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어느 소방관의 기도 - 오영환1000권 독서 2019. 12. 1. 21:40
얼마전 소방직 공무원이 지방직에서 국가직으로 전환되었다. 해당 관할 지방의 소속의 부족한 예산으로 인해 소방 계열의 환경이 열악하여, 사비로 장비를 구입하는 사람들도 있다고 기사가 나오곤 했는데, 참으로 잘된 일이라 기쁘게 여겼다.
리디셀렉트를 뒤지다가 소방직공무원들의 삶을 그렸을 것 같은 제목에 책을 선택하였다. 얼마전에 읽은 응급실에서 근무하는 의사선생님이 쓰신 "만약은 없다"라는 책을 읽다 포기하게 된 동일한 이유로 이 책도 중반에 멈추었다.
책 전반에 흐르는 죽음의 그림자. 생의 마지막 순간 인간의 나약함, 생사의 갈림길 앞에 인간이 아무것도 할수 없는 연약한 모습들이 책을 더이상 보고 싶은 마음이 사라지게 했는데, 이 책도 책장을 넘기는데 힘들었기는 마찬가지다.
중반까지 읽으며 메모했던 내용과 자문자답을 정리해본다.
- 사고 현장을 수습하는 과정 중 집에서 나오지 못했다던 집주인의 아들은 화재 후 바로 대피했으며 정신 병력이 있는 그가 술을 마시고 노모를 폭행한 뒤 집에 불을 지른 것으로 밝혀졌다. 오직 그날 새벽 집에서 이미 빠져나간 이를 찾아 화염 속으로 진입한 소방관들만이 무너진 건물 아래 파랗게 질식된 얼굴로 잠들어야 했다.
Q. 타인의 실수나 의도적인 행동으로 인해 내 가족, 동료가 죽게되었다고 한다면, 나는 어떤 반응을 보일까?
A. 분노, 그리고 즉각적으로 할 수 있는 모든 반응들이 이어질 것 같다. 다만, 용서..? 는 잘 아직 잘 모르겠다. 내가 사랑하는 이들을 죽음으로 몰고간 사람에게 용서를 베풀만큼의 용기를 아직 갖고 있지 않다. 분노와 미움은 나를 갉아 먹는 다는 것도 분명 이성적으로 이해하고 있지만, 내가 분노에 휩싸인 상황에서는, 그 분노를 조절해낼 장치가 아무것도 없다. 아직은 내공이 부족한 것 같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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국내 심정지 환자의 소생률은 4.8%, 100명 중에 5명. 20명 중에 1명이 되지 않는 확률. 그러나 나는 무뎌지고 싶지 않았다. 나는 여전히 구해내고 싶었고, 지켜내고 싶었다. 여전히 내 심장이 뜨겁게 뛰고 있음을 다른 이의 심장으로 분연히 증명해내고 싶었다.
Q. 일상에서 심정지가 온 사람을 구조 보거나 CPR을 통해 구조하는 장면을 본 적이 있는가?
A. 아직까지 없다. 하지만, CPR 교육을 평소에 강조하시는 분들에게 이야기를 들어보면, 가까운 가족, 동료들이 심정지의 상황에서 CPR을 통해 생명을 구해냈던 상황들을 많이 들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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뜨거운 화재 현장에 맞서 생명을 구하기 위해 소방관이 된 많은 이들은 이 사회에 차고 넘치는 사소하고도 무지몽매함에 혀를 내두르면서도 오직 사람에게 봉사한다는 그 마음가짐 하나로 버틴다. 어떻게든 버텨내려고 한다. 그 답답한 날들 가운데서 또 화재나 사고는 수없이 발생하고 분명 우리를 기다리는 간절한 손길이 어디서나 나타나기 때문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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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럼에도 희망은 존재한다. 치킨 두 마리를 안전센터 입구에 몰래 놓고 간 동네 주민의 감사 편지를 지난 야간 근무 중에 받았다. 밤새 기분이 좋았다. 소방차를 향해 손을 흔들며 지나가는 동네 꼬마들의 반짝이는 눈빛 덕에 또다시 힘을 낸다. 구급차에게 기꺼이 길을 양보하는 이들의 보이지 않는 감사한 마음에 보답하기 위해서라도 더욱 힘을 낸다. 나는 내가 겪어야만 했던 수많은 슬픔을 깊은 곳에 넣어둔 채 또다시 웃으며 출근할 것이다.
A. 올해 12월 25일 저녁 9시 운암동소방서로 두손 무겁게 출동해야겠다.
- 동료의 순직에 대한 슬픔을 채 털어내지 못한 날들이라도 그 언제 어느 순간에나 출동 벨은 울려댔고, 우리는 다시금 다치고 아픈 이들이 신음하는 사고 현장으로 달려가야만 한다. 이것이 지금 우리의 현실이다. 이 순간에도 많은 소방관들은 위험 속으로 뛰어들고 있다. 아프다. 아프면서도 말을 아낀 채, 그저 묵묵히 현장으로 달려가야 한다. 우리는 소방관이니까.
Q. 나는 동료의 아픔을 얼마만큼 공감하는가?
A. 동료에 대한 공감력 지수는 자신있게 0점이다. 한살한살 나이를 먹어가면서, 나란 사람은 참으로 공감능력이 부족하다는 것을 뼈저리게 느낀다. 안타까운 상황에 처한 사람에 대한 동정과 연민이 아닌, 사람 자체를 공감해주는 능력이 0이다. 내가 공감할 줄 모르니 누군가가 나를 공감해준다 라는 것도 상상하기 어려운 것이 사실이다. 사회적 동물이지만, 아직 덜 자라고 덜 진화된 것 같은 안타까운 모습이다.
이젠 머리가 다 커버려서, 앞으로의 삶에도 내 자신이 동정이나 연민이아닌 누군가를 진심으로 공감하는 것은 어렵겠지만, 의도적인 노력과 관심을 꾸준히 기울여 보려고 노력중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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