책 속의 한 구절
인간의 의식은, 희생자들뿐만 아니라 북반구 국민들의 의식은 이런 상태를 오래 참지 못할 것이다. 변화된 의식은 지구상의 모든 사람들이 충분한 식량을 확보하고 인간다운 삶을 누리기를 원한다. 기아로 인한 떼죽음은 참으로 끔찍한 반인도적 범죄다. 다른 사람의 아픔을 내 아픔으로 느낄 줄 아는 유일한 생명체인 인간의 의식 변화에 희망이 있다.
잘사는 서구 사람들에게 그런 끔찍한 장면은 별로 충격으로 다가오지 않아. 서서히 죽어가는 소말리아인들의 참상은 우리에게 그냥 평범한 일이 되고 말았어
소말리아에는 서로 적대적인 군벌(강대한 군사력을 배경으로 정치적 특권을 장악한 군인집단)들이 대립해서 대포와 칼리슈니코프 소총, 칼을 들이대고 싸우고 있어. 모두가 자신들의 군벌 대장에게 복종하고 있지. 각 군벌이 원하는 것은 자신들이 권력과 부와 가축을 독점하는 거야.
지원되는 식량은 절대적으로 부족한 양이란다. 게다가 부두에서는 마리화나를 피우는 무장한 남자들이 자기네 몫을 요구하지. 그러고는 그 쌀자루들을 짐차에 싣고 가서 북부시장에 내다 판단다.
영양부족으로 인해 회복할 수 없는 신체적 손상을 입은 사람들로, 서서히 죽음을 맞거나 또는 평생을 시각장애나 구루병, 뇌기능 장애 같은 중증 장애에 시달리며 살아가게 된단다.
동남아시아에서는 인구의 18퍼센트가 굶주림에 허덕이고 있단다. 아프리카에서는 인구의 35퍼센트, 라틴아메리카와 카리브해 지역에서는 약 14퍼센트가 굶주리고 있지. ‘심각한 영양실조’ 상태에 있는 사람들의 4분의 3은 농촌 지역 사람들이야. 나머지 4분의 1은 제3세계 대도시와 그 주변의 빈민촌 사람들이고.
국가의 보장체계는 집단농장과 더불어 거센 자유화 바람에 휩쓸려버렸지. 사회적 약자들은 마피아의 모습으로 등장하는 잔인한 자본주의에 무방비 상태로 내몰린 경우가 많단다.
서구의 부자 나라 사람들을 사로잡고 있는 신화가 있어. 그것은 바로 자연도태설이지. 이것은 정말 가혹한 신화가 아닐 수 없단다. 이성을 가진 대부분의 사람들은 인류의 6분의 1이 기아에 희생당하는 것을 너무도 안타까워해. 하지만 일부의 적지 않은 사람들은 이런 불행에 장점도 있다고 믿고 있단다. 그러니까 점점 높아지는 지구의 인구밀도를 기근이 적당히 조절한다고 보는 거야.
농업 생산력을 기준으로 계산하여 지구는 120억의 인구를 거뜬히 먹여 살릴 수 있다고 해. 먹여 살린다는 의미는 남녀노소를 가리지 않고 지구상의 모든 사람들에게 하루 2,400~2,700칼로리 정도의 먹을거리를 공급할 수 있다는 얘기지.
많은 지식인이나 정치가, 국제기구 책임자들은 엉터리 신화, 즉 기근이 지구의 과잉 인구를 조절하는 작용을 한다고 믿고 있단다.
기아가 산아제한의 수단으로 여겨지고 있는 거야. 강한 자는 살아남고 약한 자는 죽는다는 자연도태설. 이 개념에는 무의식적인 인종차별주의가 담겨 있어.
18세기 말 영국국교회 성직자였던 토머스 맬서스라는 사람이었어. 맬서스는 1798년에 인구법칙에 관한 논문을 발표했어. 이 논문에서 맬서스는 세계 인구는 기하급수적으로 성장하여 25년마다 2배가 되지만, 식량의 증가는 산술서열을 따르므로, 가난한 가정은 자발적으로 산아제한을 해야 한다고 주장했지. 그리고 가난한 사람들에 대한 사회보조나 지원은 중단되어야 한다고 했어. 맬서스는 질병과 배고픔은 가슴 아픈 일이기는 해도 이 사회에 필수적인 기능을 한다고 주장했단다. 지구상의 인구를 줄여주는 자연적인 수단이라는 얘기였지.
맬서스 이론은 근본적으로 틀렸지만, 심리적 기능을 충족시키거든. 날마다 기아에 시달리는 사람들과 구호시설에서 웅크린 채 죽어가는 아이들, 수단의 덤불 속을 비쩍 마른 몸으로 뛰어다니는 아이들을 보는 것은 일반적인 감성을 가진 사람들에게는 참을 수 없는 일이거든.
그래서 양심의 가책을 진정시키고, 불합리한 세계에 대한 분노를 몰아내기 위해 많은 사람들이 맬서스의 신화를 신봉하고 있어. 끔찍한 사태를 외면하고 그에 대해 무관심하게 만드는 사이비 이론을 말이야.
FAO는 ‘경제적 기아’와 ‘구조적 기아’로 구분하고 있어. 대략 설명하자면 ‘경제적 기아’는 “돌발적이고 급격한 일과성의 경제적 위기로 발생하는 기아”를 말한단다. 이를테면 가뭄이나 허리케인이 덮쳐 마을과 경작지, 도로, 수원지가 파괴되거나, 혹은 전쟁으로 집들이 불타고, 사람들이 거리로 내몰리고, 상점들이 파괴되고, 다리가 폭파되기도 하지. 그러면 갑작스럽게 식량이 바닥나고 수백만의 인구가 다음 날이면 금세 굶어 죽을 위기에 처하게 되는 거야. 국제적인 도움의 손길이 재빨리 미치지 않으면 많은 사람들이 굶어 죽게 되지.
‘구조적 기아’는 “장기간에 걸쳐 식량공급이 지체되는 경우”를 말해. 그 나라의 경제발전이 더딘 데 따른 생산력 저조, 급수설비나 도로 같은 인프라의 미정비, 혹은 주민 다수의 극도의 빈곤 등이 원인이 되어 발생한단다. 이런 경우에 사람들은 비타민 결핍이나 단백질 부족에 따른 소아 영양실조 등의 다양한 질병을 앓으며 서서히 죽어가게 되지.
그러니까 ‘구조적 기아’는 간단히 말해서 외부적인 재해로 발생하는 것이 아니라 그 나라를 지배하는 사회구조로 인해 빚어지는 필연적인 결과란다.
여정에서 살아남아 아고르다드 난민 캠프에 도착한 피난민들은 대개 특별한 영양섭취와 집중치료를 필요로 했어. 하지만 식량이나 의약품은 한정되어 있어서, 간호사들은 누가 살아남을 가능성이 있는지, 그리고 그 순간의 상태로 보아 누구를 죽게 내버려 두는 것이 좋을지를 결정해야 했어.
현지의 유일한 의사인 타마르트 망게샤가 그 아이를 보고는 조용히 고개를 저었어. 너무 늦어서 어떤 도움도 소용이 없었던 거야. 그 아이는 곧 죽음을 맞게 될 상태였지. 아버지는 전신을 떨었어. 눈물이 하염없이 뺨 위로 흘러내렸어. 아버지는 한 마디 말도 못한 채 의사를 뚫어져라 쳐다보기만 했어. 의사는 다시 한 번 고개를 저었지. 아이는 더는 생명을 구할 수 없는 상태였어. 결국 그 아버지는 허리를 굽히더니 가만히 아들을 안고는 가버렸단다.
대개 ‘경제적 기아’의 희생자들은 뒤늦게 구호단체에 보고되는 경우가 많단다. 제3세계의 많은 정부들이 자신의 나라가 처한 상황을 오랫동안 외부에 알리지 않는 경우가 많거든. 쓸데없는 자존심에서 그러는 경우도 있는데, 보통은 행정기관이 사태파악을 소홀히 한 탓이지. 그리고 뉴욕, 로마, 파리, 베를린, 마드리드, 런던, 제네바 등에 본부를 둔 국제지원조직이 뒤늦게나마 기아의 실태를 파악하고 긴급구호체제에 돌입했다고 해도, 실제로 구호품과 해당 인력이 현지에 도착하기까지는 상당한 시간이 걸린단다.
긴급구호는 쉬운 일이 아니고, 아주 잘 훈련된 인력이 있어야 한다는 거야. 영양불량이 심각한 아이들은 면밀한 계획에 따라 신중하게 치료해야 해. 굶주린 사람들에게 무턱대고 먹을 것을 주면 오히려 위험하단다. 자칫 생명을 앗아버리는 일이 될 수도 있지. 굶주림에 시달린 몸은 몹시 쇠약해져 있어서, 구호센터에 모습을 드러낼 즈음에는 신진대사가 극도로 악화되어 있는 경우가 많단다.
그래서 특별한 조치가 필요하지. 소화기관이 너무 약해져 있는 경우에는 정맥에 영양주사를 놓아야 한단다. 그런 다음 경험 많은 의료진의 처방에 따라 기력을 차츰차츰 회복시켜야 해. 기본적인 신체기능을 서서히 다시 작동시켜야 하거든. 이 모든 일은 정확한 진단과 신중한 처방에 따라야 하고, 보통 3~4주가 걸린단다.
잘못된 진단과 약해진 몸에 맞지 않는 무분별한 영양공급은 아주 위험하지.
얼마 전에 프랑스의 유명한 잡지에서 눈에 띄는 사진들을 보았어. 식료품을 실은 비행기가 수단 남부의 관목지대 위를 낮게 날면서 그 화물을 연신 떨어뜨리는 사진, 그리고 바싹 마른 덤불 속에서 거의 다 죽어가는 사람들이 나타나 화물 쪽으로 몰려드는 장면이었지. 사진에는 “드디어 구호의 손길이 수단에 닿다!”라는 설명이 적혀 있었어. 정말 현실과는 동떨어진 사진들이지. 실제 구호활동은 그런 장면과는 크게 다르단다. 전문 의료지식을 바탕으로 대단히 면밀하게 이루어지거든.
1분에 250명의 아기가 이 지구상에 새로이 태어나는데, 그중 197명이 이른바 제3세계라 불리는 122개 나라에서 태어난단다. 그리고 그들 중 많은 수가 곧 이런 ‘이름도 없는 작은 이들의 묘’에 묻히는 운명을 맞는 거야.
프랑스의 철학자 레지 드브레는 이들을 가리켜 “나면서부터 십자가에 못 박힌 아이들”이라고 표현했어.
소들은 과학적 근거가 있는 방법으로 비육되지. 그래서 소들이 먹어치우는 곡물이 연간 50만 톤에 달한단다. 미국 중서부나 캘리포니아 주에서는 소들이 온도조절이 되는 ‘피드 롯’이라는 거대한 시설에서 사육되는데, 일정한 시간이 지나면 자동적으로 곡물사료가 주어지는 시스템이 라는구나.
물론 소들은 움직일 수가 없지. 정해진 공간 내에서 그저 질서정연하게 서 있을 뿐이야. 이런 비육축사 한 곳에만 1만 마리 이상의 소들이 수용되어 있단다.
미국 시카고의 미시간 호숫가에는 위압적인 건물이 솟아 있어. 바로 시카고 곡물거래소야. 세계의 주요 농산물이 거래되는 곳이지. 이곳은 몇몇 금융자본가들에 의해 좌지우지되고 있어. 사실 거래는 몇 안 되는 거물급 곡물상의 손에서 결정돼. 그들은 몇 사람 안 되지만 엄청난 권력을 행사하고 있지. 앙드레 S.A.(스위스), 컨티넨털 그레인(미국), 카길 인터내셔널(미국), 루이 드레퓌스(프랑스) 등이야. 그들의 상업함대가 세계의 바다를 누비며 전 세계 곡물의 매매가를 결정하고 있단다. 나중에 다시 언급될 토마스 상카라는 그들 곡물 메이저를 ‘화이트칼라 강도들’이라고 부르기도 했지.
중요한 것은 첫째는 수확량이고, 둘째는 시카고 거래소의 투기꾼들이 유엔이나 WFP, 여러 인도적 지원단체, 그리고 만성적인 기아에 시달리는 나라에 제시하는 곡물가격이야.
부유한 나라들은 식량을 대량으로 폐기처분하거나, 법률이나 그 밖의 조치를 통해 농산물의 생산을 크게 제한하고 있단다. 생산자들에게 최저가격을 보장한다는 것이 그 이유지.
8억 명 이상이 고통을 받는 ‘구조적 기아’, 심각한 만성 영양실조에 대해서는 아무것도 할 수가 없어. 식량의 가격이나 생산량의 결정, 그리고 식량의 공평한 분배 등에 대해 FAO나 WFP는 그야말로 속수무책이야. 세계시장만이 힘을 가지고 있지. 그리고 그 시장은 아주 잔인하단다.
학교는 침묵하고 있어. 그들은 마땅히 해야 할 바를 하지 않고 있지. 그런 탓에 학생들은 모호한 이상이나 현실과 동떨어진 인간애를 가지고 졸업할 뿐, 기아를 초래하는 구체적인 원인과 그 끔찍한 결과에 대해서는 제대로 알지 못한단다.
대규모 지원국은 대체로 민주주의 국가들이야. 그런 나라들에서 여론은 아주 결정적인 역할을 하지. 그래서 FAO는 미래를 낙관적으로 전망하는 수밖에 없단다. 그렇게 하지 않으면 FAO에 지원하는 것이 쓸데없는 일로 여겨져, 부유한 나라들이 좀처럼 상당한 액수의 자금을 지원하려 들지 않을 테니까 말이야. 그러니까 그런 식으로 현실을 미화할 수밖에 없단다.
유엔의 이런 식량지원이 대량학살(제노사이드)을 주도한 후투족 체제파가 재기할 수 있는 발판을 제공한 셈이 되었던 거야. 구호품도 그들이 관리했으므로 그들은 피난민들을 수하에 둘 수 있었어. 그리하여 난민 캠프는 르완다 애국전선에 대한 야간기습과 보복공격의 거점이 되고 말았지.
그런 딜레마를 예로 들라면 얼마든지 있단다. 국제 구호단체는 벌써 20년 전에 인류 역사상 가장 잔인한 살인자들인 크메르루주 세력을 온존시킨 쓰라린 경험을 갖고 있어. 당시 폴 포트의 주도로 희생된 사람들의 수는 무려 100만 명에 달한다고 해.
세네갈은 해마다 식량의 외국 의존도가 점점 높아지는 셈이야. 세네갈의 국민들은 무척 부지런해서 식량을 자급자족할 능력이 있는데도 불구하고 식량을 수입해야만 하는 시스템이 된 거야. 게다가 식량 수입은 아무나 할 수 있는 것이 아니야. 정부의 허가가 필요해. 그래서 고위 관리들이 식량 수입 독점권을 가지고 막대한 재산을 모으고 있단다. 그러다 보니 그들은 자국의 식량 생산 증진에는 관심이 없지
비옥한 땅을 자국민들에게는 도움이 되지 않는 수출용 작물에만 돌리고 있으니……. 더구나 수출가격을 결정하는 세계시장에 대해서 세네갈 자신은 아무런 영향력도 갖고 있지 않아. 그래서 전통적으로 매우 근면한 농민들과 비옥한 땅을 가진 나라에서 식량부족 사태가 확산되고 있는 거야.