책 속의 한구절
[1]
어쨌든 누구나 자신의 지적 능력 안에서 정치를 이해하기 마련이다.
[2]
옛날엔 통일 되면 흥남에 가서 변호사를 해야지, 했습니다. 통일은 결국 자본주의 체제로의 통일이 될 텐데, 북한 사람들은 자본주의에 훈련이 되지 않았으니 상당히 순진할 수밖에 없고 어려운 일을 많이 당할 것 같은 거예요. 그래서 흥남에서 무료 변호 상담, 무료 변론을 하면서 거기서 생을 마쳐야겠다, 이런 생각을 했었지요. 지금도 잊지 않고 있습니다.
[3]
그래도 가난을 원망하진 않았습니다. 아버지를 원망해본 적도 없고요. 어린 눈에 그저 아버지가 딱하고 안타깝게만 보였던 것 같아요. 아버지와 제 삶이 다르다는 걸 어렴풋이 느꼈을지도 모르겠습니다
[4]
중학교에 들어가서 나름대로 찾은 피난처가 책이었어요. 중학교 2학년 무렵에는, 아주 문 닫을 시간까지 도서관에 있다가 책걸상 정리하는 것까지 도와주고 집에 돌아올 정도로 책에 빠졌습니다. 닥치는 대로 읽었죠.
[5]
요즘은 부모들이 아이가 어릴 때부터 그림책, 동화책 할 것 없이 한 질씩 구입해 질리도록 많은 책을 안겨주지요. 그게 굉장히 잘못하는 것 같아요. 그렇게 한꺼번에 많은 책을 주니까 오히려 책에 대한 배고픔을 모르게 되는 거 아닌가 싶습니다.
[6]
과연 인간이 정치를 통해서 인간의 어떤 근본적인 것들을 바꾸고 있는가, 하는 질문을 하게 되는 건 그때나 지금이나 똑같습니다. 긴 세월을 지나면서 무언가 개선되는 듯 보여도 실은 더 고도화되고 더 교묘하게 억압기제가 되풀이되잖아요
[7]
공평하지 못한 것, 공정하지 못한 것에 대한 고뇌와 분노의 시작이었죠. 제가 노동변호사, 인권변호사를 했는데, 저는 사실 노동자도 아니고 노동자 의식을 갖고 있지도 않았습니다. 하지만 워낙 세상이 자본 쪽으로만 기울어져 있다 보니, 제가 이쪽에 서야 그나마 균형을 이루는 데 도움이 되겠다는 생각이 들더라고요. 그런 생각이 결국엔 저를 정치로 이끌었다고 봅니다.
[8]
정자정야(政者正也), ‘정치는 바른 것이다.’ 이 말을 좌우명처럼 생각합니다. 스스로 바름으로써 솔선수범하면 누가 바르지 않겠으며, 지도자가 바른 정신을 가지고 공정하게 행동하면 국민들이 어떻게 바르지 않을 수 있겠느냐는 거죠. 정치는 바른 정책을 행하고, 정의를 따르고, 사사로이 흐르지 않고 공사를 분명히 하는 것, 이것이 정자정야 아니겠습니까?
[9]
겁내는 것처럼 보이기 싫잖아요. 겁먹은 것처럼 보이는 게 더 두려워서, 하하하.
[10]
변호사 일을 할 때도 처음 접해보는, 선례가 없고 판례가 없는 사안들이 많잖아요. 그런 일이 닥치면 나름대로 해법을 제시해야 하는데 자신감, 배짱이 있어야 하거든요. 처음 부딪치지만 잘할 수 있다는 자신감, 인내심, 도전정신을 군대 생활이 내게 선물해주었습니다.
[11]
군대 시절은 의미 없다고, 청년들은 얼마든지 생각할 수 있어요. 그러나 경험보다 앞서는 지혜는 없습니다. 저는 구치소에 수감됐을 때도 배운 게 많았거든요. 거기서 또 다른 삶의 모습들을 봤어요. 수감자들 중에는 억울하게 끌려온 분들도 있지만 범죄자들도 있잖아요. 전혀 다른 세계의 사람들로 생각했던 이들을 바로 가까이에서 본 겁니다. 자신의 삶과 다른 삶들을 볼 때 세상을 바라보는 안목이 성장합니다. 인간의 행위에 대한 철학적 사고도 하게 되고요.
[12]
독립운동에 대한 무관심으로 또는 독립운동가들이 사회주의 계열이라는 이유로 아직 묻혀 있는 역사가 많습니다. 광복 이후 친일 청산이 제대로 안 됐던 게 지금까지 내려왔고요. 친일파는 독재와 관치경제, 정경유착으로 이어졌으니 친일 청산, 역사 교체가 반드시 있어야 합니다. 역사를 잃어버리면 그 뿌리를 잃어버리는 것과 다를 바가 없지요. 반드시 해내야 할 역사적 운명입니다.
[13]
상식과 정의 아니겠습니까? 국가를 위해 헌신하면 보상받고, 국가 반역자라면 언제든 심판받는 국가의 정직성이 회복되어야 합니다. 성실하게 노력하면 잘 살 수 있다, 이런 상식이 기초가 되는 나라를 만들어야 합니다
[14]
친일세력이 해방되고 난 이후에도 여전히 떵떵거리고, 독재 군부세력과 안보를 빙자한 사이비 보수세력은 민주화 이후에도 우리 사회를 계속 지배해나가고, 그때그때 화장만 바꾸는 겁니다. 친일에서 반공으로 또는 산업화 세력으로, 지역주의를 이용한 보수라는 이름으로. 이것이 정말로 위선적인 허위의 세력들이거든요.
[15]
평범한 사람이 세상을 바꾸지 않습니까? 평범한 사람들이 진정한 용기를 가지고 있습니다. 그분들은 평범한 사람들, 사회적 약자들이 세상을 바꾼다는 역사적 사실을 모르고 있는 모양입니다. 사실 그런 말은 대응할 만한 가치도 없습니다. 일일이 대응하면 오히려 그들을 가치 있게 만드는 거죠.
[16]
저에 대한 일부 언론의 공격은 제가 유화적인 발언을 한다고 해결될 문제도 아니고, 자기들 기득권을 위협한다고 생각하면 어떤 방법으로든지 공격하게 돼 있습니다. 그 부분은 극복해야 할 문제고 결국은 국민을 믿어야 합니다.
[17]
대통령이 되면 모두를 다 아울러야 할 필요도 있죠. 사실 노무현 대통령도 방향전환을 할 기회가 있었습니다.
[18]
다만 저는 언론에 대해서 이렇게 생각합니다. ‘언론이 없는 좋은 사회보다 나쁜 언론이 있는 사회가 더 낫다’는 말처럼, 그게 보수적이든 진보적이든 정당한 보도와 평가에 대한 가치는 존중해야 합니다. 그런 태도는 예전부터 갖고 있었고 지금도 그렇습니다.
[19]
청와대 수석들 또는 총리를 비롯한 고위공직자, 이런 사람들은 무한책임을 져야 합니다. 몰랐다는 말로 벗어날 수가 없는 것이죠. 자신이 알았어야 하는데도 몰랐다는 말로 피할 수 있다고 생각하는 태도가 공직자, 정치인으로서의 윤리의식이 마비됐음을 의미합니다
[20]
참여정부 때도 청와대 앞에서 농성이 있었습니다. 지율 스님이 하셨던 농성이 가장 유명했지요. 저는 누가 농성을 하든 퇴근할 때마다 거기 들렀습니다. 그분들 주장에 동조하든 동조하지 않든 말입니다. 그냥 그렇게 고생하고 있다는 데 대해 위로하고 이야기를 들어드리고 그랬죠
[21]
보수의 가치는 가족, 국가와 민족, 공동체를 더 소중히 여기고, 그것을 위해 희생하고 헌신하는 데 있으니까요. 그런데 그런 가치를 무너뜨리고 오직 사리사욕만 채우는 보수라면 그것은 사이비 보수, 가짜 보수인 겁니다.
[22]
다산 선생의 《목민심서》에 보면 이런 말이 있습니다. ‘아첨하는 사람은 배신하지만, 간언하는 사람은 결코 배신하지 않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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법을 모르고 돈이 없어서 억울하게 쫓겨나거나 월급을 받지 못하는 노동자들이 많았어요. 그런 일을 해오다 20년, 30년 지나서 제가 힘들 때가 되니까 이 사람들이 어디선가 불쑥불쑥 나타나는 겁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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저는 묵묵하고 꾸준한 사람이 좋습니다. 자기 분야에서, 일이나 직업에 대한 태도에서, 꾸준하고 신의가 깊은 사람이 아름답습니다. 꾸준히 멀리 내다보면서 뚜벅뚜벅 걸어가는 사람들이 좋아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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예를 들면 학생운동을 하고 민주화운동을 했다가 민주화가 어느 정도 이루어진 뒤에는 달동네에서 가난한 집 아이들을 상대로 공부방을 한다든가, 사회에서 필요한 일들을 찾아가면서 한평생 꾸준하게 사는 분들. 그런 사람들이 아름답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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주목받고 각광받는 길로 많이들 갔는데, 끝까지 그런 길은 피하면서 자기를 바치는 삶을 살아가는 사람이 아름답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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저는 살아왔던 삶이 늘 공격받는 쪽에 있었습니다. 민주화 이전, 과거에는 민주화운동 세력을 두고 ‘몰지각한 소수’라는 표현을 썼습니다. 그런 식으로 늘 공격을 받았죠. 학생운동 이후 민주화운동 시기에도 마찬가지였습니다. 그 뒤에도 부산경남지역에서 김대중 대통령 지지운동을 한다든지, 민주당 깃발을 들고 정치운동을 하는 것 자체가 다수의 공격을 받는 소수파의 삶이었죠. 그렇다 보니 저는 저하고 생각이 다른 입장에 있는 사람들의 일방적인 공격에 대해서는 정말로 눈 하나 깜짝하지 않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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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주 목소리가 큰 사람들이 있었죠. 그들의 과격한 주장들이 분위기를 휘어잡는 경우가 많았어요. 그런데 대체로 보면 그런 사람들이 일찍 그만두고 떠나는 겁니다. 양지바른 곳으로. 심지어는 아예 변절했다고 할 정도로 다른 사람이 된 경우도 있어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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저는 우리가 생각하는 가치를 변치 않고 꾸준하고 묵묵하게 지켜가고 실천해가는 얼굴, 약속의 얼굴이 좋습니다. <세한도>도 그런 그림이 아니겠습니까?
[30]
기본적으로 국가의 대통령 또는 최고 고위공직자들의 공공성이 실종됐습니다. 국가권력을 아주 사사롭게 여기고 권력을 사익추구의 수단으로 삼는 공공성 결여가 우리나라 주류정치 세력과 새누리당의 공통점이었죠.
[31]
정의의 실현, 가치에 대한 소중함은 잘못된 과거를 청산해야 비로소 생겨납니다. 권력층 주변에서 덕을 본 사람들은 결국 심판받는다, 그런 의미에서 정의가 바로 서야죠. 단 한 번도 제대로 된 심판이 없었기 때문에 그저 때에 영합해 개인적인 이득을 취하고 출세하고, 그게 최고였던 겁니다
[32]
국민은 대기업이 자랑스러웠고 국민도 국가도 재벌도 함께 성장하는 구조였는데, 2세, 3세로 내려오면서 나라의 먹거리가 되는 창업은 없어지고 중소기업 영역을 침범하고, 특허를 도용하고, 일감 몰아주기를 하고, 쉽게 돈을 버는 일에만 몰두합니다. 10대 재벌만 해도 550조나 유보금이 쌓여 있습니다. 재벌의 경제활동이 국가경제에는 도움이 되지 않고, 오히려 재벌경제가 국가 경제성장의 발목을 잡는 지경에 온 겁니다.
[33]
사고력의 결여는 곧 타인의 고통에 관심을 갖지 못하고 아무 생각 없이 악을 저지르게 합니다
[34]
정의에 대한 우리 사회의 가치기준이 없어졌습니다. 그 시기에 줄 잘 서고 수단방법 가리지 않고 계속 부와 권력을 누렸던 게 관행화되고 일상화되면서 정의가 실종된 거죠. 그게 극단적인 형태로 나타난 것이 지금 박근혜 게이트고요. 반칙이나 특권을 통해 이익을 보고 혜택을 누리면 결국 심판받는다는 걸 이제 분명히 보여줘야 합니다.
[35]
헌법에는 권력이라는 말이 딱 한 번 나옵니다. 우리가 권력이라는 말을 많이 쓰고 특히 공권력이나 국가권력이라는 말을 많이 쓰는데, 헌법에는 권력이라는 말이 단 한 번 나와요. ‘모든 권력은 국민으로부터 나온다.’ 그다음 나머지는 다 ‘권한’에 대한 겁니다.
[36]
판단력이 있는 분들이라면 사악한 색깔론과 망국적인 종북몰이에는 더 이상 속지 않습니다. 종북은 군대를 피하고 방위산업비리를 저지르고 총알이 뚫리는 방탄복으로 병사들의 생명을 파는 것, 악의적으로 국민들의 편을 가르는 것이 종북입니다.
[37]
우리 사회가 해야 하는 권력구조의 개혁 가운데 가장 중요한 것이 지방분권을 강화하는 겁니다. 중앙정부에 집중된 많은 권한과 재정을 지방으로 분산시키는 것이고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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지금 우리 사회에서 가장 불안한 요소가 뭐라고 생각합니까?
문재인 기회의 차단이죠. 기회를 갖지 못한다는 것. 기회가 적기도 하고 불공정, 불평등하기도 하고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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본질적으로 이들 기득권세력들은 보수가 아닙니다. 대한민국 보수를 표방해온 주류 정치세력은 아주 극우적이고 수구적인 사이비 보수죠.
[40]
자신들의 기득권 유지가 최고의 가치인 사람들이죠. 때에 따라 일본이나 외세에 붙고, 독재세력에 붙고. 이런 세력들이 자신의 기득권에 도전해오는 사람들에게 붙이는 딱지가 종북입니다. 거기에 대해 국민들이 비로소 분노하고 있는 겁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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개인적으로는 저는 혼자 있을 때가 좋아요. 혼자 있을 때 자유롭고 또 편안하죠. 그래서 혼자서 히말라야 트레킹을 한 적도 있고 자주 산길을 혼자 걷는다든지 합니다. 시골집 마당에서 그냥 혼자 잡풀을 뽑는다든지, 그런 시간도 행복하고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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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람의 가치를 잃어버리고 돈, 물질, 성공, 사회적 지위, 출세, 이런 것들을 더 중요한 가치로 숭배하게 되었어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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오히려 바른말 하고 옳은 것을 추구하면 모난 돌이 정 맞는 꼴 돼버리는 게 지금까지 우리의 역사였던 거죠. 그래서 지금 공무원들이 영혼 없고 개념 없는 공직자란 말을 듣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