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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59번째 책] 교황의 역사 - 도시에서 세계로 (★★★★☆)
    1000권 독서 2016. 10. 6. 22:30


    도서명 : 교황의 역사 (도시에서 세계로)




    책의 내용을 일부 발췌하고 그에 대한 생각들을 남기는 방식으로 정리하였습니다.


    로마 교회는 껄끄러운 존재인 황제의 간섭에서 벗어나 자유를 얻게되었다.
    이제는 로마 주교는 황제의 전속 사제가 줄 위험에서 벗어난 것이다. 
    - 로마 교회를 중심으로 국가라는 권력으로부터 교회의 세속의 권위와 권력을 유지하려는 노력은 가톨릭 초기부터 핵심 활동으로 자리매김 하였다. 지금은 그러한 노력의 결실을  제대로 누리고 있는 듯 하다.  



    샤를마뉴는 교황에세 순결서약을 시키고, 성탄절날 드디어 교황의 주제하에 로마인의 황제로 즉위한다. 이 사건은 두 당사자의 의도를 훨씬 넘어버렸는데 교황은 황제를 축성한 권리를 획득했고, 한편 황제는 교황의 축성을 통해 교회 전체를 간섭할 수 있는 권리를 마음대로 누리게 된 것이다.
    또 하나의 콘시탄티누스가 된 사를마뉴 대제는 자신을 ‘교회의 수장’이자 ‘하나님의 심부름꾼’이라고 불렀다.그리고 교황에게는 제국의 번영을 위해 기도할 임무를 맡겼다. 
    - 교황과 황제의 권력은 앞치락, 뒷치락 권력을 주기도 빼앗기도 하며 하나의 춤사위를 보는듯 하다.동시대의 교황과 황제가 어떠한 성향이냐, 둘의 관계가 어떠했느냐에 따라 양상은 180도 다른 모습을  보이곤한다. 



    개혁파의 총수는 로마 교회의 부주교 힐데브란트였다. 교황 니콜라우스 2세와 알렉산데르 2세의 권위 있는 자문인 그는 교황권을 황실에서 해방시킬 방법을 찾았다. 1059년의 라테라노 주교 대의원 회의는 그의 의견을 따라 교황 선출을 콘클라베 즉 추기경들로 구성된 선거인단에 맡기기로 한다.
    이때부터 일반 성직자들과 로마 시민들은 선출된 교황을 환호하기만 하면 족했고, 황제는 선거결과를 통보받기만 했다. 
    - 신의 권위와 능력을 위임받았다고 여겨지는 교황을 사람의 의견을 모아 뽑는다는 것 자체가 하나의 아이러니 같다. 하지만 다수의 의견으로 세워진 권력임에도 가톨릭 내부적인 리더쉽에 대한 저항이나 반항이 전혀 없었다는 사실이 다소 놀랍긴하다. 어찌보면 가톨릭 내부적인으로는 왕정을 이루면서도 권력의 갈등이 없이 완전한 권력을 유지했다는 사실만으로도
     


    황제와 왕에게 굴복하지 않고 교회를 정화하는 방법은 단 한가지, 교황권을 회복하는 것이었다. 그레고리우스는 이를 (교황지령) 27조목으로 간결히 설명했다.
    - 가톨릭을 다른 단어로 표현하면 성문화의 종교라고 할수 있지 않을까 싶다. 교황을 통해 성문화된 문서들이 교황의 권위를 지닌채 수많은 사람들과 시간들을 지배해오는 모습이 보인다. 




    십자군은 예루살렘의 영구적 정복이라는 정치적 목적은 이루지 못했지만, 이 전쟁을 통해 적어도  두 개의 중요한 결과를 가져왔다. 그 하나는 서구 세계가 이슬람과 콘스탄티노플의 동방 문화들과 다시 관계를 맺었다는 사실이며, 또 하나는, 교황이 서구의 진정한 수장으로 떠올라 위세를 떨쳤다는 사실이다.
    - 권력의 최정점으로 여겨지는 군부권력, 교황의 권력의 최정점을 보여준다. 
    교황은 단순히 한 종교의 수장이라기 보다는 서구를 대표하는 하나의 리더십이다.



    사실 제후들은 공의회를 교회의 민주적 발전을 위한 것이 아니라, 교황을 복종시킬 도구로 보았던 것이다.
    - 강력한 권력을 무너뜨리는 또 하나의 방법은 권력을 구성하고 있는 구성원들을 통해 새로운 대결 구도와 내부적인 갈등을 초래하는 방법이 있다. 


    소위 과학적 진리란 신앙에 역행할 위험이 다분했기 때문에, 교회의 시각은 부정적일 수밖에 없었다. 게다가 17세기 후반부터 근대화는 교회의 동의도 없이, 아니 오히려 거스르는 방향으로 발전해 갔다.
    - 과학과 종교의 대립이 시작되는 시점, 가톨릭은 과학이라는 하나의 문명으로 인해 대중들에게 끼치는 영향이 줄어드는 상황을 막기 위해 근대화 초기부터 과학을 하나의 악으로 규정하고 공적인 메시지를 통해 과학을 반대하고 탄압하기 시작했다. 여러가지 행정적인 방법들을 통해 근대화를 교황이 직접 막았다. (심지어 교황은 ‘철도’란 지옥을 향해 가는 길’ 이라고 말하곤 했다) 



    실제로 피우스 9세를 비롯한 그의 계승자들은 새롱누 교리들을 규정하는 일에 몰두하지 않았다. 그보다 그들은 교회의 구조 안에서 자신들의 지배적인 입장을 강화하기 위하여 무오류성을 내세운 공의회 문서에 의거했다. 교황 절대주의는 그야말로 절정에 달해 있었다.
    - 이 책을 읽으며 가장 충격적이었던 단어는 ‘무오류성’이라는 단어이다. 인간이 무오류성이라는 단어를 앞세우며 한 인간을 신격화 하는 모습에 내가 알고 있던 가톨릭이라는 종교에 대한 인식이 바뀌었다. 단순히 평화와 사랑과 자비를 추구하는 종교가 아니라, 완전한 인간을 통한 완전한 권력을 유지하려는 참으로 파렴치한 종교라 생각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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