ABOUT ME

-

Today
-
Yesterday
-
Total
-
  • [228번째 책] 내 문장이 그렇게 이상한가요
    1000권 독서 2018. 7. 18. 21:02




    책 속의 한 구절



    문장을 다듬기 위해 당신이 쓴 문장과 처음으로 마주하는 그 시간이 온전히 당신만의 시간이기를 바란다.

     ‘적·의를 보이는 것·들’
    접미사 ‘–적’的과 조사 ‘–의’ 그리고 의존 명사 ‘것’, 접미사 ‘–들’이 문장 안에 습관적으로 쓰일 때가 많으니 주의해서 잡아내야 한다는 뜻으로 선배들이 알려 준 문구였다.

    사회적 현상, 경제적 문제, 정치적 세력, 국제적 관계, 혁명적 사상, 자유주의적 경향
    어쩐지 ‘–적’이 부담스러워 보인다. ‘–적’을 빼고 다시 써 보면,
     
    사회 현상, 경제 문제, 정치 세력, 국제 관계, 혁명 사상, 자유주의 경향
    훨씬 깔끔해 보인다. 그렇다고 뜻이 달라진 것도 아니잖은가. 그러기는커녕 더 분명해졌다.
      
     조사 ‘–의’도 마찬가지다. 무조건 쓰지 말라고 할 수는 없다. 말은 모두의 것인데 일부 사람이 이래라저래라 하는 건 이상하잖은가. 그러니 누구도 어떤 말을 쓰라거나 쓰지 말라고 할 수 없다. 어색하거나 불필요하다고 여기면 어차피 쓰지 않을 것이다. 다만 그 결정은 모두가 오랜 시간에 걸쳐 할 터이다.
    문제는 습관적으로 반복해서 쓰는 데 있다. 어떤 표현은 한번 쓰면 그 편리함에 중독되어 자꾸 쓰게 된다. ‘
      
    예전엔 편집자들이 ‘–들’을 반복해서 쓴 원고를 ‘재봉틀 원고’라고 부르기도 했다. ‘들들들들’만 눈에 띄니 마치 재봉틀로 바느질하는 소리가 들리는 듯해서였다. 그만큼 우리말 문장에서 복수를 나타내는 접미사 ‘–들’은 조금만 써도 문장을 어색하게 만든다
      
    내가 살아 있다는 것에 대한 증거
    이 문장에서는 내가 살아 있는 현상을 추상적으로 이르기 위해 ‘것’을 붙인 게 아니라, 명사절로 만들어 그럴듯한 주어로 보이게 하려고 붙인 것이다. 그러다 보니 ‘–에 대한’이 쓸데없이 들어가 버렸다.
     
    내가 살아 있다는 증거
    빼 보면 쓸데없다고 말하는 이유를 금방 알게 된다
      
    인생이라는 것을 딱 부러지게 정의하기 어렵다면……
    ‘인생을 딱 부러지게 정의하기 어렵다면……’이라고 쓰면 되지 않을까.
    그래도 여기까지는 그나마 읽어 줄 만하다. 한 문장에 ‘것’을 여러 번 쓰는 경우에 비하면.
     
    상상하는 것은 즐거운 것이다.
    이 짧은 문장에 ‘것’을 두 번이나 썼다.
      
    그런가 하면 주어가 아니라 목적어를 만들기 위해 ‘것’을 붙이는 경우도 있다.
      
    처음 일을 배울 때부터 20여 년이 지난 지금에 이르기까지 교정 교열 일이 내게 딱 맞는 일이라고 확신해 본 적이 단 한 번도 없다. 엉덩이가 무거워서 이런 일을 하고 있는 게 아니라 이런 일을 하다 보니 엉덩이가 무거워 보이는 것뿐이다. 엉덩이가 무거운 척하며 살다 보니 마음에도 무거운 돌 하나 얹어 둔 것처럼 답답하고 소화도 잘 안 되는 걸 보면, 역시 이 일은 내게 맞지 않는 모양이다.
      
    ‘있다’는 동사이기도 하고 형용사이기도 하다. 동사일 때는 동작을, 형용사일 때는 상태를 나타낸다.
      
    동작일 땐 동사고 상태일 땐 형용사라고 했지만 구분해 쓰기가 말처럼 쉽지 않다. 문장 안에 쓰인 ‘있다’를 ‘있어라’로 바꾸어도 이상하지 않으면 동사, 이상하면 형용사라고 생각하면 그나마 좀 쉽게 가릴 수 있으려나.
      
    길 끝으로 작은 숲이 이어지고 있었다.
     
    이처럼 술어에 별 의미 없는 ‘있었다’를 쓰는 경우가 의외로 많다.
     
    길 끝으로 작은 숲이 이어졌다.
     
    이렇게만 써도 충분히 뜻을 전할 수 있는데 굳이 ‘있었다’를 덧붙이는 이유는 뭘까?
      
    문장의 주인은 문장을 쓰는 사람이 아니라 주어와 술어라는 사실을 늘 염두에 두어야 한다. 그러니 문장을 통해서 ‘쿨해질’ 수 있는 건 글쓴이가 아니라 주어와 술어일 뿐이다.
      
    ‘있다’가 반복적으로 쓰이는 대표적인 표현은 ‘–관계에 있다’, ‘–에(게) 있어’, ‘–하는 데 있어’, ‘–함에 있어’, ‘–있음(함)에 틀림없다’ 정도다. 앞에서 살펴본 ‘있다’와 달리 이들 표현에서 쓰인 ‘있다’는 누군가 멀쩡한 문장에 일부러 끼워 넣은 것처럼 보인다. 쓸데없는 장식 같달까.
      
    –관계에 있다
     
    1. 가까운 관계에 있었다.
    2. 그 여배우와 친밀한 관계에 있는 영화 관계자의 말에 따르면
      
    –에게 있어
     
      1. 그에게 있어 가족은 목숨보다 더 중요한 것이었다.
      2. 나에게 있어 봄은 모란에서 시작되고 끝이 났다.
      3. 경기에 있어서 가장 중요한 점은 상대 팀의 전력을 정확하게 파악하는 것이다.
     
      
         –하는 데 있어
     
      1. 그 문제를 다루는 데 있어 주목해야 할 부분은 무엇보다 비용이다.
      2. 살아가는 데 있어 가장 중요한 것은 무엇일까?
      3. 공부하는 데 있어 집중력만큼 중요한 것도 없다.
     
      ‘데’라는 의존 명사에 이미 ‘곳’이나 ‘장소’, ‘일’, ‘것’, ‘경우’의 뜻이 다 들어 있다. 일부러 앞말과 띄어 쓰면서까지 그 많은 뜻을 전하려고 애쓰는 낱말인데 굳이 ‘있어서’를 붙여서 망신을 줄 필요가 있을까? 사람은 물론이거니와 말도 예의를 지켜 가며 써야 한다.
      
         –함에 있어
     
      1. 누군가를 비난함에 있어서와 마찬가지로 누군가를 칭찬함에 있어서도 과도한 표현은 삼가야 한다.
      2. 사교육을 받고 대학에 간 부모는 자식을 교육함에 있어서도 사교육을 필수적으로 생각하는 경향이 있다.
      3. 글을 씀에 있어서 맞춤법보다 더 중요한 것은 다른 사람이 아닌 나를 표현하는 문장을 쓰는 것이다.
     
      앞에서는 ‘있었다’를 의존 명사 ‘데’에 붙였는데 이번엔 명사형에 붙였다. ‘것’에서도 그러더니 ‘있다’에서도 명사형이 문제다. 이쯤 되면 억지로 명사형을 만들어 쓰는 것이 우리말에는 어울리지 않는다는 걸 눈치챘으리라.
      
         –있음(함)에 틀림없다
     
      1. 그의 말은 일전에 언급한 내용과 관련이 있음에 틀림없다.
      2. 이러한 사실에 비추어 볼 때 그는 남에게 폐를 끼칠 사람이 못 되었음에 틀림없다.
      3. 두 나라의 정상은 회담을 연기하면서 국회에 동의를 구했음에 틀림없다.
     
      ‘틀림없다’라는 표현을 쓰기 위해 억지로 명사형을 꾸며 문장 전체를 어색하게 만들었다. 배보다 배꼽이 크고 개 꼬리가 개를 흔드는 꼴이다
      
         –에 대한(대해)
     
      미래에 대한 불안, 자유에 대한 갈망, 음식에 대한 욕심, 꿈에 대한 이야기
      
         ‘–에 대한’을 빼 버려도 문제없을 만큼 ‘대한’이 특별한 뜻을 갖지 않는 것처럼 보인다.
      말하자면 귀에 걸면 귀걸이요 코에 걸면 코걸이라는 것인데, 이거야말로 반복해 쓰면서 중독되는 데 더없이 좋은 조건이 아닌가.
      
         지적인 문장이 아니라 지적으로 ‘보이는’ 문장이라는 데 주목해야 한다. 지적으로 보이게끔 포장하지만 사실은 게으름을 그대로 드러내는 표현이기 때문이다. 실제로 그런지 ‘대한’이 들어간 문장들을 구경해 보자.
     
      
         1. 종말에 대한 동경이 구원에 대한 희망을 능가했다.
      2. 과대망상에 대한 증거를 찾았다.
      3. 성공에 대한 열망이 워낙 커서 오히려 불안할 지경이다.
      
         나열한 문장들에 쓰인 ‘대한’을 가만히 살펴보면, 무언가 지적으로 명쾌하게 정리해 주는 듯 보이지만 실제로는 문장의 뜻을 분명히 전하는 데 걸림돌이 될 뿐이다.
      
         지적으로 게을러 보이게 만드는 표현 ③
     
     
      –들 중 한 사람, –들 중(가운데) 하나, –들 중 어떤
     
      아무 생각 없이 습관적으로 쓰는 대표적인 표현이 ‘–들 중 한 사람’ 혹은 ‘–들 중 하나’, ‘–들 가운데 하나’이다. 영어 표현에서 빌려 온 듯한데, 우리말 표현을 더욱 풍성하게 해 준다면야 영어 아니라 외계어에서 빌려 온들 무슨 상관이겠는가. 다만 어색한데도 습관처럼 쓴다면 그건 교정 교열자로서 상관하지 않을 수 없다.
      
         그녀는 전형적인 독일 여자들 중 한 사람이었다.
     
      ‘–들 중 한 사람’을 아무 생각 없이 습관처럼 쓴 문장의 ‘전형’이다. 산속에 굴을 파고 혼자 숨어 지내는 도인이 아니라면 누구나 무리 가운데 한 사람이다. 이 당연한 사실을 굳이 문장 안에 길게 늘어놓을 필요가 있을까.
     
      그녀는 전형적인 독일 여자였다.
      
         –같은 경우
     
      나 같은 경우에는, 중국 같은 경우는, 그 같은 경우에
     
      앞에서 잠깐 설명했듯이 이렇게 쓰면 ‘나’와 ‘경우’, ‘중국’과 ‘경우’, ‘그’와 ‘경우’가 동격이 된다. 굳이 경우를 써야겠다면 ‘내 경우에는’, ‘중국의 경우는’, ‘그 경우에’(‘그’가 지시 대명사일 경우)라고 쓰면 될 일이다. 아니면 ‘나는’, ‘중국은’, ‘그는’(‘그’가 인칭 대명사일 경우)이라고 쓰든가
      
         내가 말을 할 때 ‘–같은 경우’라는 표현을 자주 쓴다고 해서 글을 쓸 때도 그대로 쓰는 건 좋지 않다. 말은 동어 반복을 어느 정도 허용할 뿐만 아니라 즐기기도 하지만, 글은 전혀 그러지 않으니까.
      
         사람들이 말할 때 ‘–같다’라는 표현을 습관적으로 쓰곤 하는데, 확신 여부를 따질 필요가 없는 대상에는 쓰지 않아야 옳다. 가령 ‘제가 합격했다니 정말 꿈만 같아요’라고 할 때는 형용사 ‘같다’가 어울리지만, ‘어제 친구랑 밥 먹고 영화를 봤던 것 같아요’라고 쓰면 어색하다.
      
         –에 의한, –으로 인한
     
      1. 시스템 고장에 의한 동작 오류로 인해 발생한 사고
      2. 실수에 의한 피해를 복구하다.
      3. 지배 계급의 손에 의해 조종되는 존재들
     
      ‘의하다’, ‘인하다’ 모두 한자어를 품고 있다. 의지할 의依 자와 연유 또는 까닭을 뜻하는 인因 자다. 한자어라서 문제가 될 건 없다. 다만 우리말로도 얼마든지 표현할 수 있는데 굳이 한자어를 고집할 필요가 있겠는가.
      ‘의하다’는 ‘따르다’로 바꿔 쓸 수 있고, ‘인하다’는 ‘때문이다’ 또는 ‘비롯되다’, ‘빚어지다’ 따위로 바꿔 쓸 만하다.
      
         가령 ‘–에’와 ‘–으로’는 혼동해 써서는 안 되는 조사다.
     
      이번 추석엔 고향에 갈 수 없다.
      앞으로 가야지 뒤로 가면 어떡해!
     
      여기서 ‘–에’와 ‘–으로’를 서로 바꿔 쓰면,
     
      이번 추석엔 고향으로 갈 수 없다.
      앞에 가야지 뒤에 가면 어떡해!
     
      가 되어 어색하다.
      
         ‘–에’와 ‘–을(를)’ 또한 가려 써야 하는 조사들이다. ‘에’는 처소나 방향 등을 나타내고, ‘을(를)’은 목적이나 장소를 나타내는 격 조사다. 따라서 구분해 쓰지 않으면 어색해진다.
     
      1. 자식이 명문대를 가는 게 꿈인 부모들
      2. 학원을 보낸다고 성적이 오르는 건 아닙니다.
      3. 특목고 학생의 20퍼센트가 지방에 있는 대학을 갑니다.
      
         ‘가다’나 ‘보내다’ 같은 동사에 맞는 방향을 나타내야 할 때 ‘–을(를)’을 붙이니 어색하다. 이럴 땐 당연히 ‘–에’를 붙여야 자연스럽다.
     
      1. 자식이 명문대에 가는 게 꿈인 부모들
      2. 학원에 보낸다고 성적이 오르는 건 아닙니다.
      3. 특목고 학생의 20퍼센트가 지방에 있는 대학에 갑니다.
      
         ‘–을(를)’을 붙여야 할 때는 다음과 같은 경우다.
     
      이른바 명문대라고 불리는 대학들을 돌아다니며 이런저런 정보를 얻었다.
      하루 종일 이 학원 저 학원을 돌아다니며 입시 상담을 받았다.
      우리 학교에는 지방에 있는 대학을 목표로 공부하는 학생도 있다.
      
         한편 ‘–로의’나 ‘–에게로’처럼 조사가 겹친 표현은 쓰지 않는 게 좋겠다.
     
      4. 낯선 세계로의 진입이 시작되었다.
      5. 일곱 살짜리 그 사내아이는 결국 어머니의 품을 떠나 아버지에게로 갔다.
      
         조사 ‘–에’와 ‘–에게’의 차이는 ‘–에’는 무생물에, ‘–에게’는 생물에 붙인다는 것이다. 그리고 ‘–에게서’는 ‘–에게’와 ‘–에서’가 합쳐진 조사인데 쓰임에 따라 표현이 어색해질 수 있으니 가려 써야 한다.
      
         ‘–에’와 ‘–에게’, ‘–에게서’를 구분해 쓰는 것도 중요하다.
     
      6. 적국에게 선전 포고를 하다.
      7. 우리 정부는 미국에게 바뀐 정책에 대해 설명했다.
      
         방향을 나타내는 조사 중에서 가장 문제가 되는 건 ‘–(으)로부터’이다. 앞에서 살펴봤듯이 ‘–로’는 체언이 움직여 가는 방향을 나타내는 조사인 반면 ‘–부터’는 출발점을 뜻하는 조사다. 그러니 ‘–로부터’라고 쓰면 방향이 서로 어긋나는 셈이다.
      
         1. 친구로부터 선물을 받았다.
      2. 부모로부터의 이별
      3. 세상으로부터 단절되어 있는 사람들
      
         편리함 때문에 문장이 어색해지는 걸 꾹 참아 가면서 ‘–로부터’를 고집하다 보면 다음과 같은 문장들을 쓰게 된다.
     
      1. 몇몇 죄수들이 담 한쪽에 난 구멍으로부터 교도소 밖으로 빠져나가 도망쳤다.
      2. 그런데 그가 왜 내게 적대적으로 되었는지 그리고 자신의 가족으로부터 의심을 받게 되었는지 그 이유를 모르겠다.
      
         당하는 말이나 시키는 말, 곧 피동被動과 사동使動은 모두 동사와 관련된 말이다. 가령 ‘먹다’라는 동사를 ‘먹히다’라고 쓰면 당하는 말이 되고 ‘먹이다’라고 쓰면 시키는 말이 된다. 먹히는 건 먹는 행위를 당하는 것이고, 먹이는 건 먹게끔 하는 것, 곧 먹도록 시키는 것이니까.
      이렇게만 보면 무척 간단해 보인다. 하지만 모든 동사가 당하는 말과 시키는 말을 갖는 건 아니라는 데 문제가 있다. ‘설레다’라는 동사는 당하는 말도 시키는 말도 갖지 않는다. 설레는 일은 당할 수도 시킬 수도 없기 때문이다.
      이처럼 당할 수도 시킬 수도 없는 동사를 당하거나 시키는 형태로 쓸 때가 적지 않다. 게다가 당하는 말을 한 번 더 당하게 만들어 쓰는 경우도 많다. 당연히 문장이 이상해진다. 아니 이상하고 어색해 보여야 마땅한데 습관처럼 쓰다 보니 그렇게 보이지 않는 게 외려 더 문제다.
      
         1. 그러다가 언젠가는 크게 데일 날이 있을 거야.
      2. 고기를 구워 먹고 나니 웃옷에 고기 냄새가 온통 다 배였다.
      3. 그 사람을 다시 만난다는 생각만으로 마음이 설레여 잠을 이루지 못했다.
      
         두 번 당하는 말을 만들지 말자
      
         1. 둘로 나뉘어진 조국
      2. 깜빡하고 키를 차 안에 두고 내렸지 뭐야. 잠겨진 차문을 여느라 할 수 없이 사람을 불렀지 뭐.
      3. 그때 그 사건이 20년이 지난 지금까지도 잊혀지지 않는다.
      
         ‘나누다’의 당하는 말은 ‘–이–’를 붙인 ‘나뉘다’와 ‘–어지다’를 붙인 ‘나누어지다’ 두 가지다. ‘나뉘어지다’라고 쓰면 두 번 당하게 만드는 셈이다.
      ‘잠그다’의 당하는 말은 ‘–이–’를 붙인 ‘잠기다’이다. ‘잠겨지다’는 ‘잠기다’에 다시 ‘–어지다’를 붙여 두 번 당하게 만든 것이다.
      ‘잊다’의 당하는 말은 ‘–히–’를 붙인 ‘잊히다’이다. 그러니 ‘잊혀지다’는 ‘잊히다’에 다시 ‘–어지다’를 붙여 두 번 당하게 만든 것이다.
      
         각 문장에서 ‘–시키다’가 붙은 표현을 유심히 살펴보면 한 가지 공통점이 보인다. 모두 한자어 명사에 ‘–시키다’를 붙여 동사를 만들었다는 점이다. 한자어에는 ‘–하다’보다 ‘–시키다’가 더 어울려서일까? 아니면 무엇이 됐든 직접 하기보다는 시키는 게 그럴듯해 보여서일까? 하도 ‘시키다’를 붙여 쓰다 보니 이젠 한자어가 아닌 말에도 ‘시키다’를 붙인다.
      
         시키는 말이 문제가 되는 경우는 많지 않다. 다만 접미사 ‘–시키다’를 써서 동사를 만들 때, 의도한 것과는 전혀 다른 뜻으로 쓰일 때가 있다.
     
      1. 부모로서 자식을 제대로 교육시키지 못한 점 반성합니다.
      2. 문제를 야기시킨 학생들 모두 정학 처분을 면치 못할 것이다.
      3. 업무 환경을 개선시키기 위해 정보망을 손볼 예정입니다.
      
         ‘소개시켜 주다’, ‘발전시켜 주다’, ‘연결시켜 주다’, ‘부각시켜 주다’, ‘만족시켜 주다’, ‘주목시켜 주다’, ‘감동시켜 주다’ 등등의 표현은 어색하다. ‘–시키다’를 붙일 필요가 없는 동사라면 ‘–해 주다’로 바꾸고, ‘–시키다’를 붙여도 되는 동사라면 ‘주다’를 빼고 ‘–시키다’만 붙여 쓰면 된다. 그러니 ‘소개해 주다’, ‘발전시키다’, ‘연결해 주다’, ‘부각해 주다’, ‘만족시키다’, ‘주목시키다’, ‘감동시키다’ 등으로 바꿔야 어색하지 않다.
      
         지시 대명사 ‘그’에 ‘어느’, ‘어떤’ 따위의 관형사를 붙이거나, ‘누구’, ‘무엇’ 같은 인칭 대명사나 지시 대명사를 붙여 쓰는 표현도 중독성이 제법 강하다. ‘그 어떤’이나 ‘그 어느’, ‘그 누구도’, ‘그 무엇도’ 같은 표현은 한번 쓰기 시작하면 저도 모르게 자주 쓰게 된다.
      
         1. 다른 그 어느 것도 아닌 바로 그것
      2. 그 어떤 상황에 처하더라도 정신만 바짝 차리면 된다.
      3. 그 자신을 위해 모든 노력을 경주하는 것뿐이다.
      
         우리말의 시제는 과거, 현재, 미래뿐이어서 한 문장에 과거형을 여러 번 쓰면 가독성도 떨어지고 문장도 난삽해 보인다. 가령 ‘내가 어렸을 때는 좁은 교실에서 난로를 피워 가며 공부를 했어야 했다’
      
         놀람, 슬픔, 어색함, 민망함처럼 마음속에서 일어나는 움직임은 시작과 끝을 명시하기 어렵다. 따라서 ‘시작하다’를 붙이면 어색하다.
      
         3. 사람들이 놀라기 시작했다.
      4. 분위기가 어색해지기 시작했다.
      5. 갑자기 슬퍼지기 시작했다.
      
         문장을 쓸 때 유의해야 할 점은 한두 가지가 아니다. 주어와 술어가 호응하도록 배치해야 하고 관형사나 부사처럼 꾸미는 말은 각각 체언과 용언 앞에 제대로 놓아야 하며 수와 격을 일치시켜야 하는 등 신경 써야 할 것들이 적지 않다.
      하지만 이 모든 것을 아우르는 가장 기본적인 원칙이 있다. 너무 당연해서 원칙이라고 여기지 못하는 원칙. 그건 누구나 문장을 쓸 땐 왼쪽에서 오른쪽으로 그리고 위에서 아래로 써 나간다는 것이다.
      

         잊지 말아야 할 것은 문장의 주인이 문장을 쓰는 내가 아니라 문장 안의 주어와 술어라는 사실이다. 문장의 주인이 나라고 생각하고 글을 쓰면 기본적인 정보를 제공하지 않고 넘어가게 되거나(왜냐하면 나는 이미 다 알고 있으니까), 문장의 기준점을 문장 안에 두지 않고 내가 위치한 지점에 두게 되어 자연스러운 문장을 쓰기가 어려워진다.


Designed by Tistory.