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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259번째 책] 10퍼센트 인간 (★★☆☆☆) -앨러나 콜렌 저
    1000권 독서 2018. 9. 14. 00:27



    책 속의 한 구절


        우리의 장腸은 100조가 넘는 박테리아와 곰팡이의 보금자리다. 약 4,000종의 미생물들이 1.5미터짜리 대장 안에서 장벽의 주름을 편안한 더블베드로 삼아 삶의 터전을 일구어놓았다. 아마 우리는 평생 아프리카코끼리 다섯 마리의 몸무게에 해당하는 미생물의 숙주 노릇을 하게 될 것이다. 뿐만 아니라 피부에도 눈에 보이지 않는 미생물들이 득시글거린다. 손톱 밑에는 대영제국의 전체 인구보다도 더 많은 미생물들이 보이지 않게 숨어 있을 것이다.

      

         인간의 게놈에는 2만 1,000개가 조금 못 되는 유전자가 있다. 이는 기껏해야 예쁜꼬마선충의 게놈 크기에 불과하다. 식물인 벼에 비하면 절반 정도 수준이고, 작은 물벼룩조차도 3만 1,000개로 인간을 한참 앞선다. 하지만 이 생물체들은 말을 할 수 없고 창조적인 능력도 없으며 지적인 사고와도 거리가 먼 존재들이다. 과학자 대부분이 높은 숫자에 돈을 걸었던 것처럼, 대부분의 사람들이 아마 인간이라면 풀이나 기생충, 물벼룩보다는 훨씬 많은 유전자를 가져야 한다고 생각했을 것이다

      

         미생물총微生物叢, microbiota이라고 불리는 100조 마리의 체내 미생물은 대부분이 박테리아로 구성되어 있다. 박테리아는 보통 세균이라고 부르며 겨우 하나의 세포로 이루어진 아주 작은 생물체다. 미생물총은 박테리아 말고도 바이러스, 곰팡이 같은 균류fungi, 원시세균Archaea을 포함한다.

      

         충수는 비활성화된 기관이 아니라 미생물을 보호하고 키우며 소통하는 면역계의 중추기관이며, 퇴화기관이 아니라 인체가 착한 미생물 세입자에게 제공하는 일종의 안전가옥인 셈이다.

    뜻밖의 긴급한 상황에 대비하여 비상금을 숨겨두는 것처럼 충수에 비축된 미생물은 재난의 시기에 비로소 쓸모가 생긴다. 식중독이나 장염이 대장을 한바탕 휩쓸고 지나가면 장은 곧 충수에 피신해 있던 정상적인 주민들로 다시 채워진다.

      

         충수는 지름 약 1센티미터, 평균 길이 8센티미터의 가느다란 관인데, 그 입구를 지나는 음식물 찌꺼기로부터 차단되어 보호된다. 충수는 그냥 말라비틀어진 살점이 아니다. 그 안에는 특수화된 면역세포나 미생물이 가득 차 있다. 충수 안에서 미생물들은 서로를 지탱하며 생물막biofilm이라고 부르는 보호막을 형성하여 해로운 박테리아를 차단한다.

      

         인간이 지니는 미생물 세트는 모두에게 똑같이 복제되어 장착된 것이 아니다. 그리고 모든 사람에게 공통으로 발견되는 박테리아는 거의 없다. 결국 개인은 지문만큼이나 고유한 미생물 집단을 소유한다는 말이다.

      

         우리가 먹은 음식물은 장을 통과하면서 인체의 소화기관과 미생물에 의해 대부분 소화되고 흡수되어 최종적으로 소량만이 남아 몸 밖으로 배출된다. 대변은 사실 우리가 먹은 음식물 찌꺼기라기보다는 대부분이 박테리아다. 대변 습윤 중량의 약 75퍼센트가 살아 있거나 죽은 박테리아이며 식물성 섬유질은 약 17퍼센트를 차지한다.

      

         사람의 장에는 언제나 1.5킬로그램 정도의 박테리아가 들어 있는데 이는 간肝과 거의 비슷한 무게다. 박테리아 한 개체의 수명은 겨우 며칠, 또는 몇 주에 불과하다. 대변에서 발견되는 4,000종의 박테리아는 다른 신체 부위에 사는 박테리아를 모두 합친 것보다 인체에 대해 더 많은 것을 알려준다. 장에 살고 있는 박테리아, 즉 장내 미생물은 인간의 건강 상태나 식이 상태를 알려주는 표징이 된다.

      

         감염은 세균이 아니라 미아스마miasma라고 하는 독기毒氣에서 비롯된 것이라고 믿었기 때문이다. 감염을 일으키는 미아스마는 부패한 물질이나 오염된 물에서 발생하는데 의사나 간호사가 제어할 수 있는 수준을 넘어선 무형의 힘으로 여겨졌다.

      

         1840년 무렵에는 병원에서 아기를 낳은 여성의 최대 32퍼센트가 출산 후 사망했다는 기록이 있다. 당시에는 의사가 모두 남자였는데 의사들은 사망 원인을 산모가 감정적 트라우마를 극복하지 못했다거나 장이 너무 더러웠기 때문이라는 식으로 산모에게 돌렸다. 하지만 이 끔찍하게 높은 사망률의 진짜 원인은 헝가리의 젊은 산부인과 의사 이그나츠 제멜바이스Ignaz Semmelweis에 의해 마침내 밝혀졌다.

      

         그 시대에는 빳빳하고 악취 가득한 의사 가운이 경력과 전문가적 기술의 상징이었다. 당시 어느 유명한 산부인과 의사가 “의사는 젠틀맨이다. 젠틀맨의 손은 깨끗하다”는 말을 하기도 했지만 사실 지금까지 그들은 매달 10여 명의 산모를 감염시키고 죽음에 이르게 했던 것이다. 그런데 생명을 살리고 책임지는 의사에게 감히 죽음의 책임을 묻는다는 것 자체가 당시에는 아주 괘씸한 일이었기 때문에 제멜바이스는 의사협회에서 쫓겨나고 말았다. 산모들은 계속해서 의사들의 자만과 오만에 돈을 내면서 목숨을 걸어야 했다.

      

         제멜바이스는 산욕열에 집착했고 분노와 좌절로 정신이 피폐해졌다. 그는 의사협회를 향해 쓴소리를 해대며 자신의 이론을 주장했고 동료들을 무책임한 살인마라고 비난했다. 마침내 동료들은 제멜바이스를 속여 정신병원에 집어넣었다. 그곳에서 제멜바이스는 억지로 피마자유를 마셔야 했고, 병원 경호원들에게 매질을 당했다. 2주 후 그는 상처에 생긴 감염으로 인한 고열로 사망했다.

      

         영국 의사 존 스노John Snow는 나쁜 기운이 병을 일으킨다는 미아스마 가설에 의심을 품었다. 그는 몇 년 동안이나 미아스마가 아닌 다른 원인을 찾고자 애썼다. 스노는 이전에 발생한 전염병의 사례를 분석한 후 콜레라가 수인성 질병이라는 결론을 내렸다

      

         스노는 콜레라 발병의 패턴을 찾아나갔다. 콜레라 환자들 간의 연관성을 찾아보고 또 병에 걸리지 않은 사람이 병을 피해갈 수 있었던 이유를 조사했다. 브로드 스트리트 외의 지역에서 발생한 환자에 대해서는 브로드 스트리트와 연결 지을 수 있는 고리를 찾았다. 스노는 논리와 증거를 바탕으로 발병의 매듭을 풀고 원인을 추적하되, 논리적 판단에 방해되는 요소는 철저히 배제하였다. 또한 예외적인 상황에 관해서는 설명할 수 있는 근거를 알아내려고 애썼다.

      

         1944년 이전에는 아주 작은 찰과상이나 긁힌 상처일지라도 감염이 일어나면 죽을 가능성이 매우 컸다. 1940년, 옥스퍼드셔에 사는 앨버트 알렉산더라는 영국 경찰관이 장미 가시에 스치는 바람에 얼굴을 다쳤는데, 얼마나 심하게 감염됐는지 눈을 제거해야 할 정도였다. 그는 죽음의 문턱에서 사경을 헤매고 있었다.

    마침 하워드 플로리의 아내 에델Ethel이 주치의였는데 그녀는 플로리가 알렉산더 순경에게 페니실린을 처방할 수 있도록 설득하였다. 그리하여 알렉산더 순경은 세계에서 첫 번째로 페니실린을 사용한 환자가 되었다.

      

         오늘날에는 찰과상이나 종기 정도로 죽는다는 것은 상상도 할 수 없는 일이다. 그리고 우리는 대개 항생제가 사람의 목숨을 살리는 약이라는 생각은 하지 못한 채 항생제를 복용한다. 마찬가지로 외과 수술 시 몸에 메스를 대기 전에 항생제 정맥 주사를 맞아 보호막을 치지 않는다면 수술의 위험성은 상당히 커질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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