 듯 아이들을 몰아댄다. 아무 저항도 하지 못한 채 끌려가는 아이가 얼마나 아파하는지에는 귀를 기울이지 않는다.

    “엄마가 너보다 널 더 잘 알아. 그러니까 시키는 대로만 해.”

    이렇게 마음이 짓눌린 아이는 어떻게 출구를 찾을까? 저항적으로 성장하거나, 아예 감정이 없는 로봇으로 전락한다.

      

         내가 낳은 아이라고 해서 내 것인가? 일단 뱃속에서 나오면 독립된 영혼을 지닌 독립된 인격체다. 그런데도 자기 욕심에 집착한 나머지 내 것이라고 착각한다. 그래서 캥거루 새끼처럼 계속 배 속에 넣고 다니고 싶어 한다. 내 말만 잘 듣는, 스스로는 아무것도 못하는 꼭두각시로 만드는 것이다.

      

         육신은 기껏해야 100년 남짓 살다가 사라진다. 한때 존재하다가 사라지는 것은 원래가 참이 아닌 헛것이다. 하지만 영혼은 수억 년, 수조 년, 영겁을 산다. 따라서 영혼의 눈으로 보면 육신은 ‘진정한 나’가 아니다. 지구라는 무대에서 인생 연극을 할 때 잠시 빌려 쓰고 다시 되돌려주는 소품에 불과하다. 내가 가진 모든 잠재력과 능력도 육신이 아니라 영혼으로부터 흘러나온다. 단지 나는 내 영혼의 참모습을 모르고 살아왔을 뿐이다

      

         캘리포니아대학의 오즈렘 에이덕Ozlem Ayduk 교수와 미시건대학의 에단 크로스Ethan Kross 교수는 과거의 상처가 떠올라 괴로울 때마다 ‘나’를 ‘저 사람’으로 객관화시켜 바라보는 것만으로 고통이 크게 줄고 혈압도 크게 떨어진다는 사실을 밝혀냈다. 습관적으로 자신을 객관화해서 바라보는 사람들은 남들과의 불화도 적고

    마음이 평화로우며 혈압도 낮았다.

      

         “자신을 제3자의 눈으로 멀찌감치 바라보며 사는 것이 마음의 평화와 몸의 건강을 지키는 최고의 방법이다.”

    상처는 육신의 마음이 만들어내는 것이다. 육신을 벗어난 영혼은 아무런 상처를 받지 않는다. 그래서 늘 따뜻하고 평화롭다. 영혼의 눈으로 객관화하여 바라보면 어떤 상처든 떨어져 나간다.

      

         영혼도 우리가 위험에 빠지면 끊임없이 신호를 보내준다. 영체를 통해 몸에 보내주기도 하고 온갖 크고 작은 장애물들을 여기저기 널려놓아 하던 일을 멈추라고 경고해주기도 한다.

    그 무언의 경고는 우리가 진심으로 마음을 텅 비운 채 귀를 기울여야 비로소 제대로 들을 수 있다.

      

         동물들은 어떻게 그런 불가사의한 능력을 갖추고 있을까? 대답은 의외로 간단하다. 동물들은 본능대로 살 뿐 잡념이 없다. 과거 일어난 일에 집착하지도 않고, 미래를 걱정하지도 않는다. 오로지 현재의 순간을 산다. 그래서 현재의 소리에 귀를 기울일 줄 안다. 인간이 동물에게서 배울 수 있는 교훈이다.

      

         미국의 부동산 재벌 도널드 트럼프Donald Trump는 중요한 결정을 내리기에 앞서, 우선 남들에게 최대한 많이 묻는다. 그렇게 묻고 물어서 필요한 정보가 모이면 그다음에는 자신의 머리를 충분히 쉬게 한다.

    “의문이 풀릴 때까지 묻고 또 물어보세요. 이렇게 정보를 수집한 다음에는 푹 쉬는 겁니다. 쉬고 나면 어느 순간 퍼뜩 어떤 결정을 내려야 할지 직감이 떠오르죠.”

      

         참된 영혼은 늘 낯선 사람의 상처를 눈여겨본다. 우리가 무심코 지나치는 그 상처가 언젠가는 나의 상처로 돌아올 수도 있기 때문이다.

      

         술로 맺어진 관계는 술이 끊어지면 끝이다. 권력으로 맺어진 관계는 권력이 끊어지면 끝나고, 돈으로 맺어진 관계는 돈이 떨어지면 끝나는 것과 같다. 깊은 관계는 술의 힘을 빌려 형성되는 게 아니라 영혼 간의 대화로 형성된다.

      

         당신의 마음이 몸이 있는 곳에 붙어 있지 못하고 어딘가 다른 곳을 그리워하고 있다면 당신은 영혼이 부르는 소리를 외면하고 있는 것이다. 왁자지껄한 술자리보다 진정한 대화가 흐르는 곳으로 가라. 내게 어떤 손해가 생길까 불안해하지 마라. 영혼이 모든 걸 처리해준다.

      

         팔 없는 화가 석창우의 얼굴에는 평화가 흐른다. 모든 일이 그렇다. 아무리 어쩔 수 없어 보이는 상황도 그것이 끝은 아니다. ‘이젠 끝장’이라는 생각은 상황이 만들어내는 게 아니라 사람이 만들어낸다. 그 생각도 텅 비워야 한다. 모든 걸 완전히 텅 비운 채 가장 자신 있는 딱 한 가지를 찾아 파고들면 어느 순간 반드시 돌파구가 열린다.

      

         칼릴 지브란Kahlil Gibran은 《예언자The Prophet》에서 “일은 사랑이 가시화된 것”이라고 표현했다. 자신이 좋아하는 일을 진심으로 깊이 사랑하고 혼을 불사르면 잠자던 영혼이 눈을 뜬다. 그 순간부터 돌연 모든 일이 물 흐르듯 쉬워지기 시작한다.

      

         사람들에게 눈을 감고 북극의 백곰을 절대로 상상하지 말라고 했다.

    “앞으로 5분간 다른 어떤 생각을 해도 좋아요. 하지만 백곰에 대한 생각만큼은 절대로 하지 마세요.”

    사람들은 백곰 생각을 안 하려고 무진 애를 썼다. 그런데 그렇게 억누를수록 백곰 생각은 오히려 더욱 거세게 떠올랐다. 아이러니가 아닐 수 없다. 그래서 심리학에서는 그런 현상을 ‘백곰 효과white bear effect’ 혹은 ‘아이러니 효과ironic effect’라고 부른다

      

         우리는 왜 원치 않는 생각을 머릿속에 집어넣고 억눌러놓을까? ‘생각은 나’라고 착각해서다. 하지만 생각이 정말 ‘나’인가?

      

         “모든 고통의 뿌리는 생각이다. 우리는 우리가 생각을 통제하고 있다고 생각하지만 사실은 생각이 우리를 통제한다”고 말했다. 우리가 생각의 통제를 당하고 사는 것은 표면에 떠오른 생각을 ‘나’라고 착각해 내 머릿속에 가둬놓기 때문이다.

    가둬놓지 않고 그냥 내버려두면 생각은 무에서 피어올랐다가 다시 무의 공간으로 스스로 되돌아간다. 내 마음의 문턱을 마치 들숨과 날숨처럼 가뿐하게 드나든다

      

         자신이 과거에 생각을 잘못 선택했다는 사실을 알고 있었다. 하지만 잘못 선택한 그 생각이 자신의 일부라고 착각하고 있었다. 그러다 보니 그 생각을 버리기가 아까워 2년간이나 머릿속에 가둬놓은 채 괴로워하고 있었다.

      

         즐기지 못하고 놓쳐버리는 현재의 순간들은 허비되는 것이기 때문이다. 인생은 지금 바로 이 순간의 연속일 뿐이다. 이 순간만이 생명이다. 지금 설거지하는 이 순간은 다시는 돌아오지 않는다. 이 순간이 바로 내 인생이다.

      

         아까와 같은 공격을 받았는데 왜 이번에는 화가 나지 않을까? 그건 공격자를 바라보는 시각이 달라졌기 때문이다. ‘저 사람에게 문제가 있다’고 생각하면 문제는 그 사람에게 머문다. 화가 내게까지 번지지 않는다. 하지만 ‘저 사람이 아무 이유 없이 나를 공격하고 있다’고 생각하면 자동으로 ‘난 공격받았다’고 받아들이게 된다. 그래서 ‘난 피해자’라고 믿게 되고 무척 화가 난다. 상대가 똑같은 말을 던졌는데도 내가 상대를 어떻게 해석하느냐에 따라 나는 화가 나기도 하고 안 나기도 한다.

      

         비워버리지 않은 나쁜 생각들은 찰거머리처럼 달라붙는다. 하찮은 쓰레기통도 자주 비워버리지 않으면 썩은 쓰레기가 달라붙지 않는가? 따라서 찰싹 달라붙어 독이 되기 전에 미리미리 비워버리는 게 상책이다.

      

         누군가가 ‘밉다’고 생각하기 시작하면 그가 무슨 짓을 하든 미워 보이고, 첫인상이 좋으면 무조건 그가 좋아 보인다. 우리는 이렇게 굳어진 생각을 ‘나’라고 착각한다.

      

         그들은 이 간단한 사실을 까맣게 잊고 있다. 그래서 다른 생각들을 깊이 들여다볼 생각조차 하지 않는다. 오로지 ‘술 마시고 싶어’ ‘미루고 싶어’와 같은 단 한 가지 생각만 들여다본다. 잘나가던 정치인들이 종종 젊은 여성들과 염문을 뿌리다 돌연 정치 인생에 종지부를 찍는 것은 왜일까? 앞뒤 안 가리고 단 한 가지 충동에만 귀를 기울이기 때문이다. 이렇게 어느 순간 선택한 단 한 가지 생각에 파묻히면 그 순간에 다른 생각은 보이지 않는다. 그런 생각들이 꼬리에 꼬리를 물고 이어지면 어느새 돌이킬 수 없는 긴 인생 항로가

    그려진다.

      

         내가 어떤 인생 트랙을 따라 살아가느냐는 오로지 내 생각이 결정짓는다. 내가 선택하는 작은 생각들이 줄줄이 이어져 긴 인생 트랙을 엮어낸다. 이것이 운명이다. 사람들은 이런 말을 들으면 깜짝 놀란다.

      

         “평행우주에 사는 무수한 ‘나’들은 늘 서로 영향을 미친다. 이 우주에 사는 ‘나’의 행동은 다른 우주에 사는 ‘나’에게 영향을 미치고, 다른 우주에 사는 ‘나’의 행동은 이 우주에 사는 ‘나’에게 영향을 미친다.”

      

         ‘나와 생년월일이 똑같은 사람이 풀었다면 나도 풀 수 있을 거야.’

    자기 불신의 벽을 허무는 순간 숨어 있던 능력은 저절로 살아난다. 한 여학생이 정신과 의사를 찾아왔다.

      

         인생을 살아가면서 각기 다른 생각을 선택한 결과 조금씩 다른 인생 트랙을 밟는다.

    다시 말해 생각만 바꾸면 순식간에 ‘나’의 모습이 달라지고 인생 트랙도 달라지는 것이다. 이는 전혀 어려운 일이 아니다. 생각을 바꾸는 데 무슨 노력이 필요한가? 무슨 돈이 드는가? 단 한 가지 생각에만 집착하지 않고 여러 가지 생각들이 있다는 사실만 깨달으면 그만이다. 여러 가지 생각들 가운데 최선의 생각을 선택하면 그만이다.

      

         우리가 인생을 살면서 짊어지는 가장 무거운 짐은 실수 자체가 아니다. 실수를 잊지 못하고 마음에 두고두고 담아두는 가학적인 집착이다. 실수는 잘못된 생각의 선택으로 일어나는 것이다. 그 생각을 왜 붙들고 있는가? 훌훌 날려 우주에 되돌려 보내면 그만이다. 그리고 그 자리에 밝은 생각을 선택해 채워 넣으면 인생은 저절로 밝아진다.

      

         고비마다 밝고 좋은 생각만 선택했다. 어둡고 나쁜 생각들은 텅 비워버리고 밝고 좋은 생각만 선택해 머릿속에 집어넣었다. 생각의 선택이 도저히 불가능한 인간의 운명을 세상에서 가장 행복한 인간의 운명으로 바꿔놓은 것이다

      

         많은 사람이 돈, 외모, 결혼, 기후 등 환경만 좋아지면 훨씬 더 행복해질 것으로 생각한다. 하지만 진정한 행복은 환경이 아니라 내면에서 나온다. 이 세상 누구도 나를 진정으로 행복하게 해줄 수 없다. 부모도, 배우자도, 친구도, 아이들도 해줄 수 없다.

    참된 행복은 오로지 내면에서 흘러나온다. 나와 내면을 공유하고 있는 사람은 누구인가? 바로 무수한 평행우주에 존재하는 무수한 또 다른 나들이다. 당신이 지금 불행한 이유는 무엇인가? 만일 건강이 좋지 않아 우울하다면 ‘건강한 나’를 선택해보자.

      

         평행우주에서 ‘건강한 나’ 선택하기

    1. 눈을 감고 깊은 상상에 잠긴다.

    2. ‘건강한 나’가 사는 평행우주로 날아간다.

    3. ‘건강한 나’가 사는 방문 앞으로 걸어간다. 최대한 생생하게 문을 그려보고 문의 감촉도 느껴보라. 살며시 문을 열고 들어간다.

    4. 객관적인 눈으로 ‘건강한 나’를 바라본다. 그리고 ‘건강한 나’의 속으로 들어가 슬며시 하나가 된다. 이제 ‘건강한 나’를 느껴본다. ‘건강한 나’의 호흡, 맥박, 심장박동은 어떤가? 에너지를 느낄 수 있는가? 여기서 가장 중요한 것은 몸의 리듬(파동)이다. 건강한 사람은 리듬이 다르다. ‘예전의 나’와 비교해 리듬이 어떻게 다른지 고요한 마음으로 느껴보라.

    5. 다시 ‘예전의 나’로 돌아와 문을 나선다. 여전히 눈을 감은 채 달라진 나를 느껴본다.

    6. 눈을 뜨고 달라진 나를 느껴본다.

      

         예컨대 A, B, C 세 사람의 현재 영어 실력은 비슷하다. 지능도 비슷하다. 이들이 동시에 영어 공부를 하기로 했다고 하자. 하지만 영어 책을 펼칠 때마다 세 사람의 생각은 각기 다르다.

    A: “1년만 하다가 그만둬야지.”

    B: “직장 다닐 때까지만 하다가 그만둬야지.”

    C: “평생 공부하며 살아야지.”

      

         환자들은 수술해서 나았다기보다는 ‘이제 수술을 받았으니 나았을 거야’라는 믿음으로 나았다는 것이다. 즉, 그런 믿음이 들도록 하는 전기신호만 두뇌에 보내주어도 실제로 수술 효과가 생긴다는 말이다. 이처럼 우리가 오감을 통해 느끼는 ‘현실’은 실제로는 현실이 아닐 수도 있다. 평생 완벽한 최면에 걸려 착각 속에서 사는 것일 수도 있다. 만일 우주에 있는 불가사의한 누군가가 모든 걸 현실처럼 착각하도록 해주는 완벽한 전기신호만 보내준다면 말이다. 하지만 당신은 여전히 눈을 부라릴지 모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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