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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258번째 책] 끝이 있어야 시작도 있다 (★★★★★) - 박찬호
    1000권 독서 2018. 9. 11. 22:25




    책 속의 한 구절


    지금에야 생각해보니 매번 흔들리는 나를 잡아주었던 것은 야구였다. 인생에서 자신을 지탱해주는 것이 너무나도 분명했다는 면에서 나는 행운아였다. 하지만 그 삶이 결코 쉬웠던 것은 아니다. 메이저리그, 그 얼음판 같은 최고의 자리에서 몇 번이나 좌절했다. 심지어 너무 괴로울 때는 야구가 있다는 생각도 하지 못했다. 하지만 그 치열했던 시간과 공간에서 몇 걸음 떨어진 이제야, 나에겐 늘 야구가 있었음을 깨닫게 되었다.

      

    나는 하나의 열린 길이 계속되고 있다는 것을 느끼고, 그 속에서 자부심을 얻는다. 충분히 내가 느껴도 될 만한 자부심이라고 생각한다. 내가 그 길을 처음 열었기 때문이 아니라, 그 길을 이어나갈 사람들이 계속 등장할 것이기 때문이다. 나의 영광이 나만의 영광으로 그치지 않을 때, 더 나아가 그 영광이 잊히고 그 영광의 주인공인 나마저 잊힌다 하더라도, 어떤 길이 계속될 때 느끼는 그런 자부심이라는 게 있다.

      

    상대 선수를 파악하고 있으면 경기에 도움이 된다. 상대의 전략을 잘 파악하고 있으면, 훨씬 더 우월한 위치에서 더 큰 힘이 발휘되기도 하지만 때로는 아는 것이 독이 될 수도 있다. 상대의 단점만 공략해서, 나를 상대의 약점 위에 세우려고 하기 때문이다. 그것은 진정으로 강해지는 길이 아니다. ‘안다는 것’이 가지는 위험한 유혹은 언제나 있다. 하지만 당시의 박찬호는 그런 것 자체를 아예 몰랐다. 그저 포수만 보고, 순수한 마음으로 내가 던질 수 있는 공을 던졌다. 그 모습에 사람들은 박수를 치고 환호했던 것이다.

      

    나는 지금도 그 무대에서 내가 마음껏 던진 공 하나하나를 기억하고 있다. 그 공 하나하나가 메이저리그라는 문을 열었다고 생각한다.

      

    경험이 부족한 사람은 불확실한 것을 견디지 못한다. 그래서 오히려 더 큰 가능성을 놓치게 된다.

      

    LA 다저스는 나를 데려가 무조건 팀을 우승시키려고 했던 게 아니었다, 선수 하나를 키워보고 성공시키겠다는 꿈이 있었다. 구단주는 최종 결정을 하는 데 고민을 많이 했지만 결국 나를 영입하기로 했다.

    ‘도전이 없으면 성공도 없다.’

    당시 이런 말도 했다고 한다. 그 말은 나에 대한 평가이기 이전에 다저스의 미래에 대한 이야기였다고 생각한다.

      

    흔한 글러브나 배트, 세상에 널렸다는 맛있는 음식……. 그러나 그 어느 하나 풍족하지 않은 어린 시절이었다. 자라면서 이런 물질적인 것에도 가끔 위축이 되었지만, 그것보다는 기능적인 면에서 누가 나보다 잘한다는 이야기를 들으면 굉장히 부러웠다. 나보다 더 실력이 좋은 선수들의 이야기를 듣거나, 시합을 보게 되면 엄청난 자극이 되었다. 나는 오로지 그들처럼 ‘잘난’ 선수가 되기 위해 나를 보완하려고 노력했다. 어찌 보면 나란 녀석은 콤플렉스 덩어리였는지도 모르겠다.

      

    연습을 ‘알아서’ 하겠다고 한 녀석이, 공식 훈련이 다 끝나도, 휴일이어도, 혼자서 남아서 미친 듯이 연습을 하더란다. 하루, 이틀, 사흘……. 그렇게 안간힘을 쓰고 있더라는 것이다. 그게 저 녀석이 말한 ‘알아서 한다’는 것이구나. 그렇다면 저 ‘건방진 놈’이 어쩌면 어떻게든 일어서보려 ‘애쓰는 놈’ ‘일 한번 낼 놈’이 아닐까 하고 생각하신 거다.

      

    청소년 대표팀에서 존중받는 또래 선수들을 보며 나는 자존심이 상했던 것이다. 콤플렉스를 가졌던 것이다. 그리고 ‘난 왜 저렇게 못 하나’ 하는 생각이 나를 성장하게 만들었다. 중요한 것은 나에게 주어진 ‘자극’에 맞선다는 점이다. 그 자극이 어떤 것인지는 오히려 중요하지 않다. 맞서야겠다고 생각하면 스스로 자기 자신을 강하게 단련시키고, 그 콤플렉스를 극복할 방법을 찾게 된다.

      

    사람들은 자신에게 주어진 경쟁에서 지면, 더 높은 조건은 아예 생각도 안 한다. 그러나 아예 상상도 해보지 않는 것은 어리석다. 사람들은 꿈을 가져야 한다고 말한다. 나는 꿈이라는 게 ‘혹시’라는 생각이라고 여긴다. 나에게 지금 주어진 것이 좁다 하더라도, 혹시 내가 환경을 변화시킬 수 있지 않을까. 혹시 이렇게 바꾸면 뭔가 다른 길이 열리지 않을까. 그런 의심과 상상에서 출발하면 된다. 왜냐하면 그런 생각은 철저하게 ‘나 자신’을 향하고 있기 때문이다.

      

    혹시 지금과 다를 수 있지 않을까 하는 생각. 용기의 원천은 바로 여기에 있다.

      

    나는 사람들 각자가 하나의 영웅이 되어야 한다고 믿고, 그러길 바라기 때문이다. 누구나 스스로 영웅이 되어서 그 안에서 꿈을 꾸고 기쁨을 찾아야 한다고 생각한다. 타인의 모습에서 영웅을 찾는다면, 언젠가 그 사람이 힘을 잃고 지치면 더 크게 실망하게 될 것이다. 그러고는 곧 다른 영웅을 찾아 나서게 될지 모른다. 결국에는 내 인생의 영웅을 끝내 못 찾게 되는 꼴이 될 것이다.

       

    미국 야구선수들은 일본에서 온 취재진에 대해서도 호의적이었다. 왜 그럴까? 그런 의문을 가지니 일본 기자들이 상대가 호감을 가지도록 행동하는 게 보였다.

    다저스에 와서 취재를 하고, 여러 선수들을 인터뷰를 한 일본 기자들은 항상 선수들에게 깍듯하게 감사를 표할 뿐만 아니라, 크든 작든 꼭 선물을 줬다. 취재에 협조해준 데에 대한 마음의 표시를 분명히 하는 것이다.

      

    나는 그런 점에서 개인과 가족과 사회에 대한 사명감이 다르다고 생각하지 않는다. 모든 사명감은 사실 ‘개인’을 향해 있다. 가족, 팀, 나라에 대한 사명감이 목적은 다르게 보이지만 바로 나를 위한 사명감이었다. 그리고 이제는 알고 있다. 모든 종류의 사명감은 사람을 성장시킨다는 것을. 사명감이 없다면, 어쩌면 성장 자체가 불가능할지도 모른다.

      

    내 안에서는 믿음과 두려움이 늘 싸우고 있었다. 자신이 해낼 수 있을 거라는 믿음과 그러지 못하면 어떻게 하나라는 두려움. 그러다 믿음이 두려움을 조금 더 이기는 날이 있다. 그럴 때는 마음속 수평이 확 깨지면서, 치고 올라가는 기운을 느낀다. 그럴 때면 두려움이 사라진다. 그러나 잠시 후 또 다른 종류의 두려움이 닥쳐온다. 그러면 나는 다시 인내하고 절제한다. 나의 메이저리그 생활은 물론, 야구를 하는 내내 이런 과정이 이어졌다.

      

    나는 ‘더 잘하고 싶을’ 때면, 우선 내가 지금 어떤 상황인지부터 살폈다. 내가 만약 비디오게임을 재밌게 하고 있다면 게임을 그만뒀다. 여자친구와 데이트를 하고 있으면 당분간 만나지 않기로 했다. 친구들과 자주 만나는 것 같은 생각이 들면 친구들이 밖으로 나오라고 해도 참았다. 그런 즐거움의 대가를 지불하고 있다면, 오히려 그 즐거움을 반납하고 야구를 얻고 싶었다. 얻는 게 있으면 반드시 잃는 게 있는데, 나는 야구를 잘하고 싶지 다른 것을 원하지는 않았기 때문이다. 나는 야구에서 이기고 잘하는 것 외에 내가 다른 종류의 행복을 누리는 게 뭐가 있을지 생각했다. 그리고 그것을 하나씩 없앴다. 그것은 행복을 버리는 것이 아니라, 내가 소중하게 여기는 것을 가장 ‘중심’에 두는 방법을 알아가는 과정이었다. 그러면 야구가 내 중심에 온다. 그리고 이제 가장 중심에 있는 것에 맞추어 내 삶에 부여되는 환경들을 변화시킨다.

      

    오늘 내가 실컷 논다고 해도 내일 내가 어디에 공을 던져야 하는지, 어떻게 던져야 하는지, 무엇을 해야 하는지에 대한 감각은 항상 갖고 있기 때문이다. 그들은 놀고 있으면서도 사실은 공을 던지고 있는 것이다. 그렇게 잘하는 사람, 성공하는 사람은 자기 분야에 대해 늘 의식을 갖고 있다고 생각한다. 마치 애플의 스티브 잡스처럼 말이다. 그게 투수라면 24시간 내내 공을 던지고 있는 거다.

      

    무슨 일이든 똑같다. 자기가 잘하고 싶다면, 이기고 싶다면, 우선 그것에 미쳐 있어야 한다. 쉬고 싶고, 놀고 싶고, 다른 걸 하고 싶은 마음이 들면 그건 아직 의식에 틈이 많다는 것이다. 그러면서 야구로 성공할 모습을 기대하면 안 된다. 그렇기 때문에 미치기 위해서는 동시에 절제라는 게 필요하다. 한 가지에 미치려면 다른 것들을 끊어낼 줄 알아야 한다.

      

    사랑하던 야구를 떠나면서 내가 깨달은 게 있다. 아무리 소중한 것이라도 떠나야 할 때가 온다. 하지만 중요한 것은 그 일이 없어져도 나는 사라지지 않는다는 사실이다. 가장 소중한 것조차도 ‘나 자신’과 분리할 줄 알아야 한다. 소중한 게 없어지면 내가 사라지는 것 같은 두려움을 느낀다. 그래서 그것만 움켜쥐고 있으려고 한다. 하지만 세상에 영원히 가져갈 수 있는 그런 일은 없다.

      

    나는 앞으로 나를 미치게 할 뭔가를 다시 발견하리라고 생각한다. 그리고 그 발견은 가장 소중하게 여기던 것과 나라는 존재를 분리해서 생각하는 것에서 시작할 것이다.

    우선 나라는 존재를 소중하게 생각하자. 내가 소중했기 때문에 그 일도 소중했던 것이다. 그런데 우리는 간혹 착각을 한다. 마치 ‘그 일’ 때문에 내가 가치를 인정받고 있다고 말이다.

      

    아주 낮은 곳에서부터 생각해보았다. 그런 생각이 가능했던 것은 모든 걸 내려놓았기 때문이다. 나에게 남은 게 아무것도 없다고 생각하고 빈털터리인 지금의 내가 할 수 있는 일들을 찾으니, 그것대로 할 수 있는 것이 보였다. 그리고 즐거움도 느꼈다. 그보다 조금 나은 일에 도전해보는 것도 생각해볼 수 있었다. 그러자 마음에 변화가 왔다.

    ‘그래 내일 실패해도 괜찮아. 초등학교에 가면 되니까. 올 시즌 실패하더라도 괜찮겠다.’

    할 수 있는 일이 머릿속에 들어오자, 죽고 싶은 마음이 사라졌다. 오히려 실패를 할지언정 죽지만 않으면 된다고 생각하게 되었다.

      

    텍사스 레인저스 시절, 나를 판단하는 기준인 야구가 바닥이었다. 누구나 슬럼프는 있다. 지금은 성적이 안 좋지만 언젠가는 좋아질 거라고, 그렇게 생각하면 좋았을지 모른다. 하지만 나에게는 그런 생각을 하는 게 쉽지 않았다. 내 존재 전체가 부정당하던 때였다. 당시 나는 진지하게 죽음을 생각했다. 죽음은 나의 아주 가까이에 있었다.

      

    그런 나를 구해준 것은 바로 ‘명상’이었다. 명상은 호흡을 고르는 것이다. 명상을 할 때는 어떤 판단도 하지 않는다. 아무 생각이 없어지도록 비우는 것이다. 30〜40분 정도 그런 시간을 갖고 나면 뻥 하고 뚫리는 느낌이 들었다. 그 뚫림을 통해서 내 지난 기억을 바라보게 되었다. 영화 속 주인공을 따라가듯이, 나를 나라고 생각하지 않고 객관적으로 바라보게 되었다. 그렇게 명상을 하던 중 마치 혼령이라도 된 듯이 나를 만나는 경험을 했다.

      

    과거를 빨리 잊어야 새로운 삶을 살 수 있는데 기억 속의 내 영광에 자꾸 집착하다 보니 정체되어 있었다. 제자리에 머무는 것, 정체되어 있는 상태는 슬럼프라는 하락으로 이어진다. 그걸 빨리 내려놓아야 했다. 버려야 했다. 하나씩 내가 가지고 있던 기존의 마음들을 버리기 시작했다. 그중에서 가장 큰 것은 자존심이었다. 나는 자존심마저 내려놓았다.

      

    지금 나는 야구를 그만두었지만, 일상에서도 언제나 새로운 일들은 나타난다. 내가 잘하지 못하는 일들도 생기고, 어색하고 피하고 싶은 순간들도 계속 나타난다. 그러면 ‘하지 말까?’ 이런 생각이 든다. 그럴 때마다 생각한다. 이건 인생을 사는 과정에서 겪는 잠깐의 움츠림일 뿐이라고.

      

    나는 명상을 하면서 생각을 깊게 관찰하는 시간을 갖기 시작했다. 명상에서 참 많은 것들을 얻었다. 훈련을 하면서도 명상을 한다. 마음을 다스릴 때는 잠시 행동을 멈추고 가만히 생각해본다. 판단하지 않고 우선 바라본다. 그러면 희망, 목표, 믿음, 도전 같은 나에게 중요한 화두들을 끄집어낼 수 있게 된다

      

    메이저리그에서 낯설었던 풍경 중의 하나는 코치가 선수에게 의견을 물어보는 것이었다. 어느 날 아침, 코치 한 명이 식사를 하는 선수들에게 다가가 뭔가를 물어보는 것을 보았다. 그는 ‘우리 팀이 이런 문제가 있는 것 같은데 넌 어떻게 생각하냐’라고 물었다. 그러자 그 선수는 자신의 생각은 어떤지 자세히 설명했다. 그 모습이 나에게는 낯설었다. 코치가 오히려 선수에게 뭔가를 배우고 있는 느낌이 들었기 때문이다.

    그 코치가 자신이 부족해서, 몰라서, 답답해서 물어본 것은 아니다. 문제점을 해결해야 하는 상대와 함께 그 문제를 공유하는 과정을 밟은 것이다. 그 선수의 대답이 맞는지 틀리는지를 판단하고자 물어보는 게 아니다. 같은 문제를 알고 있으면 위기는 심각해지지 않는다.

      

    위기도 마찬가지다. 위기를 겪지 않는 팀이 계속해서 이길 수 없다. 무엇보다 위기라는 것을 완전히 없앨 수는 없다. 잘하는 팀은 잘하는 대로 못하는 팀은 못하는 대로, 부족한 것이 생긴다. 그렇게 서로가 부족한 것을 자연스럽게 받아들이고, 입 밖에 내어 서로 말하고, 준비하는 마음 자세를 갖추는 것이 중요하다.

      

    같은 팀에서 상하관계를 막론하고 문제점을 공유한다는 게 굉장히 중요하다는 것을 알게 되었다. 메이저리그는, 강팀은 그걸 알고 있는 것이다. 무엇을 바꿔야 하는지를 서로 알고 있으면 바꾸기도 쉽고 용기를 내기도 쉽다. 왜냐하면 그 바탕에는 서로에 대한 믿음이 있기 때문이다.

      

    처음 미국에 갔을 때 경기에서 실수를 하고 나면, 차라리 한 대 맞으면 마음이 편할 것 같았다. 하지만 그들은 나를 때리는 대신에 이렇게 물었다. ‘다음에는 어떻게 할 거냐?’ 계속해서 계속해서 그렇게 묻기만 하는 것이었다. 그러면서 답을 주지도 않았다. 스스로 생각해내는 수밖에 없었다. 내가 했던 것을 파괴하고, 용기를 갖고 새로운 것을 시도해보고……. 그러면 실수도 실패도 지워버려야 할 과거가 아니라, 미래를 위한 성장 과정이 된다.

      

    “괜찮네, 다시 해보자(Good, do again).”

    분명 실투를 던졌는데 잘했다. 다시 던져봐라 하는 것이었다. 다시? 어떻게? 이번 건 아니라는 건가? 그러면 이렇게? 그리고 나서 다시, 또다시……. 그런 과정을 통해 나는 스스로 ‘어떻게 던져야 하는지’에 대해서 생각하게 되었다

      

    한국 사회는 칭찬에 인색한 편이다. 지적하고, 혼내고, 때려서라도 고쳐야 한다고 생각한다. 어쩌면 잘하는 것은 ‘당연’하고, 못하는 건 당연한 일이 아니기 때문에 ‘고쳐야’ 한다고 생각하는지도 모르겠다. 물론 잘못된 것은 고쳐야 한다. 그런데 꼭 큰소리를 내면서 야단치고 주먹이 앞서야 하는 것일까? 질책하는 마음은 이해한다. 안타까워서 그런 거다. 그런데 바꿔놓고 생각해보면 그 상황을 순간적으로 참지 못해 나오는 ‘급한 표현’인 것은 아닐까.

      

    미국에서는 내가 ‘잘 모르겠다’라고 하면서 먼저 도움을 청하면, 오히려 코치가 고마워하고 미안해했다. 그러면서 더 천천히, 자세하게 알려줬다. 그래야 자신도 자기 일을 확실히 한 셈이니까. 그런 과정에서 누구를 만나더라도 잘 모르는 것은 묻고 또 묻는 습관이 들었다.

      

    부정이나 질책의 효과는 눈에 띄게 빨리 나타나는 것처럼 보인다. 반대로 칭찬은 효과가 천천히 나타나는 것처럼 보인다. 어떨 때는 효과가 없어 보이기도 한다. 그러나 부정적인 피드백이 효과가 좋아 보일지라도 실제로는 악성 바이러스다. 그것은 언젠가 걷잡을 수 없이 큰 형태로 나타난다. 두려움이라는 거대한 벽의 모습으로.

      

    어려운 일을 겪으면 부정적인 감정이 먼저 올라온다. 부정적인 것은 속도가 빠르다. 긍정적인 것은 천천히 올라온다. 그만큼 큰 감정이기 때문이다. 그래서 아이들을 대할 때는 기다려주어야 한다. 아이들의 장점을 발견하는 데는 시간이 걸린다.

      

    긍정적인 피드백을 하기 위해서 무엇보다 지켜야 할 원칙이 있다고 생각한다. 바로 인내해야 한다는 것이다. 사람들은 오늘 칭찬해도 내일은 돌연 화를 내는 데 익숙하다. 그러면 앞의 칭찬은 아무런 효과가 없다. 듣는 사람 입장에서는 저 칭찬이 미덥지가 않다. 오늘은 저러지만, 내일 또 변하는 거 아닐까? 정말 진심으로 좋다고 말하는 것일까? 그런 의심이 간다. 서로 간의 신뢰가 깨지는 것이다.

      

    성공한 사람들은 노력, 최선, 열정, 비전, 인내, 절제…… 모든 것을 가지고 있다. 성공한 사람을 만들어낸 부모님이나 선생님은 그들보다 더 많이 노력하고 더 많이 인내했다. 늘 한결같이 격려하고 힘을 주었다. 진정한 칭찬의 힘은 바로 그런 것이다.

      

    미국 스포츠 스타들의 심리 상담을 맡은 도프먼 박사는 나에게도 정신적인 부분을 강조했다. 그는 마운드에서 내가 컨트롤할 수 있는 것은 사실 아무것도 없음을 가르쳐주었다. 예외가 있다면 오로지 지금 던질 차례가 된 공 하나, 내가 던지는 공 하나만 유일하게 내가 컨트롤할 수 있다는 것이다.

      

    상대방과 싸운다는 생각 자체를 버려야 한다. 그저 내가 연습했던 것과 싸워야 한다. 마운드에서의 게임은 내가 연습했던 것처럼 목표하는 저기에 공을 정확하게 넣느냐의 게임이다. 그 정확성이 바로 승패의 열쇠가 된다. 저 타자가 치고 못 치고는 그다음 문제다. 그런데 투수가 던지지도 않은 상태에서, 미리 타자가 치고 못 칠 것을 그려놓으니까 그 상황에 맞춰서 그냥 흘러가버리는 것이다.

      

    온 힘을 다해서 세게 던지는 게 최선이라고 착각하는 사람들이 더러 있다. 최선을 다한다는 것은 ‘하나를 던지기 위해 온몸과 마음을 다하는 것’ 그런 것이다. 몸과 마음을 다하는 것은 ‘정확하게’이지 강하게가 아니다. 해왔던 대로, 하고자 하는 대로 던지는 것이다.

      

    메이저리그에 와서 역사적인 선수들을 만나보고 많이 놀랐다. 놀란 라이언, 샌디 코팩스 같은 위대한 선수들, 나의 영웅이었던 선수들이 길거리의 여느 사람들처럼 똑같이 청바지를 입고, 운동화를 신고, 평범한 차를 타고 다녔다. 조용한 시골에서 검소하게 사는 그들의 모습을 보고 많은 것을 느꼈다. 가끔씩 스스로에게 질문하기도 한다. ‘영웅다운 게 뭘까?’

    나에게도 좋은 것, 비싼 것에 대한 유혹이 많았는데 그럴 때마다 고민하게 된다. ‘뭐가 좋은 것일까? 어떤 기준으로 생각해야 할까?’ 그럴 때마다 내가 봐왔던, 내가 존경하는 선수들의 삶을 생각하며 판단한다.

      

    게임이 열리는 야구장은 나에게 도를 닦는 학교, 수도원 같았다. 야구장에서 나는 야구라는 과목을 배우며 야구 유니폼이라는 교복을 입고, 인생을 배우고 수양했다. 그곳에서 나는 다양한 선수, 팬, 라이벌을 만나며 매일 하나씩 삶의 의미를 깨달았다.

      

    “내 글씨는 비록 말할 것도 못 되지만 / 나는 70 평생에 벼루 10개를 밑창 냈고 / 붓 일천 자루를 몽당붓으로 만들었다.”

      

    이기는 것은 습관이기 때문이다. 계속 지는 사람은 지는 게 습관화된다. 성적이 계속 안 좋은 팀들은 왜 그럴까? 우리가 못하는 것이, 우리가 지는 것이 반복되면 ‘당연하게’ 받아들인다. 그러면 지금의 아픔이 만들어낼 미래를 보지 못하고 나태해진다. 지면 쓰라려야 한다. 아파야 하고, 이 상처를 이겨내야겠다는 열망이 강해야 한다. 그러면 더 노력하고 준비하게 된다.

      

    우리는 몇 승, 탈삼진 몇 개, 홈런 몇 개, 팀의 우승 등과 같은 것들을 목표라고 생각한다. 맞는 말이다. 하지만 그보다 중요한 것은 ‘어떠한 마음을 먹고 임할 것인가’이다. 그게 바로 선수 하나하나의 목표가 되어 흔들리지 말아야 한다. 승보다 패가 많을 수도 있다. 하지만 순간에 좌절하지 말고 ‘오늘은 기필코 이긴다, 나는 어떠한 마음으로 경기에 집중하겠다’를 생각해야 한다.

      

    후튼 코치가 처음 다저스 마이너리그에서 2년 동안 나를 가르치면서 해준 말이 있다. ‘하느님이 사람을 만드는 데도 일주일이라는 시간이 걸렸다. 뭔가를 하루 만에 이룰 수 있는 것은 없다.’ 그는 선수 생활은 기니까 앞으로 차근차근 하나씩 제대로 배워가야 한다고 말했다. 공 하나, 1이닝, 한 경기가 생각만큼 잘 안 풀렸다고 해서 실망하지 말라는 이야기도 덧붙였다.

      

    선수와 코치, 감독, 구단이 끊임없이 소통하면서 서로의 가치를 공유하고 정정당당한 승부를 위해 노력하고, 질 높은 야구 경기를 위해 노력하는 게 바로 좋은 팀이 아닐까. 프로의 세계에서 승리는 중요한 요소이지만 이기려고만 하면 근심이 쌓여간다. 하지만 좋은 팀을 만들겠다는 목적이 확실하면 도전적인 경기 운영, 정정당당한 승부를 하게 된다.

      

    리더가 어떻게 하느냐에 따라 리더를 따르는 수많은 사람들이 생각하는 습관이 만들어진다. 그렇기 때문에 존경받는 명장들은 우선 판단력이 좋아야겠지만, 무엇보다 좋은 사람들을 옆에 두어야 하는 것 같다. 자기 혼자서만 할 수 있는 일은 많지 않기 때문이다. 메이저리그를 이끄는 많은 리더들을 보면서 덕을 기르려고 노력한다는 느낌을 받았다. 리더가 덕을 쌓으면 자연스럽게 좋은 사람들이 따라오게 되고, 그런 사람이 많을수록 큰 힘이 된다.

      

    믿음은 곧 존중이다. 윗사람이든 아랫사람이든 존중할 수 있어야 하는데, 이게 바로 덕이라고 생각한다. 덕을 갖춘 선한 리더는 늘 긍정적이다. 그래서 끊임없이 선수들을 신뢰한다. 물론 선수들도 이러한 리더를 믿고 따른다. 우리는 늘 긍정적인 것을 신뢰하게 되어 있다. 부정적인 것은 불편하니까 자꾸 멀어지려고 한다.

      

    소통할 때도 상대방인 선수를 존중하면서 ‘이렇게 하면 어떨까? 저렇게 하면 어떨까?’라고 이야기한다. 본인 또한 많은 위기와 시련을 이겨내기 위해 온갖 노력을 해왔기 때문에, 그 선수가 얼마나 노력하고자 하는지를 잘 아는 것이다. 이런 코치들에게는 존경심이 생긴다. 내가 존중받고 있다고 느끼기 때문이다. 사람을 이해하는 마음은 존중에서 온다. 존중하지 않으면 상대를 절대 이해할 수 없다.

      

    긍정적인 마인드로 믿고 기다릴 줄 아는 사람이야말로 진정한 리더로서의 자격을 갖춘 것이 아닐까. 올 시즌 내내, 1년 내내 한 선수가 실망을 주더라도 믿음으로 끝까지 그 선수의 자존심을 지켜준다면 그것은 언젠가 한 번의 결실로 나타날 것이다. 그 한 번의 성과를 보면 그동안의 많은 실망은 사라져버린다.

      

    좋은 리더는 사람에게 큰 기대를 가지는 게 아니라, 스스로 꽃피울 그 한 번을 보기 위해서 계속 투자하고 믿는 것이다.

      

    무엇보다 돈은 삶을 편리하게 해줄지는 몰라도 정신을 성장시키지는 않는다는 점을 기억해야 한다. 현재 메이저리거들 중에서도 이런 기준을 중시하는 선수들이 많다. 너무 욕심만 내는 에이전트와 헤어지고, 선수들이 직접 구단과 소통하는 경우가 늘고 있다.

      

    야구에서 실력의 차이, 기능의 차이는 사실 절대적이지 않다. 멀리 치지 않고도 점수를 낼 수 있고 세게 던지지 않아도 타자를 아웃시킬 수 있는 게 바로 야구다. 작전과 타이밍, 컨디션이 매우 중요한 스포츠다. 그렇기 때문에 기능적인 것 외에 정신적인 것을 항상 준비해야 한다. 실수를 줄이고 성공할 수 있는 집중력을 기르면 그게 바로 이기는 경기로 이어진다.

    그 점이 야구의 매력이다. 절대적으로 우월한 실력으로 멀리 치고 세게 던지는 게 아니라 ‘집중력’으로 승부해서 이겨야 한다. 그래서 야구는 집중력이 높은 선수들로 구성된 팀이 승리를 가져간다.

      

    동료는 판단하는 것이 아니라 관찰하는 것이다. 동료의 실수를 보고 기분이 나쁘다면 그것은 ‘판단한 것’이다. 그가 잘했는지 못했는지, 옳았는지 틀렸는지, 내가 판단하고 있는 것이다. 그러나 관찰하면 달라진다. 동료가 실수를 하면 기분이 나쁜 게 아니라 슬퍼진다. 슬프다는 것은 앞에서 이야기한 것처럼 그 사람의 입장이 되어 이해하는 것이다.

      

    미국에서 좋은 야구 공부를 한 것뿐만 아니라 좋은 야구 ‘철학’을 배워온 것을 실천하고 싶은 마음도 컸다. 미국 갔다 오더니 야구를 ‘더 잘하네’가 아니라, 미국에 갔다 오더니 ‘좀 더 생각할 줄 아는구나’라는 소리를 듣고 싶었던 것이다. 내가 배운 소통과 타협, 화합, 존중, 존경의 방법과 가치를 후배들뿐만 아니라 야구를 하는 많은 사람들, 팬들에게 전해주길 원했다.

      

    나는 야구를 통해서 항상 배우고 깨닫는 게 많았다. 그래서인지 아직도 계속 야구를 하고 있는 것만 같다. 그런데 나는 지금 누구와 경기를 하고 있지? 생각해보면 결국 ‘나’인 것 같다. 나와 계속 게임을 하고 있는 거다. 할 수 있냐, 없냐? 믿을 거냐, 버릴 거냐? 희망을 가질 거냐, 안 가질 거냐? 할겨, 안 할겨? 그러면서 게임을 계속 하고 있는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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