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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265번째 책] 똑똑한 사람들의 멍청한 짓 (★★★★★) - 최동석
    1000권 독서 2018. 9. 22. 09:51
                                                     




    책 속의 한 구절




         조직은 몇 가지 제도를 바꾼다고 해서 변화되지 않습니다. 구성원들의 정신적 토대가 바뀌었을 때 비로소 조직의 변화를 기대할 수 있습니다. 말하자면 중장기적으로 지속적인 노력을 기울여 구성원들의 인간과 조직에 대한 태도가 근본적으로 변화되어야 합니다.

      

         우리가 암묵적으로 전제했던 인간과 조직에 대한 관념을 근본적으로 재검토해야 한다고 생각합니다. 인간은 영혼의 능력을 발휘하려는 실존적 존재이며, 조직이란 그런 인간들의 협동체라는 전제 위에 시스템을 완전히 새로 설계해야 합니다.

      

         지난 16년간 일하는 방식과 행태가 변화되지 않는 이유는 문제의 원인을 깊이 헤아리지 못하기 때문이었습니다. 저는 생각하는 힘(사고력)을 기르지 못하도록 하는 시스템적 구조(systemic structure)가 가장 큰 원인이라고 보았습니다.

      

         우리나라 경제계와 산업계에는 온통 미국식 경제사상과 월스트리트 경영이론으로 칠갑이 되어 있습니다. 이기심을 조장하는 경쟁과 약육강식의 정신이 사회와 조직을 지배하고 있습니다. 대부분의 지도자들과 경영자들은 그런 이론이 우리 현실에 부적합하다는 사실조차 알지 못하고 있습니다. 설사 안다 하더라도 그것을 어떻게 변화시켜 가야 할지에 대한 생각이나 더 나은 정책 방향이나 대안을 가지고 있지도 않습니다.

      

         매스컴에 나와서 토론하는 지식인들을 보면 산업화 인재와 정보화 인재로 쉽게 구별됩니다. 산업화 인재는 자신이 얼마나 많은 지식을 소유한 사람인지 드러내기 위해 애를 씁니다. 그러나 정보화 인재는 사태의 본질을 파악하는 사고력이 있는 사람입니다. 문제의 핵심을 찌르는 지식이 무엇인지를 꿰뚫어 볼 수 있다는 말입니다.

      

         기본적으로 사물과 현상에 대한 비판적 사고력이 없으면 창의성이나 지성을 발현하는 것이 불가능합니다.

    우선 비판적 사고력을 기르는 일에 교육적 에너지를 집중해야 합니다.

      

         정보화 시대의 특징은 원본(原本)과 사본(寫本)의 구분이 사라졌기 때문입니다. 지식의 양이 중요한 것이 아니라 각자 타고난 재능을 얼마나 잘 발현하느냐가 관건입니다.

      

         다른 원본의 존재를 인정하지 못하는 구태의연한 원본들(기득권자들)의 권위주의적 행태가 우리 사회를 이렇게 좌절케 하고 있습니다. 자신들이 규제하고 통제하지 않으면 나라가 망할 거라고 겁주던 원본들이 또 다른 원본들(시민들과 사회적 약자들)을 사본으로 간주해 버리는 어리석음을 저질렀기 때문입니다.

      

         세월호 침몰사건을 통해 경제적 이득을 보는 세력이 분명히 있으며 그들이 누군지를 명확히 밝혀야 합니다. 해경을 포함한 고위공직자들이 대부분 자본주의적 물신숭배사상에 물들어 있음을 확연히 느낄 수 있었습니다. 고위공직자들은 한결같이 생명의 존엄성에 대해 그다지 심각하게 생각하지 않는 것으로 보였습니다.

      

         우리 사회의 의사결정방식은 품의제도(稟議制度)이기 때문에 모든 권한이 위로 집중되어 있습니다. 윗사람의 의중에 의해 움직이는 시스템입니다. 아랫사람은 윗사람의 의중을 파악하기 위해 많은 노력을 기울이고 공을 들여야 하는 매우 불합리한 제도입니다. 이 의사결정 메커니즘을 근본적으로 혁파해야 합니다.

      

         윗사람 의중을 헤아리지 않고, 소신을 가지고 스스로 옳다고 믿는 양심의 판단에 따라 행동하는 사람들이 매우 드뭅니다.

      

         시민에게 봉사한다는 ‘서비스’ 개념이 없다는 점입니다. 그들은 자신들이 상관에게 봉사하기 위해 존재한다고 믿고 있습니다. 항상 상관의 얼굴을 쳐다보고 있으며 시민에게는 궁둥이만 내 보이고 있습니다. 우리 사회의 고위공직자들 대부분은 기본적으로 시민이 원하는 것이 무엇인지를 생각하지 않습니다. 세월호 사건이 바로 그것을 증명합니다. 실종자 가족의 애타는 마음에 공감하는 능력은 거의 없습니다.

      

         정부부처를 해체한다고 하니까 뭔가 큰 개혁인 것처럼 생각하기 쉬운데 사실 조직개편은 공무원들의 일하는 방식과 태도에 아무런 변화를 주지 못합니다. 당분간 일종의 쇼크독트린(shock doctrine) 효과를 가져 올 뿐입니다. 쇼크독트린이란 재난이 발생했을 때 그 재난의 충격보다 더 큰 충격적인 조치를 가함으로써 결국은 기득권자들의 이득을 더 많이 확보하는 현상을 말합니다. 이러한 쇼크독트린은 반드시 재난자본주의로 이어집니다.1

      

         아이들은 어른의 행태를 보고 배웁니다. 그래서 나라꼴이 점차 이렇게 엉망으로 변해 가는 겁니다. 권력을 가진 자들은 교묘하게 남을 등쳐먹습니다. 기업가들은 권력을 가진 자에게 알아서 바치는데 그것이 소위 ‘스폰서’와 ‘어장관리’로, 부정부패의 뿌리입니다.

      

         권력을 가진 자들이 솔선수범해야 하는데 그렇지 않습니다. 강력한 제도적 장치의 결핍, 이것이 가장 큰 문제입니다.

      

         보이지 않는 부분에 아무리 심각한 문제가 발생해도 즉각적인 반응을 보이지 않습니다. 그것이 보이는 부분에 영향을 미쳐 시각화되기까지는 별로 문제의 심각성을 느끼지 못하기 때문입니다.

    사건 사고란 보이지 않는 부분의 영향을 받아 겉으로 드러난 것입니다. 즉, 보이지 않는 부분이 보이는 부분의 원인이 됩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우리는 보이는 부분에만 노력을 집중하고 있습니다.

      

         능률과 실질은 컨텍스트(context)와 텍스트(text)의 문제입니다. 컨텍스트는 사라지고 텍스트만 남아 있어 그 텍스트가 우리를 지배하고 있습니다. 우리는 이미 텍스트가 성립하는 바탕이나 근본, 즉 컨텍스트를 잃어버렸습니다. 텍스트는 보이는 것이고 컨텍스트는 보이지 않는 것입니다.

      

         제도란 항상 어떤 목적을 가지고 생겨납니다. 따라서 우리는 그 제도를 준수하면 그 제도가 의도하는 목적을 이룬 것으로 간주합니다. 그러나 제도라는 텍스트는 항상 현실이라는 컨텍스트에서 나온 추출물에 불과하기 때문에 현실을 오도하기 쉽습니다.

      

         텍스트를 중시하는 환경에서 자라난 우리의 젊은이들이 유럽을 여행하면서 서구사회를 별것 아닌 것으로 판단하는 것은 서구문명의 정신적 컨텍스트를 보지 못하고 가시적인 텍스트만 보기 때문입니다. 그들이 타고 다니는 차는 우리의 것보다 작고 초라하게 보입니다. 60층이 넘는 건물도 없고, 50층짜리 아파트도 거의 볼 수 없습니다. 그들이 입고 다니는 옷도 우리의 것과 비교해 보면 엉성해 보입니다.

      

         그들과 우리를 비교할 때, 눈에 보이는 부분만을 비교해서는 안 됩니다. 눈에 보이지 않는 부분을 비교할 수 있어야 합니다. 보이지 않는 부분이 보이는 부분의 근본적 지향성을 결정해 주기 때문입니다.

      

         자본주의는 이렇게 보이는 부분을 강조하지만, 민주주의는 보이지 않는 부분까지 보듬는 관용이 있습니다. 민주주의는 청각적 이념이라고 할 수 있습니다. 국민 개개인의 인권을 존중하기 때문에 사회적 약자의 말을 들어줍니다. 서로 협력하여 함께 인간적인 삶을 살아가는 것을 추구합니다. 화려하지 않고 소박하지만 자연스럽고 튼튼하고 지속가능한 삶을 향유할 수 있습니다.

      

         자본주의는 매우 시각적인 이념입니다. 화려하게 보이는 상품들로 가득 찬 시장이 우리를 강력하게 유혹합니다. 더 많은 고객과 더 좋은 상품을 위해 서로 경쟁하도록 부추깁니다. 자본주의 사상이 아니면 우리 사회는 성장··발전하지 못할 것 같은 느낌이 듭니다. 그러나 자본주의의 화려함 이면에 고통받으며 신음하는 영혼들이 있다는 사실을 간과합니다.

      

         대부분의 사람들은 자신의 마음속에 이미 형성되어 있는 세계관이 자신의 일상적 삶의 영역을 어떻게 지배하는지를 인식하지 못하고 살아갑니다. 따라서 우리가 어떤 세계관에 근거하여 살아가고 있는지를 한 번쯤 반성해 보는 것은 매우 가치 있는 일일 것입니다.

      

         자본가들의 탐욕적 이윤추구가 곧 사회적 선(善)이 된다는 자유방임의 경제이론은 곧바로 헨리 포드(Henry Ford, 1863~1947)나 프레드릭 테일러(Frederick Winslow Taylor, 1856~1915)의 과학적 작업에 의하여 효율성, 생산성, 경제성의 향상을 모든 조직체의 지상목표로 삼게끔 했습니다.9

    불행하게도 이러한 경제사상이 오늘날까지 인류를 지배하고 있습니다.

      

         조직개발이 조직의 효율성을 높이기 위해 조직구조나 시스템을 개발한다는 말이 아니라, 조직의 목적 달성을 위해 조직구성원을 개발한다는 뜻입니다. 즉, 사람을 조직의 목적에 맞도록 개발하겠다는 의도가 거기에 숨어 있습니다. 아직까지도 인간을 ‘생각하는 기계’쯤으로 보고 있는 겁니다.

      

         우리 사회에서 자본주의적 물신숭배사상에 근거한 부패현상이 만연하게 된 연원을 연쇄적으로 따져볼 필요가 있습니다. 인간관의 왜곡에서 출발하여 파편화된 지식과 제도의 부조화를 거쳐 제도의 악용으로 나아가는 악순환이 반복되기 때문입니다

      

         잘못된 방향으로 강화된 세계관 내지 인간관은 또다시 파편화된 지식을 낳고, 그 지식은 제도의 부조화를 생산하고, 제도의 부조화를 잘 아는 사람들은 기회가 나면 그 제도를 악용하여 치부하거나 권력을 취하여 부패의 악순환이 계속됩니다. 이것을 저는 ‘부패의 악순환 모델’이라고 부릅니다

      

         인기를 끄는 자기계발서나 성공학의 베스트셀러를 보면, 매사를 긍정적으로 보라고 말합니다. 적극적으로 생각하라고 충고합니다. 그러나 잘못된 가치관에 의하여 형성된 부패한 사회의 먹이사슬을 긍정적으로 보고 적극적으로 산다는 것이 무엇을 말하는가에 대해 생각해 보는 사람은 그리 많지 않습니다. 우리 사회가 어디 하나 성한 데 없이 엉망인 것은 바로 이런 데서 연유합니다.

      

         이제 이러한 문제를 근원적으로 해결하기 위하여, 우리에게는 새로운 인간관이 필요하다는 사실을 강조하고자 합니다. 이것은 앞에서 말한 자연적, 기계적 인간관을 넘어서는 두 번째 유형의 인간관을 말합니다. 인간의 모습을 전인적으로 파악하는 세계관으로서의 전인적(全人的, 통합적) 인간관에 기초한 학문연구와 실천만이 이러한 악순환의 문제를 해결할 수 있습니다.

      

         전인적 인간관이 필요합니다. 인간은 피조물이지만 인간을 둘러싸고 있는 자연과 같거나 자연의 일부분이 아니라, 오히려 그 자연의 관리를 위임받은 존재로 파악되어야 합니다. 여기서 인간에게는 자연을 관리해야 하는 선한 관리자로서의 의무가 부여됩니다.

      

         조직이 ‘행위영역의 선상황적 규칙화’라는 것, 즉 조직이란 장래에 일어날 사태를 예상하여 어떻게 행동할 것인지를 미리 정해 두는 것이라는 정의가 갖는 중요성 말입니다.

      

         유연성을 확보하려면 도대체 뭘 어떻게 해야 하겠습니까? 그것은 아주 간단합니다. 모든 구성원 각자에게 고유한 직무를 주고 그 직무에 따른 권한과 책임을 부여하면 됩니다

      

         조직구성원은 그 조직을 통하여 개인적 그리고 사회적 필요가 충족될 수 있어야 합니다.

      

         조직은 의사결정이 빠르게 이루어지고, 그 질적 수준도 꾸준히 상승하도록 설계되어야 합니다.

      

         경쟁자가 없는 조직체에서 의사결정이 늦어지는 가장 큰 이유는 결정권자 자신이 그 문제에 정통해 있지 않아 의사결정 자체에 자신감이 없고 실패를 두려워하기 때문입니다. 중간관리자들은 상사의 의도를 파악하기 위해서 많은 시간을 허비합니다. 특히 과거의 관련 자료나 정보를 모으고 분석하고 종합하는 일로 대부분의 시간을 보냅니다. 그러면서 업무란 자고로 완벽하게 처리해야 한다고 착각하고 있습니다.

      

         우리나라에는 지금 지식과 정보가 축적되지 않은 비전문적인 사람들이 자신의 능력에 어울리지 않을 정도로 높은 자리에 앉아 있기 때문에 문제가 발생합니다. 정말이지 한심하게 생각되는 것은, 자신이 담당하고 있는 현재의 직무와 미래의 직무에 어떤 일들이 일어날 것인지에 대한 아무런 통찰력이 없는 사람들이 국가의 중요한 의사결정을 내리고 있다는 것입니다

      

         의사결정의 질(質)은 조직구성원의 전문적 지식이 어느 정도 축적되어 있느냐와 조직구성원 간의 의사소통이 원활히 이루어지고 있느냐의 두 가지 요인에 의해 결정됩니다.

      

         조직이 의사결정의 질을 높이기 위해서는 구성원 다수의 견해가 종합되고, 구성원들이 그 결정에 스스로 설득되어야 합니다. 그러기 위해서는 조직차원에서 정보의 공유가 장려되어야 하며, 중요 의사결정 과정에 누구나 자유롭게 참여할 수 있도록 제도적으로 열려 있어야 합니다.

      

         오늘날과 같이 업무환경이 급격하게 변화하고 복잡해진 상황에서는 더욱 그렇습니다. 주어진 일을 바르게 하는 것보다 더 중요한 것은 그 일이 과연 올바른 것인가를 먼저 진단해야 한다는 것입니다.

      

         ‘주어진 일을 바르게 하라’는 지엽적 명령은 인간을 기계로 보는, 그것도 못된 기계로 보는 자연적 인간관을 반영한 것입니다. 농경사회나 산업시대에는 지엽적 명령이 어느 정도 필요했었습니다. 그러나 정보화 사회에서는 전혀 어울리지 않습니다. 지금 우리에게 필요한 것은 전략적 명령입니다. 주어진 일이 과연 올바른 것인가를 판단해 보거나 그것이 과연 무엇을 위한 것인지를 생각하게 하는 명령이 필요한 때입니다.

      

         정보화 사회는 과거의 경험이 미래를 위한 의사결정에 도움이 되지 않는 사회를 의미하기 때문에 경험보다는 창의성을 중시합니다. 이제는 과거에 무슨 일을 했었느냐는 업적보다 그 일의 효과가 어떤가를 묻는 사회가 되었다는 말이며, 나아가 장래에 창의력을 발휘하여 새로운 환경에 도전할 수 있는 잠재력이 있느냐 없느냐가 중시되는 사회가 되었다는 말입니다.

      

         서열형 조직에서는 직무에 대한 전문적 지식과 창의성을 갖춘 인물보다는 상하 내지 동료관계에서 상호의존성과 인간관계의 매끄러움을 중시하는 인물을 유능한 사람으로 평가합니다. 주어진 일을 열심히 하는, 그래서 자기계발을 할 수 있는 시간적 여유도 없이 밤낮으로 일하는 사람을 높이 평가합니다. 저는 이러한 조직과 사회는 조만간 세계의 무대에서 사라질 것으로 확신합니다.

      

         조직의 형식을 급격히 변화시키는 길은 다음과 같은 세 가지 경우에 가능합니다.

    ① 지도자의 비전과 강력한 지도력으로 변혁을 주도하는 경우(조선의 영··정조 시대)

    ② 생존을 위협할 정도로 외부환경이 강력한 충격을 가하는 경우(구한말과 1997년 말의 외환위기)

    ③ 구성원들이 내부적으로 폭발하는 경우(1987년에 있었던 6··29 선언)

      

         조직을 구성하는 요소가 개개인이므로 개인의 태도를 변화시키면 조직이 바뀐다고 생각합니다. 그러나 이것은 아주 잘못된 생각입니다.

    조직구성원은 조직에서 그들에게 부여되는 역할에 따라 행동을 결정하기 때문에 각자의 역할과 그 역할을 수행하는 조건들이 변화하지 않는 한 조직구성원은 물론이고 조직도 바뀔 수 없습니다.

    책임감과 주인의식을 갖고 맡겨진 일을 성실히 일하라고 가르친들 개인의 행동에는 아무런 변화가 없고, 오히려 자신의 생각을 조작하려 한다는 반감을 갖게 할 수 있습니다.

      

         구성원들의 인습적이고 구태의연한 자세를 고쳐 창의적이고도 효과성이 높은 조직으로 만들기 위해서는 구성원들에게 변화하지 않고는 견딜 수 없는 조건을 만들어 줘야 합니다. 그러기 위해서는 다음과 같은 세 가지 조건이 동시에 이루어져야 합니다. 저는 이것을 조직혁신을 위한 세 가지 조건이라 부릅니다.

    ① 각자가 자기 자신의 고유한 일을 가지고 있어야 합니다. (직무의 사유화)

    ② 평가시스템에 시장원리를 도입해야 합니다. (수요자에 의한 평가)

    ③ 내부승진을 줄이고 똑똑한 인물을 공개적으로 뽑아야 합니다. (선발의 객관화)

      

         자신이 속한 조직이나 직업에 대해 얼마나 신바람 나게 일하느냐의 척도로 조직몰입 또는 직무몰입이라는 말을 씁니다. 직무몰입이나 조직몰입은 그 일이 자신의 것이라는 소유감이 있을 때 높아집니다. 자신의 직무가 상사의 지시에 의해 수동적으로 집행되거나 승진을 위한 방편으로 하는 일은 직무의 효과성이 낮을 수밖에 없습니다.

      

         각자에게 고유한 업무 권한을 부여하는 것(이것을 저는 ‘직무의 사유화’ 개념으로 불렀습니다)은 개인에게 자아실현감 또는 성취감을 주는 아주 중요한 요소입니다. 따라서 지금까지의 타율적 통제시스템은 반드시 직무 사유화를 통한 자율적 통제시스템으로 바뀌어야 합니다.

      

         우리나라도 품의제도에 의하여 윗사람이 아랫사람을 일일이 간섭할 수 있도록 되어 있기 때문에 아랫사람은 스스로 판단하는 능력을 거의 활용하지 못합니다. 나라꼴이 이 지경까지 오게 된 것은 당연합니다.

      

         개인의 능력에 대한 평가는 항상 의사결정의 신속성과 질적 수준에 의하여 이루어져야 합니다. 그래야 의사결정자의 잠재력까지도 평가할 수 있게 됩니다. 문제는 누가 의사결정의 신속성과 질적 수준을 평가할 것인가입니다.

      

         모든 의사결정은 그 의사결정의 중간소비자와 최종소비자가 평가할 수 있도록 제도화되어야 합니다. 인간에게는 자신을 평가하는 사람이 원하는 대로 행동하는 속성이 있기 때문입니다. 그러므로 평가 제도만 바꿔도 경쟁력 있는 조직을 만들 수 있습니다.

      

         인재 선발의 공정화 및 객관화야말로 조직의 사회적 효과성을 높이는 첩경입니다. 여기서 오해하지 말아야 할 것은 객관화라는 용어는 인사고과를 점수화하라는 말이 아니라는 점입니다. 객관화란 누가 봐도 그 사람이 그 자리에 있는 게 옳겠다고 생각할 수 있게 하라는 것입니다

      

         이 세 가지 요소를 도입하여 전략화된 조직을 만들기 위해서 없어서는 안 될 가장 중요한 요소 하나를 언급하려고 합니다. 그것은 전통과 인습을 깨는 지도자의 변혁적 지도력(transformational leadership)입니다.

      

         내면적 무질서로 인하여 권위주의적 지도자나 그를 따르는 자들이 자신의 기득권을 보호하고자 현실을 왜곡할 때에는 양심의 가책을 별로 받지 않습니다. 즉, 권위주의에 의한 외면적 질서가 곧 현실왜곡의 방패막이가 되기 때문입니다.

    따라서 지도자의 권위주의가 파괴되지 않고서는 현실을 현실 그대로 파악할 수 없습니다.

      

         권위주의란 대개 전통과 인습에서 생겨납니다. 전통과 인습이란 사회적 삶의 과정에서 과거에는 성공적이었기 때문에 생겨난 고착물입니다. 과거에 성공적이었던 사람들일수록 그것이 거의 신념으로 굳어 있기 때문에 새로운 아이디어나 비판을 수용하지 못합니다.

    입으로는 변화를 말할지 모르지만 속으로는 변화를 받아들이지 않습니다. 그것은 과거에 성공했던 방식이 변화된 환경 속에서도 성공할 수 있으리라 생각하기 때문이기도 하지만 더욱 중요한 이유는 과거의 성공으로부터 얻은 기득권을 포기할 수 없기 때문입니다.

      

         우리는 자신의 기득권을 과감히 포기하는 멋진 지도자를 기다리는 것입니다. 그런 지도자라야 왜곡된 과거와 현재를 바람직한 미래로 변혁시켜 갈 수 있기 때문입니다.

      

         환경의 변화는 우리에게 위기를 가져다주지만, 그 속에는 기회도 항상 내포되어 있습니다. 그럼에도 오늘날 지도자들은 변화된 환경을 제대로 읽지 못하고 잘나가던 시절의 사고, 행동, 언어를 그대로 가지고 있습니다. 변화된 환경을 제대로 이해하지 못하면 개인이든 조직이든 국가든 공룡이든 멸망합니다. 세상은 급격히 변하고 있는데 우리들만 담을 커다랗게 쌓아 놓고 그 안에 안주하고 있는 것은 아닌지 깊이 생각해 볼 때입니다.

      

         문제는 이러한 문화적 특성이 조직의 목적(인간 존엄성의 충분한 실현)을 달성하는 데 도움을 주고 있는가라는 질문에 대답해야 한다는 점입니다.

      

         종교의 부패, 사법부의 부패, 언론의 부패, 학교의 부패가 우리 사회를 뼛속까지 부패하게 만듭니다. 우리는 이런 사회에 살고 있기 때문에 부패에 대한 민감성을 잃어버렸습니다. 세상은 다 그렇게 사는 것이라는 무의식적 명령을 내면화한 채 살아가고 있습니다.

      

         문제를 사회의 구조적, 체계적 차원에서 간단히 찾을 수 있는 것인데도, 제도적 측면에 대한 분석을 포기한 채 인간의식의 타락이 문제인 것으로 결론 내림으로써 아무도 현 사회체제에 대한 근본적인 의문을 갖지 못하도록 암묵적으로 강요하고 있습니다.

      

         왜곡되고 오도된 현상분석과 실행할 수 없는 대책들이 우리의 의식에 깊이 파고들어 결국은 국민 의식을 패배주의로 나아가게 한다는 점입니다. 저는 이 점을 깊이 우려하고 있습니다.

      

         우리는 사회체제의 운영메커니즘을 꿰뚫어 볼 수 있는 ‘생각하는 힘’을 기르도록 노력해야 합니다. 아울러 지도자는 이런 병든 조직을 정확히 진단하여 치료하려는 각종 시도가 엄청난 저항에 부딪히게 될 것이라는 점을 잘 이해해야 합니다.

      

         지도자의 행동은 그 행동 자체보다도 그 행동이 나타내는 의미, 즉 상징성 때문에 조직구성원에 심대한 영향을 미칩니다

      

         부하들은 상관이 무슨 말을 하느냐가 아니라 어떻게 행동하느냐에 의해 곧 상관의 가치체계를 가시적으로 체험하게 됩니다. 따라서 잘못된 조직문화가 형성되었다면 그것은 반드시 지도자에게 책임이 귀결된다고 봐야 합니다.

      

         부하를 신뢰하지 못하고 모든 일을 자신이 직접 통제해야 하는 불신(不信) 문화는 구성원들에게 무기력증을 가져오고, 자기를 과시하고자 하는 권위주의적 문화는 부하들의 자율성과 창의력을 떨어뜨립니다.

    자신의 부하들을 신뢰하지 못하는 지도자는 부하들의 행동을 일일이 간섭하고 통제하려 할 것입니다.

      

         이러한 지도자 밑에서 나타나는 당연한 현상은 무기력증입니다. 부하들에게는 좌절감이 팽배하고, 나아가 자신감과 주도권을 잃어버립니다. 지도자는 아무리 부하가 유능해도 부하에게 일을 위임하지 않습니다. 그래서 가능한 한 부하들은 책임을 회피할 수 있는 길을 찾고, 매사를 상사에 의존합니다. 이러한 조직은 시키면 시키는 대로 하는 박제된 인간을 생산해 냅니다.

      

         다른 인격장애 형태는 ‘과대망상(誇大妄想)’입니다. 이것은 지나친 자신감과 다른 사람의 주의를 끌고자 하는 끊임없는 욕구를 말합니다. 이러한 지도자는 자기도취에 빠져 있는 듯한 인상을 줍니다. 그는 부하들과 종종 온화한 인상과 따뜻한 말을 주고받기도 하지만 실상은 다른 사람에 대해 무관심합니다.

    따라서 다른 사람과의 관계가 지속적이지 못하고 불안하며, 그에 대한 평가는 이상주의적 칭찬과 무자비한 비판 사이를 오갑니다.

      

         너무나 많은 공직자들이 정신지체적 인격장애 상태에 빠져 있다는 느낌을 받습니다. 그들은 왜 자신이 그 자리에 앉아 있는지를 잊고 지냅니다. 아랫사람들이 할 말을 써 주지 않으면 공식적으로는 아무 말도 못하는 사람들이 높은 자리에 앉아 있는 경우가 많습니다.

      

         대개의 인격장애는 구조장애에서 유발되며, 조직구성원의 인격장애가 다시 구조장애를 일으키기 때문에 구조상의 문제점을 면밀히 살펴봐야 합니다.

      

         유연한 조직은 고도의 지도력(리더십)을 요구하기 때문에 무능한 사람일수록 유연한 조직을 거부합니다. 따라서 안정화된 조직의 지도자들은 유능하지 못하다고 보면 거의 틀림없습니다.

      

         조직의 복잡성은 조직의 규모가 커질수록 나타나는 현상인데, 과도한 복잡성은 조직의 지도자로 하여금 조직운영 메커니즘을 파악할 수 없게 만듭니다. 정부조직이나 서울시 같은 방대한 행정조직은 최고경영자가 어떤 지시를 내려도 그것이 제대로 전달되어 시행되기까지 많은 시간이 걸리고 본래의 취지 자체가 왜곡되기도 합니다.

      

         권한과 책임이 균형화된 상태에서 그 권한에 걸맞는 의사결정을 내려 보고, 그 의사결정 결과에 수반하는 책임을 지는 오랜 훈련을 거치면서, 개인과 집단, 조직이 어떤 메커니즘으로 움직일 때 가장 조화로운지 아는 사람이라야 비로소 지휘할 수 있습니다.

    다시 말해 지도자는 조직이 운영되는 메커니즘을 꿰뚫어볼 수 있는 통찰력과 거시적 안목을 길러야 한다는 것입니다. 자신이 책임지고 의사결정 내리는 훈련을 받지 않은 사람은 어떠한 지위에 있어도 자신이 무슨 일을 해야 할지 모릅니다.

      

         우리는 무엇이 문제인지, 그리고 우리 자신이 무엇을 해야 하는지에 대한 주체적 결정을 할 수 없도록 제도적으로 교육받아 왔습니다. 지금까지는 문제도 윗사람이 제기했고, 그것에 대한 정답도 윗사람이 제시해 왔습니다. 시키면 시키는 대로 해야 할 뿐이었습니다. 우리나라는 학교에서든지 직장에서든지 개인이 독립된 인격체로서 주체적으로 의사결정을 할 수 있는 영역이 거의 없습니다. 독자적으로 결정할 수 있는 권한이 대부분 원천적으로 봉쇄되어 있기 때문입니다.

      

         조직 내에서 의사결정 권한이 일부 사람들에게 집중되어 있고, 대부분의 구성원들 각자가 실질적이고 독자적인 의사결정 권한을 갖지 못하는 경우에 그 조직은 반드시 부패합니다.

      

         생각해 보면 결재 과정에 참여했던 모든 사람을 만족시키는 의사결정이란 대개의 경우 하나마나한 것입니다. 이렇게 모든 의사결정 참여자들을 만족시키려다 보니 동쪽이나 서쪽으로 가야 할 의사결정이 적당히 둥글둥글 타협하게 됨에 따라 뒤로 가 버리는 경우가 비일비재합니다.

      

         회의를 통해서 품의서의 내용이 비교적 매끄럽게 다림질됩니다. 회의 과정에서는 대개 힘센 부서의 의견이 이기게 됩니다. 이런 우여곡절 끝에 각종 회의를 거치면서 조율된 안이 최종결재자에게 올라가게 됩니다.

      

         위로 올라갈수록 부와 권력과 명예와 위엄과 편안함을 누릴 수 있게 되어 있는 제도적 장치로 인해 모든 사람이 승진에 목을 매고 있는 겁니다. 승진 이데올로기가 우리 사회를 지배하고 있는 이유가 바로 여기에 있습니다. 그래서 어떻게 해서든지 직급을 올려줘야 사기가 올라가기 때문에 조직의 장들은 부하들의 직급을 올려줘야 하는 압력을 받게 됩니다.

      

         일본의 경영사상가인 오마에 겐이치는 일본관료들의 병폐를 다음과 같이 묘사했습니다. “가장 비극적인 결론은, 관료기구는 자기정화(自己淨化) 능력이 없기 때문에 외압에 의해 파괴될 때까지 자기 증식을 계속할 것이라는 점이다.

      

         우리나라에서는 모든 권한이 원칙적으로 우두머리에게 집중돼 있기 때문에 모든 일을 대내외적으로 반드시 그 우두머리를 통해서만 이루어지도록 설계돼 있습니다. 그래서 윗사람은 아랫사람들을 거느리는 것으로 생각하게 돼 있습니다. 아랫사람들은 오로지 우두머리만 쳐다보고 일을 해야 하며 우두머리의 일을 자신들이 대신 해 준다고 생각하게끔 제도화돼 있을 뿐입니다.

      

         정치에서만 그런 것이 아닙니다. 우리의 일상생활의 모든 영역에서 그렇게 돼 있습니다. ‘일단 올라서면 모든 것을 싹 쓸어버리는’ 이 원시적이고 야만적인 제도가 바로 우리 민족에게, 매사를 양보할 수 없는 한판 승부로 보게 만들었습니다.

      

         관료들에게 자신들이 섬겨야 할 국민은 안중에도 없습니다. 오직 자신에게 은혜를 베풀어 줄 우두머리에게만 잘 보이면 되기 때문입니다. 일반 직장사회에서도 권한이 전혀 분산되지 않은 채 승자가 모든 것을 독식하도록 제도화돼 있기 때문에, 오로지 승리와 승진의 이데올로기가 우리 사회를 지배하고 있을 뿐입니다.

    불법적으로라도 일단 올라서고 보자는 생각이 팽배할 수밖에 없습니다.

      

         이런 사회를 개혁하는 또 하나의 제도적 장치는 윗사람의 비정상적인 개입, 불합리한 지시, 불법적인 명령에 대해 아랫사람들에게 반대할 권리(obligation to dissent)를 부여하는 것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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