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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201번째 책] 예술감상 초보자가 가장 알고 싶은 67가지 - 김소영
    1000권 독서 2018. 5. 21. 09:54



    책에서 메모한 내용


    인생은 살 가치가 있다는 것을 일깨워 주는 것. 그것은 모든 예술의 궁극적인 목적이다 - 헤르만 헤세 -


    톨스토이는 예술의 목적이 미이며, 미는 쾌감이라는 당시까지의 학문적 대세에 다소 반하는 생각을 하고 있었다. 그는 예술을 즐거움의 수단이라고 생각하는 것을 멈춰야 한다면서, 예술은 사람과 사람을 결합시키는 수단으로, 사람은 언어를 통해 사상을 전달하고 예술을 통해 감정을 전달한다고 주장했다. 


    우리가 예술가에게 보내는 찬사는 반짝이는 재능과 센스를 향한 것도 있을 것이다. 하지만 그보다는 성숙한 작품을 해산하기까지 눈물 젖은 빵을 먹어가며 무명의 세월을 견뎌낸 인내심과 포기할 줄 모르는 장인정신을 향한 것이 아닐까.


    어떤 사람이 괜찮은 사람인지 아닌지 알고 싶다면, 그가 일을 마친 후 여유로운 시간에 무엇을 하고 지내는지 관찰하면 된다. 


    노숙자 학생들은 시간이 나면 가장 저렴하게 즐길 수 있는 미술관에 가서 그림을 감상하거나 대학로에 가서 연극을 본다. 그들은 빵이 부족한 게 아니었다. 고픈 건 배가 아니라 머리이고 가슴이었다. 왜 살아야 하는지, 어떻게 살아야 하는지를 알아야 생활의 영역을 낭비하지 않는다. 목표가 있고, 좌표가 있으면 배는 해류가 역류해도 돌아서라도 가긴 가는 것처럼.


    인류의고고한 지적 역사를 살펴보자. 인간이 삶의 의미를 추구해온 세월과 궤를 같이 한다. 철학은 이성을 통해 삶의 의미를 찾아왔고, 종교는 영성을 통해 추구해왔다. 그리고 예술은 인간의 감성을 가지고 도달하려 할 뿐이다. 예술은 인류의 감성의 꽃이며 열매다. 예술은 움직이는 인문학이다. 


    감정이 풍부한 사람들이 대체적으로 예술을 더 잘 즐긴다. 감정이 풍부한 사람들은 감정이입을참 잘하는 것 같다. 배우의 기븜을 내 기쁨으로, 배우의 슬픔을 내 슬픔으로 느끼면서 보는 사람들은 하나를 봐도 열을 끄집어내 즐길 수 있다. 감정이입을 잘 못하는 사람들은 실제로 만나도 그다지 재미가 없다. 


    이제 관객은 온갖 이론으로 무장한 평론가의 글발에 수동적으로 해석을 의지하는 상태로 전락하게 된 듯하다. 작품은 지식인들의 도전적인 해석 앞에 갈기갈기 찢어져 온전한 상태로 즐기기 어렵게 되었다. 아니 그렇게 보이는 그대로 받아들이는 것이 감상자의 자세치곤 뭔가 부족한 것처럼 착각되는 현상이 생기고 만 것이다. 


    우리의 임무는 예술작품에서 내용을 최대한 찾아내는 것이 아니라, 작품 속에 있는 것 이상의 내용을 더이상 짜내지 않는 것이라는 수전 손택의 외침은 큰 반향을 일으켰다.


    정치는 생활을 바꾸고 예술은 삶을 바꾼다.


    부모들은 아이가 어렸을 때 예술 즐기는 습관을 갖도록 기를 쓰고 노력해야 한다. 분명 우리의 자녀들은 그동안 과소평과된 우뇌형 재능이 '밥 먹여주는' 시대에 살게 될 것이다. 


    미술관에서는 그림을 '보여주기 위해' 보여준다. 반면 갤러리에서는 그림을 '팔기 위해' 보여준다. 그래서 갤러리에는 입장료라는 것이 없고 미술관에는 존재한다. 


    인상주의 그림은 한 가지 신기한 특징이 있는데 가까이서 보면 급하게 그린 엉터리 붓질 그림 같지만, 멀리 떨어져 볼수록 아름답다는 것이다. 그리고 대체적으로 작품에서 풍겨나는 분위기가 따뜻하고 밝다. 


    어쨋거나 그림은 일정한 규범에 따라 아름답게 그려야 한다는 아카데미즘이 절정에 이른 시기에 즉흥적인 붓질의 인상주의는 당시 미술계에 경악에 가까운 충격을 주었다. 인상파 화가가 등장한 이후 화가들은 어떻게 '재현' 하느냐에 집차갛지 않게 되었고, 화가가 느끼는 것, 화가가 중요하게 생각하는 것, 화가의 내면을 대신 표현하는 것을 그림으로 그리게 되었다. 이것은 '무엇을 그리느냐'에서 '누가 그리느냐'로의 코페르니쿠스적 전환이다. 


    현대는 관객이 공부를 해야 미술을 이해할 수 있는 시대가 되었다. 좋게 말하면 관객들이 작품 감상에 능동적으로 참여하게 되었고, 나쁘게 말하면 적극적인 감상자들을 제외하고 미술과 관객의 사이는 더욱 멀어지게 되었다. 인상주의는 그렇게 고전미술과 현대미술을 가르는 큰 분수령이 되었다. 피카소는 이것을 회화가 끝장난 것이라고 표현했다. 


    내가 운보를 다시 생각하게 된 것은 그가 화가 가운데 유일하게 자신의 친일행적을 공개적으로 사죄했기 때문이다. 1993년 1월 운보의 외아들인 김완 씨는 여든 살이 된 아버지를 대신해 기자회견을 열고 "일제말기 친일을 한 사실이 있으며 이에 대해 역사와 민족 앞에 사죄한다" 고 밝혔다. 


    "내가 널 찍어도 되겠니?" 유명 사진작가한테 이런 질문을 받는다면 나는 생각할 것도 없이 "어머! 가문의 영고아이에요." 하며 팔짝팔짝 뛰었을 것이다. 그런데 사진작가 김중만한테 똑같은 질문을 받고도 5년 동안 말없이 튕긴 대단한 존재가 있으니, 바로 버드나무다. 


    시간예술에는 시작과 끝까지 시간이 개입되어 있으며, 시간의 흐름을 무시하면 감상이 완성되지 않는다. 시간예술의 대표적인 장르는 음악이다. 음악은 눈에 보이는 형태를 갖고 있지 않기 때문에 어렵고 지루하게 느껴지기도 한다. 반복해서 듣는다고 해도 결국 순간의 기억력에 의존해야 한다. 그런데 바로 그 이유로 음악을 좋아하는 사람 또한 많다는 사실이 재미있다. 


    어려서부터 5분도 넘지 않는 짧은 가요를 듣고 자란 혈기 왕성한 젊은이한테 클래식 음악을 사랑해달라고 설득하기란 여간 어려운 게 아니다. 가사도 없고 길기만 한 음악, 듣다보면 좋아질 테니 일단 무조건 들으라고 말할 수 잇을까. 듣다보면 좋아진다는 진리는 적어도 클래식을 알고야 말겠다는 의지를 가지를 가진 사람에게만 한정되는 듯하다. 


    경험상 클래식 음악을 가장 빠르게 훑어볼 수 있는 방법은 일단 시대 순으로 대표 작곡가의 대표곡을 두 곡 내지 세곡 정도 자주 듣는 것이다. 처음부터 욕심 낼 필요가 없다. 평론가가 되려는 게 아니니까. 그다음엔 그 작곡가와 동시대 작고가들의 곡으로 레퍼토리를 확장해가는 것이다. 그러면 많은 곡들이 머릿속에서 비교적 질서 있게 자리 잡을 수 있다. 


    또 하나 중요한 것은 곡의 제목에 집착할 필요가 없다는 사실이다. 


    작곡가가 무엇을 그렸는지 정확히 남겨놓지 않았으니, 음악을 듣는 것은 보물찾기와 같다는 게 장한나의 생각이었다. 누가 찾느냐에 따라 얼마만큼 찾느냐에 따라 보물은 달라진다. 


    내가 생각하는 클래식 음악은 '형용사'를 전달하는 매체다. 기쁘고, 슬프고, 애잔하고, 들뜨고, 화나고, 몽롱한, 이런 형용사들 말이다. 


    감정으로 충만한 상태에서 음악을 들으면 몇 번 들어도 지겹지 않다. 또 듣다보면 곡의 뼈대가 어렴풋이 잡히고, 중심 멜로디를 익히게 되면 긴 곡도 짧게 느껴진다. 당연히 자연스럽게 작곡가가 궁금해지고, 작곡가를 공부하다보면 곡이 탄생한 환경과 시대 속에서 지성의 여행을 떠나게 된다. 


    오케스트라와 지휘자의 위상에도 변화가 왔다. 강요하지 않는 탈권위 시대가 도래한 것이다. 다시 말해 '나를 따르시오' 에서 '우리 함께 갑시다'로 변했다. 전 세계적으로 교향악단에 대한 정부의 지원은 줄고 있고, 클래식을 향유하는 사람들의 연령층은 점점 올라라고 있다. 악단과 지휘자가 외부의 위기 앞에서 택해야 할 길은 자명하다. 


    오페라 조연들의 외모가 더 아름다운 이유는 성대 길이 차이 때문이다. 성대가 짧은 사람은 고음을 잘 내고, 성대가 긴 사람은 저음을 내는 데 유리하다고 한다. 그렇다면 몸의 비율을 봤을 때 성대가 비교적 짧은 사람은 키가 상대적으로 작고, 성대가 긴 사람은 키가 상대적으로 큰 게 맞는 것이 아니겠는가. 


    섬진강 주변과 섬진강 동쪽 산간 지대에 위치한 고창, 순창, 곡성, 남원 구례는 호방하고 씩씩한 소리를 잘 내는 동편제 명창들이 많이 나왔고, 섬진강 아래쪽으로 평야 지대에 위치한 담양, 광주, 나주, 보성에는 애절하고 슬픈 소리를 내는 서편제 명창들이 많이 나왔다고 알려져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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