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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209번째 책] 조금은 삐딱한 세계사 유럽편 - 원종우
    1000권 독서 2018. 6. 9. 01:16



    책 속의 구절


    금지곡과 검열에서 들어나던 문화적 폐쇄성과 무지, 정치적 탄압과 독재에서 비롯된 자유의 제한, 새롭고 창조적인 것에 대한 방어적인 보수성, 개인의 주체성에 대한 불편함과 억압. 이것들이 통틀어 전근대성이라는 사실을 깨닫는 데는 꽤 시간이 걸렸다. 


    역사는 그 자체로 존재하는 것이 아니라 인간의 삶의 이야기들의 총합이다. 따라서 역사를 이해하는 것은 인간을 이해하는 것이다.


    우리가 만들어낸 기술과 사상, 종교, 철학, 그리고 직면하고 있는 현실의 문제들이 보편적 인간성의 이름 아래에 수렴되고 행사될 때, 그제야 비로소 우리의 근대는 완성될 것이다. 인간의 이름이 아닌 모든 다른 것은 그저 환상이고 껍데기라는 사실, 우리가 얻어내야 할 역사의 교훈은 단지 그 하나뿐이다. 그리고 이 책은 그것에 대한 이야기다. 


    한때 세력을 크게 떨치며 유럽 제패를 노렸던 히틀러와 무소릴니가 이런 행보를 걸었던 이유는 그만큼 로마가 유럽의 뿌리이고 마음의 고향이자 영광의 상징이기 때문이다. 


    어떤 나라도 1,000년 이상 정체성을 유지하며 존속한 경우는 없었다. 해당 지역과 주변 사람에게 마음의 고향과 같은 존경을 받은 나라는 더 드물었다. 이것이 로마 제국과 다른 패권국과의 차이고 이 뿌리가 유럽의 힘이다. 


    로마의 확장은 단순한 식민지배나 제국주의 침략을 넘어 고등문명의 전파라는 의미가 있다. 이는 나치나 일제가 내세웠던 시대착오적인 자기도취와는 근본적으로 다르며 로마의 이러한 모습이야말로 그들을 아직도 유럽문명의 창조자이자 수호자로서 자리매김하는 근본적인 힘이다. 


    어느 정도의 물질적 여건을 갖추고 난 다음에 뒤따르는 행복추구의 바탕은 다름 아닌 여유다. 


    우리나라 사람들은 평생 바쁘게 사는 데 익숙하고 그걸 미덕으로까지 여기기 때문에 외국에 이민을 가서도 느림을 참아내기가 어렵다. 그 느림이 결국 자기의 느림을 허용하는 것으로도 이어진다는 사실, 잘 운용하기만하면 자신의 삶의 여유로 돌아오게 된다는 것까지 생각이 미치지 못한다. 


    기독교의 출현과 예수 사후 바울, 베드로 등이 행한 전도 활동은 로마의 사상에 분명한 영향을 미치게 되었다. 기독교적 세계관에 비추어보면 로마의 신상과 다양한 신은 모두 거짓 신들이기 때문이다. 따라서 로마가 비록 현세에서는 번영을 구가하고 있지만 로마인들은 결국 창조주를 알아보지 못한 채 짧은 현세에서의 삶이 끝나면 지옥으로 떨어질 것으로 여겼다. 


    중앙의 정치적 혼란 등으로 구심이 흐려지면서 외곽에서 로마적인 가치가 약화되면 그 영향은 다시 제국의 중심부로 돌아온다. 이런 현상이 계속되면 제국 전체에 걸쳐 가치관의 혼란이 도래하고, 제국을 하나로 묵고 있던 사상적 기반이 흔들리게 된다. 


    패권자인 로마가 이끌던 문명의 가치에 대한 사회적인 합의가 약해지면 그때부터 야만적인 힘이 득세할 수밖에 없고, 그렇다면 이제 로마는 더 이상 유럽의 정신적 지주로 기능할 수 없게 된다. 여기에 더해 박해 속도에서도 퍼져 나가는 기독교의 유일신사상과 그것이 철저하게 부정하는 기존 로마적 가치의 충돌이라는 현실도 도사리고 있다.


    로마와 기독교사상은 기본적으로 서로 양립할 수 없는 것이었다. 로마의 사상은 현실에서의 명예로운 삶을 강조하지만 죽은 후의 내세나 구원에 대해서는 별다른 말을 하지 않는다. 


    사후의 보상체계가 없는 이런 내세관에 의지해 삶을 버텨내려면 교육과 법, 시민으로서의 자부심, 다양한 계급을 만족시킬 사회 시스템이 뒷받침되어야 하는데 이런 요소들이 조금만 약해지면 바로 흔들리게 된다. 이와는 대조적으로 이승의 삶에 대한 상벌 기준을 분명히 하는 기독교는 과거에 비해 약해진 로마의 사상적 기초를 크게 흔들어놓을 수밖에 없었다. 


    선진국이라는 환상

    느리더라도 일을 제대로 해야 그만한 이유가 될 터인데 영구의 실상은 별로 그렇지 못하기 때문이다. 관공서는 물론이고 일반 기업의 서비스에 이르기까지 영국인의 무열정과 무책임, 어설픈 일처리 및 '이유 없는' 만만디는 현지에서 어느 정도 생활한 사람이라면 누구나 지겹도록 경험하는 구체적인 현실이다. (중략) 일하는 사람들의 태도에서부터 시스템의 효율에 이르기까지 모든 게 말 그대로 엉망이다. 


    선진국들에게서 배울 점은 많지만 선진국은 결코 천국이 아니다. 지난 수십년간의 끝없는 노력을 통해 이제 우리 사회도, 여전히 문제가 많음에도, 최소한 이 나라들과 어깨를 나란히 할 수 있는 측면도 있다. 그럼에도 우리는 아직 유럽이나 구미 선진국에 대해 지나친 환상을 갖고 있다. 


    게르만족이 야기한 중세의 야만성

    게르만인들이 기독교화된 로마를 접수했다는 것은 많은 점을 시사한다. 로마에 비해 덜 문명화된 민족이었던 그들은 로마를 통해 전파된 기독교를 세련되게 승화시킬 능력이 부족했다. 거기에 지금도 남아 있는 특유의 완고한 성향이 가뜩이나 융통성 없는 일신교 기독교의 절대주의 도그마를 더 강화해버리고 말았다. 


    이슬람이 100년 남짓의 짧은 기간 동안 유럽과 아시아, 아프리카의 세 개 대륙에 걸친 큰 성공을 거둔 비결

    1) 아랍인 속에서 마지막 예언자가 나왔다는 사실

    2) 이동이 생활화된 삶의 양식에 더불어 이미 넓은 지역에 퍼져 있던 아랍인의 네트워크 

    3) 다른 민족과 이교도에게 비교적 관대했다는 점

    - 이슬람은 원칙적으로 강제적인 개종을 금지하고 있다.


    백인 세계가 기독교와 왕정 및 귀족주의를 극복하면서 시민사회로 발전해나가는 과정에서 도입할 수 밖에 없던 도구들이 있었다. 그것은 법과 규율, 그리고 개인주의에 바탕을 둔 이성인데, 이것들은 아주 유용하고 필수 불가결한 도구들이지만 한편 다음과 같은 문제들을 유발할 수밖에 없었다. 

    -기독교 도그마의 붕괴는 신이 내린 절대적 규율의 의미가 사라지고 대신 세속의 법률이 그 자리를 차지한다는 뜻이다

    -하늘에서 모든 것을 지켜보고 심판하는 신의 윤리가 사라진 만큼 세속의 법률은 불법 행위가 실제로 적발되고 처벌되는 속에서만 유효하다.

    -이성에 따른 일반 윤리, 공평무사의 원칙에 따라 성립된 내적 규제들은 제대로 된 가정환경이나 교육 등의 조건이 충족된 경우에만 계몽되고 체화될 수 있다. 


    경제적 자립능력이 없이 이성과 명예심을 확립하지 못한 젊은이가 부모와도 같이 살 수 없다면 결과는 뻔하다. 스스로 월세를 내고 생활을 꾸려갈 능력도 의지도 없고 작은 정신적인 충격에도 쉽게 좌절하고 상처받는데, 떼쓰는 것을 받아주지 않는 사회니 하소연할 곳도 없다. 결국 의지할 것은 마약이나 술, 그리고 길거리에서의 생활이다. 


    미국이나 캐나다의 홈리스는 대부분 부모.형제나 가족이 있는 사람들인데, 그들은 가족에게 짐이 되느니 차라리 길 위의 삶을 택한다. 가족을 위해서가 아니라 실제로 그 편이 마음이 편하기 때문이다. 이런 삶 속에 들어온 사람들은 웬만한 노력을 하지 않는 한 다시 사회나 가족으로 복귀하는 것이 불가능하다. 


    두 사상의 위험한 동거

    현대에도 그렇듯이 예수 가르침의 골자를 차분히 실천하는 사람들은 종교적인 면뿐 아니라 일상생활에서도 유혹이나 자극에 쉽게 빠지지 않는다. 그러나 중세적 상벌주의의 측면을 강조하는 일부 종파 사람들은 오히려 금전이나 지위, 권력, 성 등에 쉽게 미혹되는 경향이 있다. 


    이미 퍼져 있는 초조함과 두려움, 제국의 붕괴를 지켜보며 느낀 공허감은 게르만족의 딱딱한 원칙주의와 더불어 기독교의 도그마와 상벌주의 앞에서 자신들을 철저히 옭아매게 만들었다. 이런 상황이 계속되면서 결국에는 종교의 광신상태에 놓이게 되고, 일단 광신이 자리를 잡고 나면 이제 그 광신 자체가 만들어내는 사회체제가 새로 창출되는 것이었다. 


    유럽의 중세는 기독교의 간판을 달았지만 실제로는 일종의 판타지적 정신상태에 사로잡혀 1,000년을 이어갔다. 중앙의 권위에는 기독교가 자리하고 있지만 주변부와 일반인의 정서 속에는 마법과 주술, 마귀와 요정들이 일상적으로 우글거렸다. 아무리 기독교의 권위가 강하다 한들 그 권위와 집착의 신비주의가 되려 자극해버린 미신적인 요소들을 소며실시키는 것은 불가능했다. 


    선악의 극단적인 대립 속에서 점점 더 광신적인 상태로 내몰리는 결과를 초래했다. 이 흥분 상태의 정점은 십자군과 마녀사냥이었다. 중세 전체가 그렇지만 특히 두 사건의 배경에는 선과 악의 이분법이라는 유럽,서양,백인 문명 특유의 사고방식이 자리하고 있었다. 


    십자군과 마녀사냥의 공통적인 특성

    1) 종교의 이름으로 행한 증오의 표출

    2) 수백 년 동안 유럽 전역에 걸쳐 일상화

    3) 약자를 탄압하는 도구로 악용

    4) 절대성의 획득 


    종교 분란과 십자군의 탄생

    이슬람의 객관적인 진실은 백인 기독교도들에 의해 재정립된 사실과는 사뭇 다르다. 중세 전반에 걸쳐 이슬람 세계는 유럽보다 훨씬 개방적이고 자유로우며 문명화되어 있었다. 수학-기하학-물리학 등 자연과학에서 이슬람의 뛰어난 업적은 르네상스 이전의 유럽을 압도한다. 


    주목해야 할 사실은 이때 명분으로 내세운 예루살렘 탈환의 성스러운 임무는 알고 보면 실질적인 의미가 없었다는 점이다. 예루살렘은 이미 400여 년 전인 서기 638년에 시리아,팔레스타인과 함께 비잔티움 제국에서 이탈해 있었다. 게다가 이슬람 특유의 관용적인 종교정책으로 예루살렘 안의 기독교 성지들은 존중,관리되고 있었고, 덕택에 수많은 순례자가 유럽 각지에서 이곳을 방문하는 것에도 큰 문제가 없었다.


    실질적인 목적은 교황이 신성로마제국 황제인 하인리히 4세와의 권력 경쟁을 유리하게 이끌려는 정치적 계산과 함께, 교황의 권위가 별로 미치지 않는 비잔티움 제국의 동방정교 세력을 흡수, 합병하기 위한 것이었다. 


    유럽을 휩쓴 종교적 열정으로 정규군이 조직되기에 앞서 자생적으로 발생한 십자군이 난무하는 사태가 벌어졌다. 그들은 말 그대로 오합지졸에 통제가 힘든 방만하고 비대한 조직으로 점점 변화되었다. 


    이들 가운데 세력이 강했던 농민 십자군은 셀주크 투르크 제국과 싸우러 가던 여로에서 이미 식량과 보급이 떨어져 헝가리 등 동유럽 지역을 약탈해 부족한 물자를 충당하기 시작했다. 


    농민 십자군의 약탈은 성전 수행이라는 명분하에 이루어졌지만 당하는 백성의 고통은 처절했고, 힘의 맛을 본 그들은 점점 성스러운 군대가 아닌 악의 도당으로 변질되어 갔다. 


    놀라운 것은 실상이 이런데도 아직 백인 문명에서는 십자군이 정의와 진리를 수호하는 군대의 이미지로 남아 있고, 그 이미지가 기독교의 전파와 함께 한국을 포함한 전 세계에 퍼져 있다는 점이다. 이런 십자군에 대한 환상은 사실관계로도 잘못된 것이지만 기독교 유럽 외에는 아무런 전통적 은원관계도 없는 이슬람 세계를 마치 악의 화신처럼 인식하게 만든다. 


    이슬람을 자극해 배타적인 태도로 바꾸어간 것은 타협과 관용을 모르던 중세 유럽의 잔인함과 무지였다. 지금의 탈레반이나 알카에다 등 이슬람 세계의 일부에서 드러나는 공격 성향의 상당 부분은 오만과 광기로 일관했던 유럽의 백인 문명에 원인이 있다.


    더 심각한 것은 이것이 단지 900년 전 비극적인 역사의 한 장으로 끝난 일이 아니라는 점이다. 


    선과 악을 일도양단해서 구별하려는 경향은 전근대적인 관점이다. 인간성의 현실을 인식하고 중용을 좇아 균형을 취해 나가는 반성이 결여되어 있기 때문이다. 자기도취에 의한 그릇된 선의 신념은 스스로의 중요성과 성취에 대한 과장을 통해 만들어지고 공고해진다. 이런 유아적인 도취는 냉엄한 현실을 마주쳐 스스로 야기한 실수와 실패를 인정하고 배우며 성장해 나가는 과정에서 서서히 극복될 수 있는데 이는 개인,종족,문명,국가 차원에 함께 적용되는 진리다. 


    무지에 기반을 둔, 상식이 결여된, 책임감이 없는, 두려움에 의해 촉발된, 증오를 만족시키려는, 자만심과 잘못된 소명의식에 기초한, 힘을 확인하기 위한 열정은 너무 쉽게 폭력과 광기, 살육과 억압으로 변해버린다. 


    낯선 것, 나와 다른 것을 이해하고 소화하지 못하는 문명은 저열하다. 서로 간에 대립되는 이해관계를 대화와 양보로 조정하지 못하는 문명은 천박하다. 그러나 소화하지 못하거나 조정하지 않는 데서 그치지 않고 총칼을 앞세워 상대를 파괴하려는 문명은 저열함과 천박함을 더해 잔인하고 위험하다. 이런 자들이 강력한 폭력의 권능을 가졌을 때 인류의 미래에는 검은 그림자가 드리워진다. 


    비극의 절정, 마녀사냥

    과거와는 달리 새로운 개신교 세력은 더 이상 이단이라는 명목하에 제거해 버릴 수 있는 규모가 아니었다. 여기서 더해 계속된 전쟁과 기아, 전염병 등 각종 사회적 어려움에서 오는 초조함은 자연스레 약자를 향한 탄압으로 연결되었다. 약자 중에서도 가장 약한 자들이 바로 마녀사냥의 주 대상이 되었다.


    마녀사냥이 일반화된 후에는 남녀노소와 귀천을 막론하고 서로 의심하고 밀고하는 풍조가 만연하게 되었다. 연적,정적,채무자는 물론 불화가 있는 가족 내에서조차 꼬투리를 잡아 마녀로 밀고하는 일이 이어졌다.


    마녀로 고발되는 사유

    1) 큰 소리로 웃는다

    2) 전혀 웃지 않는다.

    3) 혼자 중얼거린다

    4) 간질병이 있거나 사시다

    5) 외모가 흉하다

    6) 고양이를 키운다

    7) 피부병이 있다

    8) 몽유병이 있다.

    9) 교회를 잘 다니지 않거나 고해를 하지 않는다

    10) 낮에 잠을 잔다.


    반드시 지적되어야 하는 부분은 가톨릭뿐 아니라 그 불합리성을 비판했던 프로테스탄트에서도 마녀사냥이 성행했다는 사실이다. "오직 <성서>"를 외치며 <성서>에 근거한 신앙과 교리를 주장한 마르틴 루터조차도 "마녀에게 어떤 동정도 갖지 않으며 모두 죽이고 싶다"고 말할 정도였다.


    자본주의와 사회주의 양 진영에서 벌어진 사상범에 대한 검거 및 숙청이 마녀사냥과 유사한 점

    1) 숙청의 명분에 아무도 이의를 제기하지 못한다.

    2) 언론이나 대중에 의해 과장,왜곡,홍보된다.

    3) 변호나 심리는 형식적으로 이루어진다.

    4) 고문,조작 등 죄를 성립시키기 위한 모든 노력이 동원된다.

    5) 죄의 대가는 사형 등 극단적인 경우가 많다. 


    인종주의의 인식

    특정한 개인의 특수한 사례가 그가 속하는 인종, 민족 전체로 확대하여 일반화하고 그에 따른 편견이 고착되어 버리는 것이다. 


    착취당하는 이주 노동자들을 그저 불쌍하고 처량하게 바라 보는 것이 아니라 우리가 외국에 대해 우리의 인권을 주장하듯 그들의 생존권도 떳떳한 기본 권리로 인식하고 같이 지켜 나간다는 자세를 취해야 한다. 우리가 그들을 돕는 것이 아니라 인간이 인간 스스로를 돕는 것이고 이것이 바로 문명화된 사회의 구성원이 가져야 할 자세다.



    중세의 질곡에서 벗어나다

    르네상스의 주요 주제 가운데 하나는 바로 고대로의 복귀였다. 


    종교적인 권위는 총칼이나 물리력, 금전에 의해 유지되는 것이 아니라 구성원의 자발적인 신심에 의해 생기는 것이다. 어떤 이유로든 신심이 약해지면 그 순간부터 권위는 흔들리고, 그 다음부터는 우후죽순처럼 도전해오는 다른 힘과 가치의 파상공격을 받게 딘다. 그 가운데 가장 어려운 도전은 눈에 드러나는 반대 세력의 공격이 아니라 해당 종교에 속한 일반인이 조금씩 바뀌는 것이다. 그들의 움직임은 대부분 무의식적이며 합법의 테두리 안에 있고, 특히 정치나 종교가 아닌 예술적인 형태의 접근은 기존 위정자로 하여금 그 의미를 알아채기 어렵게 한다. 바티칸의 권위가 흔들리는 와중에 이탈리아에서 시작된 르네상스는 바로 이런 모습이었다. 


    중세의 오랜 억압적인 분위기 속에 지쳐 있던 유럽인에게 있어서, 특히 로마인의 혈통과 기질을 물려받은 이탈리아인에게 앞서 교황의 권위약화 등 새로운 변수들은 그리스와 로마를 향한 변화의 욕구에 서서히 불을 댕겼다. 


    경직된 기독교 유럽의 독단과 도그마를 해체해나가기 위해서 이들에게 필요했던 것도 극단적인 미래 지향의 새로운 사상보다는 바로 자신들의 바탕을 이루고 있는 영광된 과거로의 회귀였을 것이다. 


    지식을 갖춘 성직자들이 신과 인간 사이에 매개 존재로서 <성서>의 해독 및 해석권을 틀어쥔 채 군림하는 일을 가능하게 만들었다. 이런 시스템은 이단 심판이나 마녀사냥, 성직자의 부패, 교회와 교황청의 치부 등에서 보듯 정신적인 권력과 권위의 독점에 의한 온갖 부조리를 낳게 된다. 절대 권력은 절대 부패한다는 말은 단지 세속의 권력에만 해당되는 것이 아닌 것이다. 


    이런 틀의 변화가 생겨나기 시작한 것이 바로 르네상스와 종교개혁으로 이어지는 일련의 상황이었다. 


    이런 어이없는 일이 가능했던 이유 가운데 하나는 모든  <성서>가 라틴어로만 씌어 있었기 때문이다. (중략) 자국어를 아무리 잘 쓴다 한들 라틴어를 모르면 종교적 의미에서는 문맹이나 다름없었다. 일반 신도들은 성직자들의 말이나 <성서> 해석을 그대로 믿는 것 외에는 다른 방법이 없었다. 이는 종교와 생활 윤리 등 삶의 전반에 걸쳐 성직자들이 전권을 행사하는 것과 마찬가지였다. 


    그러던 가운데 비텐베르크 대학에서 강의하던 신학 교수 마르틴 루터가 신부들이 행하는 가톨릭 고유의 고해성사에 의문을 갖게 되면서 이후 이어지게 되는 종교개혁의 전반적인 틀을 잡기 시작했다.


    '프로테스탄트의 3원칙' 이라 불리는 루터의 사상은 '오직 <성서>', '오직 신앙', '만인사제'로 정리할 수 있다. 이 세 개념은 근대성이라는 측면에서 서로 밀접하게 연결되어 있다. 


    신 중심에서 인간 중심의 세상으로

    바티칸에 집중되어 있던 권력과 그 구조를 부정하고 개인성에 기초한 새로운 교리를 주창했다는 점에서 줒ㅇ세의 극복이라는 의미를 지니고 있다. 


    이렇게 세상은 신이 필요 없는 세상, 인간이 스스로 서고자 했던 시대, 삶과 죽음에 대한 두려움을 사후의 보상이 아니라 인간 스스로의 의지로 극복하려 했던 시대로 아주 천천히, 그러나 분명하게 옮겨가고 있었다. 





    이 책에서 얻은 세가지


    1) 종교적 열정으로 백성들에 대한 약탈을 일삼던 십자군의 행태는 한국 사회 기독교의 목회자라는 이들을 통해 그대로 전승되어 현대에도 이뤄지고 있다. 한국 사회에는 수많은 목회자들이 있지만 천국에 가는 목회자는 1%도 안될 것이 분명하다는 것을 역사가 이야기 해준다. 


    2) 맹목적인 믿음으로 사상,정치,문화를 추종하는 사람들의 배경에는 항상 '무지함' 과 '앎에 대한 게으름' 그리고 '자아의 결핍' 이라는 거대한 산맥이 그들의 눈을 가로막고 있다. 


    3) 작가의 깊이 있는 통찰과 이해가 참으로 부럽고 놀랍다. 우물안에 갖혀 우쭐해 하지 말고 깊은 사색과 경험이 주는 통찰을 가진 이들에게 배우고 끊임없이 발전하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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