책 속의 한구절
유명한 사람도 이렇게 독서를 하더라. 그러니 당신들도 이렇게 하면 좋을 것이다’라는 식의 내용이 많았다. 그런데 여기에는 중요한 한 가지가 빠져 있다. 저자 자신(혹은 유명인)에게 효과가 있었던 방법이 책을 읽는 독자 대부분에게도 좋다는 과학적 근거가 전혀 없다는 것이다.
뇌의 무한한 변화 가능성은 우리의 삶의 방식에 따라 결정된다. 모든 사람이 아인슈타인처럼 된다고 할 수는 없겠지만, 우리 스스로의 선택과 행동에 의해 예상할 수 없을 정도의 성장이 나타날 수 있다. 우리는 고정되지 않고, 언제나 성장할 수 있는 존재인 것이다. 이 사실을 인지하는 것이 인생에서 그 무엇보다 중요하다.
노력에 대한 칭찬은 문제가 어렵거나 답이 기억이 나지 않는다 하더라도 아이들에게 어떻게든 극복하려는 마음가짐을 갖게 한다
‘참 똑똑하구나’라는 칭찬을 들은 아이들은 쉬운 문제를 선택한 비율이 높았던 반면, ‘노력을 많이 했구나’라고 칭찬을 들은 아이들은 어려운 문제를 선택한 비율이 더 높았다.
실제로 사람의 정체성은 외부 환경, 즉 부모와 문화, 혹은 특정 상황에 따라 충분히, 그것도 급속도로 달라질 수 있다.
우리의 뇌는 가소성이 있다. 무언가를 열심히 하면, 뇌가 그 방향대로 해부학적으로 변한다. 뇌의 가소성은 우리 모두 자신을 성장형 자아로 인식할 수 있는 생물학적 근거를 제시한다.
“당신이 할 수 있다고 생각하든, 할 수 없다고 생각하든 생각하는 대로 될 것이다.”
영국의 독서학자 우샤 고스와미 교수가 유럽의 서로 다른 3개 언어의 5~7세 아이들을 대상으로 실시한 연구20)에서, 5세에 독서를 시작한 아이들이 7세에 시작한 아이들보다 오히려 독서 성취도가 낮게 나왔다.
뇌는 말은 자연스럽게 할 수 있게 만들어져 있는 반면, 글은 자연스럽게 습득할 수 있도록 만들어지지 않았다. 애초에 뇌는 독서를 염두에 넣지 않았다. 독서라는 행위 자체가 인간에게 매우 부자연스러운 행위인 것이다.
독서는 뇌의 다양한 정보원, 특히 시각과 청각, 언어와 개념 영역을 기억과 감정의 부분들과 연결하고 통합하는 매우 복잡한 과정이다. 그런데 이런 통합을 위해서는 뇌의 각 영역들이 최소한의 성숙도를 확보해야 한다.22) 즉 뇌의 각 영역들이 잘 연결되고 빠르게 통합되어야 한다. 연결된 뉴런은 전기적 신호를 기반으로 정보를 주고받는데, 이때 전기 신호가 너무 느리면 통합 작용이 원활하지 못하다. 문제는 각 영역들의 성숙도의 생물학적 시간표가 달라서, 독서를 위한 통합작용을 하기 위해서는 ‘때’가 되기를 기다려야 한다는 것이다.
5세에는 독서를 하기 위한 최소한의 뇌 기능이 준비되지 못한 것이다. 이 경우 아이는 부모의 도움으로 독서를 하려고 노력하지만 계속 실패를 겪을 것이고, 그런 경험이 누적되면 독서에 대한 좋지 않은 감정만 남을 가능성이 크다. 결국 독서의 즐거움을 잃어버리게 되므로 독서 능력의 성장이 더디게 될 것이라고 추론할 수 있다.
우리가 무엇을 읽었느냐에 따라 뇌는 달라진다. 그리고 다른 뇌를 가졌다는 것은 다른 정신작용과 사고방식을 갖게 되었다는 말이다. 결국 우리가 사고하는 방식과 내용은 우리가 과거에 읽은 것으로부터 형성된 식견과 연상에 기초된 것이다. 그래서 영국의 대문호 마틴 발저는 “우리는 우리가 읽은 것으로부터 만들어진다”라고 했으며, 작가인 조지프 엡스타인은 “작가의 전기를 쓰려면 그가 언제 무엇을 읽었는지 상세하게 다루어야 한다. 어떤 의미에서 사람은 그가 읽은 것을 반영하기 때문이다”라고 말했다.
어떻게 해야 숙련된 독서가의 뇌를 가질 수 있을까? 문제 속에 답이 있다. 독서에 숙련되면 된다. 그리고 여러분이 성인이고 초보 독서가라면 숙련의 첫 시작은 단연 ‘다독’이다.
2008년 새해가 되자, 나는 다독을 하기 위해 어떻게 하면 유혹을 뿌리칠 수 있을지 고민하기 시작했다. 그래서 내린 결론이 바로 ‘카페에 내 몸을 묶어라!’였다.
어떻게 하면 거짓 지식을 극복할 수 있을까? 마쓰오카 세이고의 책 제목처럼 ‘다독술이 답이다’. 특히 내가 추천하는 것은 계독이다. 계독이란 어떤 한 분야나 주제를 정해서 그 계보에 따른 책들을 많이 읽는 것이다. 예를 들어 나는 큰 범주에서 경제, 경영, 심리학 관련 책들을 계독했다.
서울대 최우등 학생들의 노트 필기 방식은 특별했다. 최우등생 중 87%는 교수의 ‘말’ 그대로를 받아 적었다. 이후 노트를 더 구조화하고 체계화하지만, 핵심은 교수가 언급한 내용 이외의 것을 절대 벗어나지 않으려고 노력했다는 사실이다. 왜냐하면 그렇게 할 때 최고의 점수를 받았기 때문이다.
나쁜 관습을 타파하기 위해서는 기존 지식에 의심을 품어야 한다. 우리에 오래 있었던 원숭이의 말이라 할지라도 그 권위에 굴복하지 않고 틀릴 수 있음을 생각해야 한다. 결국 비판적 사고가 출중한 원숭이가 관습이 옳지 않을 수 있다고 과감히 도전할 때, 원숭이 세계의 삶은 더 풍요로워질 것이다.
남독은 특정 주제나 장르에 얽매이지 않고 다양하게 책을 읽는 것을 말한다. 그리고 남독은 우리에게 세 가지 변화를 준다. 남독을 하게 되면 당신은 까칠해지고(비판적 사고), 엉뚱해지며(창의적 인간), 겸손해질(세계의 확장) 것이다.
어느 누구라도 비판의 대상이 될 수 있다는 사실을 깨닫게 되었다. 내가 좋아하는 인물의 주장이라 해도 의심해 봐야 하며, 내가 범접할 수 없는 권위를 지닌 인물이라 할지라도 비판할 수 있어야 한다는 사실을 말이다.
다양한 분야의 다양한 저자를 접하면 다양한 생각을 만나게 마련이다. 그 다양한 생각들은 때로는 서로 연합하지만 때로는 격하게 충돌한다. 그리고 그 강력한 충돌 속에서 살아남은 독자는 비판적 사고라는 좋은 무기를 소유하게 된다.
창의성은 연결이다. 하지만 잡스가 말한 ‘여러 가지’가 ‘아무거나’를 뜻하지는 않으며, 서로 다른 낯선 것들을 연결해야 한다. 그래서 나는 창의성을 이렇게 정의한다.
“창의성은 낯선 것들의 연결이다.”
일반적으로 사람들은 자신을 과대평가한다.61) 운전자의 90%는 자신의 운전 솜씨가 평균 이상이라고 생각하며, 대학교수의 94%가 자신의 강의 솜씨가 평균보다 좋다고 생각하고, 기업가의 90%는 새로 시작한 사업이 반드시 성공할 것이라 생각한다. PGA 투어에 참가하는 프로 골퍼들은 1.8m 거리에서 퍼팅을 한 공의 80%가 홀컵에 들어간다고 말하지만, 실제 성공률은 54%다.
“수십 년의 연구 결과에 따르면, 부모나 다른 어른이 책 읽어 주는 소리를 들으며 보낸 시간의 양이, 몇 년 후 그 아이가 성취할 독서수준을 예언해 주는 좋은 척도가 된다”
연구 결과 부모가 동화를 많이 읽어 준 아이들은 특별한 문어체가 들어 있는 관계사절을 이용한 긴 문장을 말하는 경우가 많았다. 이는 복잡한 문장을 이해할 수 있는 능력이 있다는 것으로, 후에 뛰어난 독서가가 되기 위한 튼튼한 초석이 된다.
책 읽는 소리를 듣는 아이의 뇌에서는 시각을 담당하는 부위가 매우 활성화되었다.68) 아이는 귀로 듣는 책의 내용을 심상의 이미지로 재창조하는 것이다.
부모가 아이들의 독서에 큰 영향을 줄 수 있는 또 다른 방법은 바로 부모가 독서를 즐기는 것이다.69) OECD 연구에 의하면 국적이나 부모의 소득에 상관없이 부모가 독서하는 모습을 보이면 아이들은 따라 할 가능성이 크다.
우리는 흔히 감정을 배제하고 합리적으로 선택하라는 말을 하지만, 이 말은 틀렸다. 감정이 없으면 선택 자체를 할 수가 없기 때문이다.
우리는 보는 것은 너무나 생생하고 사실적이라고 생각하기에, 보는 것만큼 객관적인 것은 없다고 생각한다. 어떤 의문이 제기되어도 “내가 봤는데!”라는 한마디로 모든 것이 불식된다.
우리는 주관적인 관점으로 대상을 우리 마음속에서 무수히 변화시킬 수 있었기에 발전할 수 있었다. 컴퓨터는 감히 따라 할 수 없는, 인간만이 가지고 있는 가장 강력한 무기이다. 우리는 항상 대상을 새로운 관점으로 바라봄으로써 우리의 한계를 극복했다. 그리고 한 인간이, 그리고 더 나아가 인류가 셀 수 없는 새로운 관점을 가질 수 있었던 것은 다름 아닌 ‘책’을 통해서였다.
누군가와의 산책보다 더 쉽고 더 깊이 있으며, 더 확실하게 새로운 관점을 만날 수 있는 방법이 있다. 바로 독서이다. 독서는 ‘관점 취하기(perspective-taking)’를 위한 최고의 기술이다.88)
책을 읽을 때는 저자의 관점으로 세상을 보는 것과 같다. 우리는 책을 읽으며 나와 비슷하면서도 전혀 다른 한 사람의 의식의 흐름에 동참하게 된다. 외국인, 여행가, 문화인류학자, 역사학자의 눈으로 세계를 보면, 당연하다고 여겨졌던 규범이 명시적인 관찰로 바뀌게 된다. 세상을 다시 보게 되고, 또한 자기 자신을 다시 보게 된다.
종합해 보면 자의든 타의든 우리의 정신을 어느 한 가지에 집중할 때, 즉 특정한 하나의 관점을 가지고 대상을 바라보게 될 때, 그 전에는 보이지 않았던 것들이 더 잘 보이게 된다.
이것이 독서에도 적용되지 않을까? 그래서 내가 제시하는 두 번째 관독은 특정 관점을 갖고 책을 읽는 것이다. 그 효과는 상상 이상이다.
다독가는 검증된 책뿐만 아니라 남들이 보지 않은 책들을 먼저 읽을 때가 많기 때문이다. 안 좋은 책을 읽으면 속이 상하고 힘이 빠진다. 그래서인지 어느새 나도 모르게 명저들을 재독하기 시작했다. ‘안심하기 위해 읽는’ 것이다. 나도 이제는 3대 1 법칙을 적용한다. 세 권의 신작을 읽으면 한 권의 명저를 재독하는 것이다.
마쓰오카 세이고는 “책은 두 번 읽지 않으면 독서가 아니다”라고 했다. 그런데 아무리 독서의 신이라고 하더라도, 재독에 대한 평가가 좀 과한 거 아닌가? 아니다. 그렇지 않다. 재독은 정말 신비로운 독서법이다.
재독의 진짜 비밀은 여기에 있다. 사실 다시 읽기란 불가능하다. 왜냐하면 사람이 변하기 때문이다. 책에게 독자는 언제나 낯선 타인이다. 하지만 그 낯선 타인은 책을 통해 과거의 자신을 보며, 변해 버린 지금의 자신을 보게 된다. 그래서 재독은 그 어떤 것과도 비교할 수 없는 가치 있는 여행, 이른바 ‘자아의 시간여행’이 된다.
서울대학교 조국 교수는 전공서적 이외의 책에는 줄을 긋거나 메모를 하지 않는다고 한다.103) 다음에 다시 읽게 될 때, 먼저 적어 놓은 글이 새로운 깨달음을 얻는 데 방해가 될까 염려되기 때문이라고 한다.
솟대 예술가 이안수는 다음과 같은 멋진 말을 남겼다.
“글쓰기야말로 완전한 독서행위의 완성인 것이다.”
“이론은 자료들의 패턴이다”라고 했다. 필독을 통해 정리된 자료들을 살펴보다 보면, 독자의 눈에 뭔가가 보이기 시작한다. 그리고 뭔가가 보이기 시작할 때 슬슬 자신의 목소리를 내고 싶다. 의견을 내고 비평을 하며 감상을 쓰고 싶은 욕구가 생긴다. 드디어 독서가가 작가로 변할 준비가 된 것이다.
책 내용을 종합하고, 책에 대한 비평을 함께 실으면 된다. 처음 시작하기에는 조금 버겁더라도 밑줄 친 내용을 따로 정리하고 자신의 의견을 단 한 문장이라도 계속 써 간다면, 어느새 간단한 서평을 쓸 수 있는 자신을 발견하게 될 것이다.
정신분석의 창시자인 프로이트는 사람들은 자신이 원하지 않는 생각을 무의식으로 밀어낸다고 말했다. 그리고 무의식으로 밀어낸 원치 않는 생각들이 쌓이고 서로 결합하면서 심리적 에너지를 점점 높여 가다가, 급기야 여러 가지 부정적인 형태로 의식에 영향을 미친다고 한다. 이로 인해 우리는 우울증, 불안증, 신경증에 걸린다.
프로이트는 이러한 무의식적 에너지가 문제를 일으키기 전에 억압된 생각을 제거해야 심리적 안정을 유지할 수 있다고 주장한다. 또 그는 우리가 폭력적인 생각을 억누르기 때문에 분노에서 벗어나지 못한다고 지적한다
위대한 심리학자 윌리엄 제임스는 이런 말을 했다.
“인간은 울기 때문에 속상해지고, 두들기기 때문에 화가 나고, 떨기 때문에 무서워진다.”
감정을 표출하는 것이 아니라 그 감정을 기술할 때 진짜 정화 효과가 나타난다는 것을 보여 준다. 이것을 심리학 용어로 ‘정서 명명하기(affect labeling)’라고 한다. 매튜 리버먼 교수는 여러 연구를 실행한 끝에 감정 정화에서 가장 효과적인 방법은 ‘정서 명명하기’이며, 특히 부정적인 정서일수록 효과가 크다고 한다.
격한 부정적 감정이 엄습해 올 때, 가장 좋은 것은 그것에 대해 글을 쓰는 것이다. 차분히 자리에 앉아 지금 내가 느끼는 감정이 어떤 것인지를 적어 보자. 그 감정이 자신에게 주는 부정적 영향이 무엇인지 자료를 찾아 같이 서술해 보면 더 좋을지도 모른다.
언론에서는 한동안 ‘디지털 네이티브(Digital Native)’를 찬양했다. 디지털 네이티브란 태어나면서부터 PC, 인터넷, 모바일 등의 디지털 환경을 생활의 일부로 사용하는 세대를 말하는데, 미국의 교육학자인 마크 프렌스키가 만든 말이다. 디지털 네이티브는 멀티테스킹과 정보와 자료를 신속하게 수집하여 문제를 창의적으로 해결하는 능력이 출중하며, 자기주장을 적극적으로 개진하는 특징을 보인다고 한다.
안타깝게도 디지털 네이티브는 허상에 가깝다. 연구에 의하면 젊은이들은 출처의 질적인 평가를 제대로 못한다는 것이 밝혀졌다.144) 학문적 연구와 단순한 의견 표명 사이의 권위를 제대로 구분하지 못한다는 것이다. 출처의 질적인 평가를 못한다는 것은 자료검색을 제대로 못한다는 것이다.
연구 결과 8~16개월 이하의 아이들에게 스마트폰 등으로 아동용 영상을 보여 주면 어휘력 발달에 치명적인 결과가 나타난다.148) 물론 17개월 이상의 아이들에게는 어휘력 부진을 초래하지는 않지만 반대로 어휘력을 증가시키지도 못한다. 연구는 부모가 아이들에게 책을 읽어 줄 때, 아이들의 어휘력이 가장 크게 발달한다는 것을 재확인해 주었다.
스크린에 빠져 살면 현실을 ‘쇼’처럼 보는 것이다.
스크린은 우리의 시간을 빼앗고, 학습능력을 저하시키며, 현실을 직시하지 못하게 할 뿐만 아니라 독서하는 뇌를 갖지 못하게 한다. 여러분은 자신과 자녀들을 위해 스크린을 스크린(screen)150)해야 한다.
웹페이지 디자인 컨설턴트인 제이콥 닐슨은 인터넷 사용자들의 시선을 추적하는 실험을 했다.153) 그런데 인터넷 사용자들은 웹상의 글을 전형적인 책 읽는 방식, 즉 체계적으로 한 줄 한 줄 읽지 않았다. 사용자들은 웹상의 글을 F자로 읽었다. 다시 말해 세 번째 줄까지는 끝까지 보지만, 그 다음부터는 그냥 시선을 아래로 쭉 내린다.
닐슨은 한 독일 연구팀의 데이터를 통해 웹페이지의 단어 개수가 증가하더라도, 페이지를 보는 시간이 좀처럼 늘어나지 않는다는 사실을 알아냈다. 웹페이지에 100개의 단어가 추가될 때마다 인터넷 사용자들이 페이지를 보는 시간은 평균적으로 겨우 4.4초 늘었다. 훌륭한 독서가도 4.4초 동안 읽을 수 있는 단어 개수는 고작 18개 정도에 불과하다. 닐슨은 인터넷 이용자들이 웹상의 글을 어떤 방식으로 읽는지에 대해 다음과 같이 답했다고 한다. “읽지 않는다.”
인터넷상의 글은 쓸데없는 선택으로 신경을 분산시키고 주의를 산만하게 함으로써 글에 집중을 못하게 한다. 결국 긴 글을 자제력을 갖고 읽기 힘들어지고, 자연스럽게 F자 시선을 그리며 글을 읽게 된다. 이런 글 읽기에 익숙해지면 당연히 우리 뇌는 그것에 적응하게 될 것이며 그렇게 변할 것이다. 그러나 책은 아무리 얇아도 100쪽이 넘으니 난독에 빠지고, 결국 책 읽기가 어려워진다.
나는 독서를 할 때나 글을 쓸 때, 정말 중요한 연락이 올 상황이 아니라면 스마트폰을 비행기 모드로 바꾼다. 특히 새벽이나 일과를 마친 밤에 그렇게 하는데, 그때는 상대적으로 중요한 연락이 올 것이 없기 때문이다. 비행기 모드로 바꾸면 나에게 오는 모든 전송이 끊기며, 스마트폰은 나를 방해하지 않는다
학생들에게 정확히 언제 어디서 리포트를 쓸 작정인지 미리 적어 두게 했다. 예를 들어 “나는 크리스마스 아침에 눈을 뜨자마자 책상에 앉아 우유 한 잔을 마시며 리포트를 작성할 것이다”라는 식의 구체적인 계획을 세우게 한 것이다. 효과는 만점이었다. 이것은 행동 계기를 자극하여 그 그룹에서 무려 75%의 학생들이 리포트를 제출했다.
골비처는 계속되는 연구를 통해 행동 계기가 사람들이 극히 어려운 상황에 처했을 때 매우 유용하다는 것을 알아냈다
난독의 대항마로서 매우 강력한 치료제이며 지금도 가장 많이 활용하고 있는 방법이다. 책이 읽기 힘들 때, 그리고 책이 읽기 싫을 때에는 ‘그냥’ 책을 읽으면 된다. 이 방법은 ‘인지부조화(cognitive dissonance)’를 이용하는 것이다.
한 연구에서 실험참가자들에게 암 협회에 직접 소액 기부를 요청했더니 46%가 동의했다.157) 그런데 하루 전에 기부금 모집을 알리는 배지를 가슴에 달도록 하고 그 다음 날 기부를 요청했을 때에는 90%가 기부를 했다. 기부에 대한 관심이 없는 자신과 가슴에 기부 배지를 달고 있는 자신을 보았을 때 그 사이에서 인지부조화가 일어나고, 이때는 기부가 더 훌륭한 자아를 위한 행동이므로 자기정당화를 위해 기부를 하게 되는 것이다. 이는 행동경제학에서는 ‘보유 효과’라는 것으로 나타난다. 일단 어떻게든 무언가를 선택하게 되면, 선택하기 전보다 그 물건, 또는 행동의 가치를 더 높게 평가하게 된다.
나는 독서의 완성은 ‘엄독’이라고 생각한다. 엄독이란 책을 덮는 것이다. 그리고 책을 덮는다는 것은 두 가지를 의미한다. 하나는 ‘읽는 행위를 초월’하는 것이다. 이는 ‘독서의 자기화’를 추구하는 것으로, 책을 덮고 난 후 생각을 하고 글을 쓰고 다른 사람에게 전하며 책과 세상을 연결하는 것 등을 말한다.
책을 덮고 우리가 꼭 해야 하는 또 다른 하나는 ‘생각’을 하는 일이다. 조지 버나드 쇼는 우스갯소리로 “1년에 두세 차례 이상 생각하는 사람은 거의 없다. 나는 일주일에 한두 번 생각하는 것으로 국제적인 명성을 얻었다”라고 말했다. 하지만 그저 웃고 넘길 말은 아닌 것 같다.
책을 다 읽었다면 이제 책을 덮고 질문을 던져 보자. 스스로에게 던져도 좋고, 친구에게 던져도 좋고, 선생님에게 던져도 좋고, 독서모임 회원들에게 던져도 좋다. 질문을 하게 될 때 생각은 춤을 추고, 그 춤은 상상력이 되어 자신에게서 새로운 것이 탄생하는 것을 보게 될 것이다.
훌륭한 독서법이란 단순히 책을 많이 읽는 것에 국한된 것이 아니다. 많은 정보를 머릿속에 넣었다면, 충분한 수면을 통해 책 속에 담긴 여러 자료들을 기존의 지식과 통합하게 하고, 새로운 기억을 탄생시킬 필요가 있다. 그리고 그 과정 속에서 우리는 놀라운 아이디어를 보기도 한다. ‘꿈’을 통해서 말이다.
꿈은 외부에서 오는 것이 아니며, 기존 기억과 통합하는 과정에서 나온다. 꿈을 통해 놀라운 아이디어를 얻었던 사람들은 모두 그 문제를 가지고 몇 년이 넘게 씨름했다. 꿈이 가지고 있는 비논리성, 상식과 법칙의 파괴 등이 고심하고 있던 문제의 돌파구를 찾아 준 것이다.
소크라테스는 “한가로운 시간은 그 무엇과도 바꿀 수 없는 재산이다”라고 했다. 다독, 남독, 만독, 재독, 필독, 낭독 등을 통해 책과 열심히 동행하였다면 이제 엄독, 과감히 책을 덮자. 여유를 갖고 휴식을 취하고 자연을 걸어 보자. 무엇보다 충분한 잠을 자자. 뇌는 잠을 통해 정신자원을 회복하고 새로운 기억을 탄생시킨다. 그리고 마지막으로 꿈을 꾸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