책 속의 한 구절
세계적인 위인으로 추앙 받은 처칠과 키에르케고르, 링컨 또한 불행을 피해 가지는 못했다. 아니, 평생 불행의 그림자가 그들을 짓눌렀다. 그러나 그들이 나빠서 혹은 죄를 지어서 이런 불행을 겪은 것은 아니다. 그저 살다 보면 좋은 일, 나쁜 일이 다 일어나는 것이 바로 우리네 인생이다. 우리는 그 사실을 받아들여야 한다. 그러니 나쁜 일이 일어났다고 해서 자책하며 주저앉지 말자. 그리고 더 이상 ‘왜 나한테만 이런 일이 일어나는가’라고 묻지도 말자.
냉소가 위험한 이유는 그 안에 내재되어 있는 허무주의와 무력감, 분노와 파괴력 때문이다. 아무리 노력해 봐도 안 된다는 무력감은 원하는 것의 가치를 파괴해 버림으로써 더 이상 욕망하지 않게 만든다. 그래서 냉소주의자는 현실로부터 한 발 떨어진 방관자가 되어 모든 것을 비웃는다. 열정이나 고뇌, 고통은 모두 비웃음의 대상일 뿐이다. 그리고 자기만이 무가치함을 이해하기 때문에 다른 사람보다 더 똑똑하고 세상을 잘 안다고 생각하면서 우월감에 젖는다. 그래서 세상을 발밑에 두고 내리깔고 보면서 지배하려 든다.
하지만 냉소적인 비웃음 뒤에는 버림받을까 봐, 상처 받을까 봐 두려워 울고 있는 얼굴이 숨어 있다. 또한 좌절된 욕망이 일그러진 형태로 숨어 있다.
가만히 마음을 한번 들여다보라. 당신은 무언가를 절실히 원했었다. 그런데 이런저런 이유 때문에 원하는 것을 이룰 수가 없게 되었다. 그래서 너무 화가 난 나머지 세상을 잠시 밀어 둔 것뿐이다. 그런데 이제는 겁이 나는 것이다. 냉소를 버려 봤자 원하는 것을 얻지 못할 것 같아서 아무런 시도도 하고 싶지 않은 것이다. 당신의 열등하고 부족한 모습이 세상에 드러날까 봐, 실패해서 사람들의 비웃음을 사고, 사람들로부터 버림받을까 봐 두려운 것이다.
젊어서는 냉소가 철학적이고 멋있게 보일런지도 모른다. 그러나 나이 들어서까지 냉소적인 태도를 유지하는 것은 당신이 가장 두려워하는 것, 즉 당신이 실패자이며 가까이 하기엔 까다로운 사람임을 만천하게 알리는 것에 불과하다.
최선의 선택을 하는 방법은 무엇일까. 바로 당신이 좋아하는 것을 선택하면 된다. 처음에 무엇인가 당신의 마음을 확 끌어당겼다면, 그것이 당신이 가장 좋아하는 것일 가능성이 높다.
정신분석에서 치료자는 언제나 중립적인 태도를 견지해야 한다. 환자의 문제에 공감하되 판단하거나 편을 들어선 안 되고, 환자가 스스로 깨우칠 수 있도록 문제를 직면하게 만들고, 문제의 원인을 명료하게 하며, 그 결과를 해석해 주는 역할을 해야 한다. 만일 치료자가 환자에게 지나친 동정을 느끼거나 편을 들게 되면 치료는 더 이상 진전이 없게 된다.
자신이 뭘 원하는지, 뭘 좋아하는지 모른다고? 그런데 이야기를 가만히 듣다 보면 한 가지 잘못 생각하고 있는 점이 있다. 그들은 원하는 일을 하면 싫증도 지겨움도 없이 항상 즐거울 것이라고 생각한다. 그러니까 어떤 일을 하다가 지겹고 싫증이 나면 자신이 원하는 일이 아닌 셈이다.
하기 싫은 일을 만나면 최단 시간 내에 끝내고 말겠다는 작정을 하고 덤벼 보라. 그걸 해내고 나면 자기 자신을 이겼다는 뿌듯함이 생기고, 그런 승리의 경험들이 쌓이다 보면 어느새 무엇이든 잘할 수 있을 것 같은 자신감을 얻게 될 것이다.
단언컨대 사랑하는 사람을 구원하려 하거나 치유하려 들지 마라. 그러면 그 관계는 깨어지게 되어 있다. 만일 사랑하는 사람이 오래된 과거의 고통에서 벗어나기를 바란다면 그에게 상담을 받아 보라고 권하라. 그런 다음 그가 스스로 문제를 해결할 때까지 기다려 주라. 그를 있는 그대로 사랑하면서 말이다.
아이가 자라 어른이 되면 부모는 응당 자녀를 품에서 떠나보내야 한다. 만약 부모가 어른이 된 자녀를 계속해서 자신의 울타리에 가둬 두려고 하면 자녀는 자신의 자율성과 독립성을 지킬 수 없어 괴로움을 느낀다.
두렵거나 창피해서 우울을 가슴 깊이 억누르면 다른 감정도 함께 억압될 수 있다. 그러면 삶에 대한 생동감을 잃어버리고 무기력해져 결국 ‘우울증’이란 병에 걸리게 된다. 역설적이게도 우울을 감추려다 우울증에 걸리고 마는 것이다. 그러므로 항상 웃는 얼굴이 반드시 좋은 것만은 아니다.
우울은 지금까지의 삶의 방식에 무언가 문제가 있음을 알리는 심리적 신호이며, 새로운 변화를 모색하는 과정인 것이다. 그러니 우울에 빠져 흥미도 없고 활동량이 줄어들 때는 새로운 변화를 위해 암중모색의 시기를 겪고 있다고 생각하면 된다. 비록 겉으로는 아무것도 할 수 없는 무력한 상태처럼 보인다 해도 내면적으로는 매우 많은 일이 일어나고 있는 것이다
잘못한 것도 없이 일단 덮어놓고 사과부터 하는 사람들이 있다. 그들은 다른 사람과 대립하는 것을 극도로 꺼린다. 그래서 먼저 서둘러 사과를 해 버림으로써 마찰을 피하려고 한다. 자신의 의견을 내세우기보다 차라리 다른 사람의 의견을 따르는 게 속 편하다고 스스로를 위로하면서 말이다.
잘못한 것도 없으면서 사과를 하는 것은 스스로를 모독하는 행위이다. 당신 자신을 함부로 대하지 마라. 그래서는 안 된다.
“김 선생은 아무것도 안 해 주고 있는 게 아니야. 그 환자의 말을 열심히 들어 주고 있잖아. 그 환자가 지금까지 김 선생처럼 자신의 말을 열심히 들어 주는 사람을 만난 적이 있었을까?
다른 사람의 말을 듣다 보면 나도 모르게 끼어들고 싶어질 때가 있다. 특히 이야기 도중 생각이 다른 부분이 있으면 그 다음 이야기로 쉽게 넘어가지 못한다.
상대방의 말을 있는 그대로 수용하도록 노력해야 한다. 다른 사람을 판단하고 평가하기는 쉽다. 하지만 그 평가는 오직 내 기준에 따른 것일 뿐이며 나 역시 완벽한 사람은 아니다. 그러므로 겸손해야 하며 상대방을 존중해야만 한다.
결정적인 순간에 말하는 것이 좋은데 그것은 상대방의 말을 듣다 보면 저절로 알 수 있다. 상대방의 말에 모순이 생길 때, 상대방이 자신의 말에 혼란을 느낄 때, 잘 들어 주는 것에 대해 상대가 고마움을 느낄 때 등등……. 이렇게 상대가 스스로 문제를 선명하게 보기 시작할 때 의견을 피력하면 된다.
나는 오늘날의 발전이 한 사람의 천재에 의해 이루어진 것이 아니라 보통 사람들에 의해 이루어졌다고 확신한다.
천재가 불씨를 심었겠지만 그것을 가꾸고 향유케 한 것은 평범한 사람들이다.
─ D. H. 로렌스(영국의 소설가)
북극성을 지표로 삼아 목적지를 찾는 것이 아니라, 북극성이란 별에 도달하려고 애쓰면 결국 우리가 도달하는 곳은 차가운 북극이 된다. 그리고 그곳에서 우리는 추위와 외로움과 공포에 떨게 된다. 즉 현실에서 너무 멀리 떨어진 이상을 추구하다 보면 우리는 초라한 자신과 현실에 실망하고 우울해지기 쉽다.
“왜 평범해서는 안 되는가?”
평범함의 자유로움, 평범함의 관대함, 그리고 평범함 속의 여유……. 서로의 실수를 보듬어 주고, 서로의 부족을 메워 주는 넉넉함은 바로 이 평범함 속에 있다.
사람들은 불행을 인정하지 않으려는 경향이 있다. 불행을 인정하면 자신이 너무 비참하고 무기력한 볼품없는 존재가 되는 것 같아서, 혹은 뒤따라오는 분노와 좌절감을 감당할 자신이 없어서 아예 그런 일이 없었던 것처럼 부인해 버린다.
너무 아파서 서둘러 구멍 마개로 막아 버렸던, 그래서 해결되지 못한 채 마음속에서 곪아 버린 상처. 이제는 오래된 구멍 마개를 열고 상처를 들여다봐야 할 때이다. 과거의 불행을 인정하고 상처와 직면해야만 상처를 치유할 힘을 얻게 되기 때문이다.
모든 일을 부정적으로 생각하는 사람들이 의외로 많다. 이들은 남들과 똑같은 사건을 겪어도 부정적인 사건은 더 부정적으로 평가하고, 긍정적인 사건마저 부정적으로 바라보며 덜 긍정적으로 받아들인다. 그러다 보니 즐거운 일은 별로 없고 온통 불쾌한 일투성이다. 더 나아가 ‘내 인생은 엉망진창이다, 나는 내가 싫다’라며 스스로를 파괴한다. 자기 존재의 의미마저 부정하면서 자신을 전혀 쓸모없고 무가치한 인간이라고 규정짓기에 이른다.
긍정적인 사람들이 긍정적인 생각과 부정적인 생각을 하는 황금 비율은 1.6 : 1이다. 이처럼 긍정적인 사람들도 부정적인 생각을 안 하는 것은 아니다. 하지만 그들은 부정적인 생각을 극단으로 밀고 나가지는 않는다.
아버지 세대에게 주어진 과제가 생존이었다면 당신에게 주어진 과제는 인생을 즐기고 일과 삶에서 의미를 찾아가는 것이다. 그것에 열중하라. 그러면서 아버지 세대가 일에 몰두하느라 놓친 것들을 메우기 위해 노력하라. 그러다 보면 언젠가 당신의 아들에게 좀 더 나은, 의미 있고 풍요로운 세상을 물려 줄 수 있을지도 모른다.
30대를 얼마나 치열하게 사느냐에 따라 자신이 일하는 분야에서 얼마나 능력 있는 전문가가 되는지가 결정되는 것이다.
30대에는 선택한 것이 무엇이든 아주 틀린 길이 아니라면 할 수 있는 한 최대한의 노력을 기울이는 것이 좋다. 일단 선택한 일에 몸을 던져 치열하게 살아 보라. 30대에는 그래야만 한다. 시간은 정직하다. 시간은 좋은 것이든 나쁜 것이든 우리가 쏟은 열정과 에너지의 양만큼, 딱 그만큼의 결실을 돌려준다. 그것이 바로 시간의 법칙이며, 많은 사람들의 사례가 그것을 증명한다.
상사의 조언이나 명령이 모두 괜한 구속이나 통제처럼 느껴지고, 직장에서의 규율이 자신을 속박하는 것만 같아 숨 막혀 하는 것이다. 그러다 보니 이를 견디지 못하고 직장을 그만둘까 심각하게 고민하는 경우가 종종 생긴다. 시키는 대로 해야만 하는 통제 속에서 살 것인가, 아니면 자유로운 삶을 즐길 것인가의 딜레마가 발생하는 것이다.
당신은 자아가 약해서 규율을 따르고 명령을 수행하는 것을 타인이 나를 지배하는 것처럼 느껴 두려워하고 있는 것이다.
대리가 되면 자신이 하는 일에 온전히 책임을 질 수 있어야 한다. 홀로서기를 해야 하는 것이다. 이때 의존 욕구가 강하고 독립에 대한 무의식적인 두려움이 많으면 대리라는 직급이 맞지 않는 옷처럼 거북하게 느껴질 수 있다. 자신을 바라보는 부하 직원의 눈빛이 겁이 나고, 상사들이 자신에게 실망할까 봐 긴장하면서 자신감을 상실할 수 있다. 이 문제를 극복하지 못하면 다시 공부를 해야겠다며 직장을 그만두기도 한다.
젊은 사람들은 비판을 견디지 못한다. 심지어 시킨 일을 똑바로 못해서 야단을 치는 것인데도 그것을 곧 자신에 대한 비난으로 받아들여 분노하고 우울해 한다. 자기가 한 일과 자신 자신을 분리하지 못하는 것이다. 특히 자존감이 낮고 자기가 하는 일에 대해 회의적인 사람일수록 비판을 마음 상하는 일로 받아들일 확률이 높다. 이들은 비판을 받으면 그것을 자신에 대한 공격으로 받아들이거나 상대방에게 거부 당했다고 느끼기 때문에 굴욕적으로 움츠러들면서 자기 비하에 빠진다
부당한 비판도 내가 받지 않으면 내 것이 아니다. 그러니 부당한 비판을 받았을 때 거기에 에너지를 쏟지 말고 그냥 넘겨 버리도록 하라. 상처 주려는 사람을 이기는 법은 그냥 무시하는 것이니까.
만일 당신이 이성을 잃고 흥분하는 모습을 보인다면 결국 그 비판이 맞다고 인정하는 꼴이 되고 만다. 그러므로 절대 흥분하지 말고 그의 비판을 정중히 들은 다음 인정할 것은 인정하되 그렇지 않은 것은 조목조목 반박하라. 그러면 상대가 오히려 약이 올라 사람들 앞에서 실수를 할지도 모른다.
남에게 충고를 할 때는 다시 한 번 생각해 보라. 그는 당신에게 잘못을 지적해 달라고 부탁하지 않았다. 그러므로 자칫 잘못하다가는 당신이 간섭하기 좋아하고 잘난 척하는 사람으로 오해 받을지도 모른다.
죽고 싶은 충동에 시달리고 있다면, 그것은 혼자서 풀기 어려운 문제에 봉착했음을 알려 주기 위해 당신의 내부에서 보내온 메시지임을 이해하라. 정말로 죽고 싶어서가 아니라 죽고 싶을 정도로 괴로우니 어떻게든 도와 달라고 삶을 향해 던지는 외침인 것이다. 그러니 고통을 나눌 만한 누군가에게 도움을 청하는 것이 옳다.
일찍 늙기를 원하는가? 그러면 세상에 대한 호기심을 거두어라. 호기심을 잃는 순간 당신은 세상을 다 산 늙은이가 될 것이고 더 이상 욕망으로 괴로워하지 않게 될 것이다.
호기심에 관한 한 어린애가 되어라. 호기심을 잃어버리는 순간 당신은 늙게 될 것이다. 나이 들면서 가장 경계해야 할 것은 바로 호기심을 잃는 것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