책 속의 한 구절
글은 글자로 옮긴 말이다.
다시 말해서, 말을 기록하면 글이 된다. 기록된 말이 바로 글이다. 더도 덜도 아니다.
어렵게 말하는 사람, 매력 없다. 두서없이 말하는 사람, 듣기 싫다.
어려운 글, 지루하다. 두서없는 글, 재미없다.
이제 글에 대한 생각을 완전히 바꾼다.
말은 쉬워야 한다. 어려운 말은 씨알도 먹히지 않는다.
글은 말이다.
글도 쉬워야 한다. 어려운 글은 씨알도 안 먹힌다.
짤막짤막한 단문 (短文)으로 문장을 쓰면 좋은 일이 두 가지 생긴다.
첫째, 문장이 복잡하지 않아서 문법적으로 틀릴 일이 별로 없다.
두 번째, 독자가 읽을 때 속도감이 생긴다. 리드미컬한 독서가 가능하다는 말이다.
소비자를 만족시키는 상품은 공통점이 있다.
• (사용하기) 쉽다 : 사용설명서를 굳이 읽지 않아도 사용할 수 있다.
• (디자인이) 단순하다 : 복잡하지 않다.
• (디자인이) 참신하다 : 기존 제품을 흉내 내지 않은 독창적인 디자인.
• (용도가) 범용이 아니라 구체적이다.
좋은 글에는 아래와 같은 특징이 있다.
• (읽기) 쉽다 : 단어도, 말하려는 논지도 이해하기 쉽다.
• 짧다 : 필요한 말만 적혀 있다. 문장은 수식어가 없는 단문이고 불필요한 문장도 없다.
• (다른 글과 관점/표현이) 다르다 : 독자가 생각지 않은 독특한 관점이 있다.
• 팩트가 적혀 있다 : 보편타당한 주장, 즉 ~해야 한다/~할 것이다 따위 주장이 아니라 구체적인 사실들이 적혀 있다.
일반대중을 상대로 글을 쓰려는 사람이라면 좋은 글쓰기에 대해 고민을 해야 한다.
고민하는 목적은 독자를 감동시키기 위함이고 고민하는 대상은 좋은 글을 구성하는 원칙이다.
글이 재미있어야 하는 이유는 명확하다. 감동을 줘야 한다. 감동은 울림이다. 재미가 있어도 내용이 제대로 되어 있지 않으면 깔깔 웃으며 끝까지 읽었어도 뭘 읽었는지 모른다. 사람들에게 감동을 주는 글은 마지막 문장까지 읽은 독자를 멍하게 만드는 글이다. 그럴 수 있는 글은 무엇일까
오웰이 《정치와 영어》 (Politics and the English Language)라는 수필에서 내놓은 글쓰기 원칙은 다음과 같다.
1. 인쇄물에서 흔히 본 직유, 은유는 ‘절대’ 쓰지 않는다.
2. 짧은 단어를 쓸 수 있을 때는 ‘절대’ 긴 단어를 쓰지 않는다.
3. 빼도 상관없는 단어는 ‘반드시’ 뺀다.
4. 능동태를 쓸 수 있다면 ‘절대’ 수동태를 쓰지 않는다. 예컨대 ‘그 남자가 개한테 물렸다’라고 쓰기보다는 ‘개가 그 남자를 물었다’라고 쓴다. 훨씬 설득력이 강하다.
5. 일상생활용어로 대체할 수 있다면 외래어나 과학용어, 전문용어는 ‘절대’ 쓰지 않는다.
6. 대놓고 상스러운 표현(anything outright barbarous)을 쓸 수밖에 없다면 위 다섯 원칙을 깨버린다.
이들 몇 가지 원칙을 하나로 정리하면 ‘글은 쉬워야 한다’다. 쓰기 쉬운 게 아니라 읽기에 쉬워야 한다. 쉬워야 독자가 찾아서 읽는다. 많은 사람들은 글이란 어려워야 한다고 생각한다. 그래야 권위가 생긴다고 생각한다. 정작 글로 밥 벌어먹고 사는 사람들 생각은 다르다.
명확하게 쓰면 독자가 모인다. 모호하게 쓰면 비평가들이 달라붙는다 (
모든 글은 팩트에 기반을 두어야 한다. 수필을 쓸 때든 연설을 할 때든 논문을 쓸 때든 블로그에 자기 일기를 쓸 때든 모든 글은 팩트를 써야 한다. 자기가 생각한 거나 느낀 것만 가지고 쓴다면 그 글은 힘이 없다
기승전결이 있어야 한다. 기승전결은 글에 파도처럼 굴곡이 있어야 한다는 얘기다. 일직선도 아니고 죽 떨어지는 것도 아니고 점점 가속도를 주면서, 오케스트라가, 심포니가 맨 마지막에 끝날 때도 쾅쾅쾅쾅 하다가 팡 하고 끝나는 것처럼 글도 리듬을 타고 흘러가다가 쾅 하고 끝나야 한다.
글의 힘은 첫 문장과 끝 문장에서 나온다
어떤 사람은 첫 번째 문장 하나를 쓰기 위해서 이틀을 고민하고서 30분 만에 한 50문장을 완성하고 또 이틀을 걸려서 마지막 문장을 끝낸다. 첫 문장과 끝 문장은 그렇게 중요하다. 사람으로 치면 첫인상이고 뒷모습이다.
글의 시작이 독자로 하여금 그 글을 계속 읽게 만드느냐 여부를 결정한다. 마지막 문장을 읽고서 독자는 그때까지 자기가 들인 시간과 읽는 수고를 생각한다. 읽은 보람 혹은 읽는 데 시간을 투자한 가치를 저울질한다. 마지막 문장은 글을 총 정리하는 중요한 문장이며 글이 가지고 있는 울림과 감동의 규모를 결정하는 문장이다.
글을 자기가 들을 정도로 소리 내서 읽어보면 리듬이 뭔지를 알게 된다. 소리 내다가 읽기가 거북해지고 막히는 대목이 나온다. 그러면 자기도 모르게 앞부터 다시 읽게 된다. 그 문장이 틀린 문장이라는 뜻이다. 품격이 없는 문장이라는 뜻이다.
좋은 글은 작은 소리로 읽었을 때 막힘이 없이 물 흐르듯 읽히는 글이다.
좋은 글은 수식이 없다. ‘굉장히 좋다’ ‘너무너무 기분 나빴다’ ‘너무너무 기분 좋았다’라고 쓰지 않는다. ‘너무’나 ‘굉장히’나 ‘매우’나 이런 말들이 문장에 들어가게 되면 읽을 때 거추장스럽다. 또 독자들은 이 사람이 뭔가 자신이 없기 때문에 ‘나한테 굉장히 아름다우니까 너도 이렇게 생각 좀 해’라고 강요한다고 생각하게 된다.
의욕적으로 쓴 글은 항상 ‘말없음표’로 끝나 있다. 틀린 글이다.
글은 궁금함이 없어야 한다. 철칙이다. 여운을 남기고 싶다고 해서 말줄임표로 끝내버리면 안 된다. 독자들은 결말이 궁금하다. 그런데 글이 끝나버려 물어볼 방법이 없다.
글은 쓴 다음이 중요하다. 오류는 초고를 완성한 후에 바로잡는다. 바로잡는 단계에서 가장 중요한 일이 바로 낭독이다.
소리 내서 읽는다.
목소리 모델 한 사람을 가지면 어떨까. 연인도 좋고 가족도 좋고 친구도 좋다. 자기 글을 읽어줬으면 하는 그 사람 목소리를 상상해본다.
글을 쓰고 나서 머릿속으로 그 목소리를 상상하면서 그 목소리로 읽어본다. 그 사람의 목소리를 상상하면서 읽었을 때 뭐가 걸린다든지 뭔가 목소리가 어울리지 않는다면 그 글에는 어딘가에 문제가 있는 것이다.
글을 세상에 내놓기 전에, 신뢰할 수 있는 첫 번째 독자에게 먼저 보여주도록 한다. 그 사람한테 읽혀서 평가를 받도록 한다. 그 사람이 직설적으로 독설을 하든 경탄을 하든 그 사람의 의견을 따르고 취해서 또 고치고 고쳐서 글을 완성한다. 여기까지가 글쓰기 과정이다. 다시 말해서, 첫 번째 독자가 읽어주는 작업까지가 글쓰기다.
버리기 전에는 익혀야 한다. 그래야 응용도 하고 버리기도 할 수 있지 않은가. 버리기 위하여, 아래 세 문장을 외운다.
글은 문장으로 주장 또는 팩트를 전달하는 수단이다.
좋은 글은 리듬 있는 문장으로 팩트를 전달한다.
리듬 있는 문장은 입말이다.
독자들이 관심 있는 부분은 메시지가 아니라 팩트다. 팩트를 써서 메시지와 주장을 깨닫게 만든다
여기서 짚고 넘어가야 할 표현이 있다. ‘하였다’와 ‘했다’다.
우리가 말을 할 때는 ‘했다’라고 한다. 그런데 글을 쓸 때는 꼬박꼬박 ‘하였다’라고 쓴다. 어느 게 틀리고 옳고 문제가 아니다. 리듬에 맞춰 선택할 문제다. ‘됐다’를 고집할 이유도 ‘되었다’를 고집할 이유도 없다. 읽을 때 더 맞는 표현을 고르면 된다.
짧은 문장이 좋다. 짧은 문장이 원칙이다. 문장 하나하나가 짧으면 그 전체 글에 리듬이 자동적으로 생긴다.
짧은 글, 짧은 문장을 쓰라고 얘기하는 궁극적인 목적은 리듬 있는 문장을 만들기 위해서다. 만약 긴 문장을 썼을 때도 리듬이 있다면 단문이 아니어도 상관이 없다는 얘기다
글쓰기가 낯선 사람들에게는 절제보다는 통제가 쉽다. 초고에는 쓰고 싶은 대로 쓰고 나중에 고칠 때 단문으로 바꾼다.
독서에는 여유가 필요하다. 강강중강강약강약약중강강 이렇게.
강한 글을 만드는 제일 큰 요소는 주장이다. 강한 글, 재미없거나 숨막히는 글의 특징은 주장이 많다는 것이다. 뭐 해야 한다, 뭐 해야 할 것이다. 그런 주장은 읽기도 싫고 리듬도 없다.
글쓰기가 서투른 사람이 쓴 글은 처음부터 강하다. 강한 주장으로 일관하다가 어느 순간 덧없이 결론이 나버린다. 주장을 뒷받침해줄 팩트는 부족하다.
이 팩트가 제대로 수집되지 않은 상태에서 글을 쓰게 되면 오로지 주장밖에 보이지 않는다. 또 기억, 경험, 자료, 인터뷰 등 글 재료가 풍부하더라도 미리 설계하지 않고 무조건 글을 쓰게 되면 주장을 하게 된다. 주장만 있으면 그 글은 재미가 없어진다. 백이면 백 재미가 없다. 설계와 팩트. 글을 재미있게 만드는 중요한 두 가지 요소다.
아무리 고귀하고 품격 있는 주장도 설득력이 없다면 말짱 꽝이다. 바로 팩트가 해야 할 역할이 설득이다. 설계가 되지 않은 글, 팩트가 모자라는 글은 대개 그런 설득을 하지 못한다.
구체적으로는 미담 혹은 모범적인 표현들을 쓰지 말라는 이야기다. 잘 써놓고도 맨 끝 문장이 ‘~해야 할 것이다’라는 당위적인 세상살이 또는 ‘~해야 겠다’ 따위 자기 결심으로 끝나면 그 순간 잘 읽어왔던 글이 와르르 무너지고, 독자는 초등학교 바른생활 책을 읽느라 이 시간을 버렸나 하고 그 글을 덮는다.
펜이 됐든 키보드가 됐든, 마지막 문장에 마침표를 찍으면서 진짜 글쓰기가 시작된다. 글을 쓰고 30분 있다가 다시 읽어라. 금방 읽지 말자.
독자를 설득하려면 단정적으로 써라. 그러기 위해서는 자기가 쓰려는 사실 관계에 대해 명확하게 파악하고 있어야 한다. 자기도 잘 모르는 사실을 ‘이다’라고 단정적으로 쓸 수는 없다. 결국 우리는 팩트 이야기로 되돌아와 버리고 말았다. 과연 팩트는 신성하다!
구체적으로 어떻게 할 것인가. 글을 시작하기 전에 서론 본론 결론만이라도 나눠보자. 그리고 서론에 쓸 이야기와 본론에 쓸 이야기, 결론에 쓸 이야기를 메모 형식으로 나눠본 뒤 진짜 글쓰기에 돌입한다(서론 본론 결론‘만이라도’라고 한 이유는 다른 장에서 말하겠다).
서론을 쓰는 이유는 본론을 읽히기 위해서다. 본론은 결론을 읽히기 위해서 쓴다. 요즘 말로 하면 뒤쪽 문단을 읽게 하기 위해 던지는 미끼가 앞쪽 문단이다. 자, 이래도 안 볼래? 이래도 안 볼래, 식으로 뒤쪽을 읽도록 유도하는 문단이 앞 문단이다.
서론, 본론, 결론이라고 적은 뒤 작은 제목이 됐든 문장이 됐든 서론에 쓸 요지를 한 줄로 짧게 적는다. 길게 쓰면 서론 자체가 돼 버리고 본론 자체가 돼버린다. 짧게, 한 문장, 아니면 한 메모 정도로 딱딱 짚어준다. 이게 기초 설계다. 이 설계도에 살을 붙여 나가는 작업이 글쓰기다.
디자인이다. 이 디자인을 토대로 글을 쓸 때는 앞서 말한 모든 원칙을 총동원한다. 수식어를 줄이고, 문장을 짧게 쓰고, 리듬에 맞추고, 이야기하듯 쉽게 쓰고 기타 등등. 결론 부분 마지막 문장에 마침표를 찍으면서 글 하나가 완성된다.
완성된다? 아니 시작된다.
퇴고 직전 과정까지 거칠게 남아 있던 글, 초고(草稿)는 퇴고를 거치면서 상품으로 탈바꿈한다. 이 과정에서 앞서 말한 모든 원칙들에 대한 재점검 작업이 이루어진다.
① 글을 끝내고서 30분을 쉬었다가 자기가 원하는 목소리로 조그맣게 소리 내서 읽어본다.
② 다시 읽는 과정에서 장식적 요소를 덜어낸다. 수식어를 덜어내고 문장에서는 뼈대만 남기고 살은 과감하게 없애본다. 부사어와 관형어 같은 수식어를 줄이고 내용면에서는 주제와 상대적으로 거리가 먼 부분부터 없애본다. 한 문장씩 토막내 단문으로 만들 부분은 없는가도 점검한다.
③ 주제 관련된 팩트, 사실을 채워서 보충한다. 동시에 내가 쓰지 못한 팩트는 없나 점검한다. 보충할 팩트가 있으면 이를 채워 넣는다.
④ 쉬었다가 다시 읽고 고치는 과정을 반복한다. 그리고 정해놓은 첫 번째 독자에게 그 글을 읽게 해 평을 받는다.
⑤ 비로소 글이 완성된다.
기술적으로는 수식어를 내가 얼마나 많이 썼나, 뺄 수식어는 없나에 대해 집중적으로 점검한다. 내용적으로는 주제와 무관한 팩트는 없는가를 본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